88장| 여권도 없지만, 산티아고를 꿈꾼다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뿐, 이미 순례자는 되었다

by Helia

추천 클래식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 〈Una Mattina〉 : 아침의 첫발을 내딛는 듯한 설렘.


여권도 없고, 제주도조차 가본 적 없는 내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걸까. 해외여행은커녕,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내가 스페인까지 가겠다고 마음을 품는 건 어쩌면 허황된 상상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이 질문이 오래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언젠가 나는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나는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한다. 버스는 좁은 도로를 따라 멈추고 흔들리기를 반복하지만, 기차는 궤도를 따라 묵묵히 나아간다. 창밖 풍경은 수묵화처럼 흘러가고, 나는 그 안에서 기다림을 배운다. 그래서일까. 내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늘 기차 창밖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아직 발을 내딛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그 길을 걸어왔다.

사실 나는 여행다운 여행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비행기표를 검색해 본 적은 있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다 충동적으로 항공권 가격을 살펴본 뒤, ‘나는 결국 못 가겠지’ 하며 창을 닫아버린 경험이 전부다. 여권도 없다. 해외는커녕 제주도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내가 어떻게 산티아고를 꿈꾸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단순하다. “가고 싶다.”

기차를 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출발점일까, 아니면 이미 중간쯤일까. 종착역이 멀리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곧 도착할 역일까. 삶도 그렇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그 도착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이는 신을 만나기 위해, 어떤 이는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또 어떤 이는 단순히 걷는다는 행위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길에 나선다. 나는 왜일까. 아직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 안의 공백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이 삶이 출발인지 도착인지 알고 싶어서다.

나는 체력도 부족하다. 계단 몇 층만 올라도 숨이 가빠지고, 발목은 쉽게 저려온다. 이런 내가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낼 수 있을까. 답은 늘 모호하다. ‘못 할 거야’라는 속삭임과 ‘그래도 해낼 수 있어’라는 희망이 뒤섞인다. 어떤 날은 자신이 생겼다가, 어떤 날은 주저앉고 싶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리라는 결심이다. 준비란 결국 짐을 싸는 일이 아니라, 떠날 수 있다는 다짐에서 시작되니까.

나는 자주 상상 속에서 순례길의 하루를 산다. 새벽, 아직 식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기차역 플랫폼처럼 서늘한 바람이 피부에 스민다. 발끝에는 흙이 차갑게 묻고, 어깨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무게가 내려앉는다. 해가 떠오르면 길가의 작은 꽃들이 눈을 뜨고, 낯선 언어로 건네지는 인사가 하루의 첫 문장이 된다. 한낮이 되면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발바닥은 불에 덴 듯 뜨겁고, 어깨는 바위처럼 무겁다. 고통이 나를 흔들지만, 그 고통조차 길의 일부가 된다. 저녁이면 작은 식탁에 모여 순례자들과 빵을 나눈다. 서로 다른 국적, 다른 언어, 다른 이유로 길에 올랐지만, 오늘 하루를 버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친구가 된다. 어떤 이는 눈물로 하루를 고백하고, 어떤 이는 웃음으로 버텼음을 드러내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얻는다.

밤이 오면 낡은 침대에 누워 발에 생긴 물집을 바라본다. 그것은 고통의 흔적이자 하루를 살아냈다는 증거다. 마치 기차표에 찍힌 QR 코드처럼, 그 물집은 오늘의 여정을 인증한다. 나는 그 물집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오늘도 잘 걸어냈다.”

기차는 나에게 기다림을 가르쳐주었다. 종착역에 닿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앉아 있는 것뿐이다. 창밖 풍경은 쉼 없이 바뀌지만, 나는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순례길도 그러하리라. 발이 아프다고 서두른다고 해서 더 빨리 닿는 것이 아니다. 기다리며 걷는 것, 그것만이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었다. 어떤 이는 사랑을 잃었고, 어떤 이는 병을 이겨냈으며, 또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길에 나섰다. 나는 아직 내 사연을 정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길을 떠올릴 때마다 내 안의 목소리가 깨어난다는 것이다. 혹시 나는 너무 오래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온 건 아닐까. 누군가의 딸로, 엄마로, 사회의 작은 톱니로 살며 정작 내가 원하는 길을 외면해 온 건 아닐까. 순례길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아닌 채, 오직 나 자신으로만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순간에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나는 끝내 못 갈지도 모른다. 비행기표 검색 창을 열었다가 닫아버리듯, 현실의 무게 앞에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낯선 공항의 긴 복도, 출국 심사대 앞의 긴장, 스페인어로 가득한 전광판 앞에서의 막막함. 나는 그 모든 장벽 앞에서 움츠러들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더 간절해진다. 언젠가는, 꼭 언젠가는 넘어야 할 장벽이니까.

한국에서 스페인까지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사실은 내게 가장 큰 허들이자 동시에 가장 큰 설렘이다. 인천공항 출국장 전광판에 ‘마드리드’라는 목적지가 뜨는 순간, 나는 비로소 출발자가 될 것이다. 낯선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열세 시간, 창가에 앉아 수없이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그리고 현지에 도착해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순례길의 시작점에 서는 순간, 나는 알게 될 것이다. 이미 나는 오래전부터 그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 인생이 하나의 긴 기차라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 노선 중 하나의 역일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역인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역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대한 표를 마음속에 예매해 두었다. 언젠가 전광판에 내 차례라는 신호가 뜨고, 알림음이 울리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길에 오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단단할까, 아니면 더 여릴까. 어떤 모습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내 삶 속 어딘가에 산티아고라는 좌석이 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뿐, 이미 순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