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거리다

사라지는 말, 오래 남는 울림

by Helia

나는 자주 중얼거린다. 누가 듣지 않아도 상관없는 말들이 내 입술을 스치며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기록되지 않고, 메모되지 않으며, 이내 사라지는 소리들. 그러나 그 사소한 중얼거림이야말로 내 하루를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겉으로는 의미 없어 보이지만, 나에게는 살아있다는 증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입술이 먼저 움직인다. 낯선 거리를 지날 때, 신호등 앞에 멈춰 설 때, 혹은 방향을 헷갈릴 때, “여기 맞겠지” 같은 말이 새어 나온다. 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려주기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 발걸음을 대신 인도하는 작은 등불이 된다. 남이 들으면 알 수 없는 말이지만, 내 안에서는 확실한 길잡이가 된다.

버스 창가에 앉아 멍하니 바깥을 보다 보면, 창문에 비친 얼굴은 침묵하지만 입술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조금만 더 버티자”, “괜찮아”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것들은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을 다독인다. 만약 그런 혼잣말이 없었다면 이미 포기했을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중얼거림은 거창한 다짐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울타리였다.

집 안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문을 걸어 잠근 방 안,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조차 나는 나지막이 입술을 움직인다. 원고를 쓰기 전에는 꼭 문장을 중얼거린다. 활자로 옮기기 전에 먼저 귀로 확인해야 비로소 살아있는 문장이 된다. 어색하거나 힘이 없는 문장은 입 밖에서 금세 드러나 버린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의 시작은 언제나 중얼거림이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문장들이 그렇게 흩어졌다. 하지만 사라졌다고 해서 헛된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삭제와 흩어짐 속에서 남은 한 줄이 더 단단해졌다.

아이였을 때도 나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블록을 쌓으면서 “여기 올리면 무너질까?” 하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부모님은 그걸 혼잣노래라 불렀다. 나만의 언어 실험이자 탐험 기록이었다.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 반복하며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아이의 중얼거림은 호기심이 만들어낸 노래였다. 모든 게 낯설고 모든 게 궁금했기에, 중얼거림으로 세상을 더듬고, 그 속에서 언어와 사고가 자랐다.

반대로 나이 든 이들의 중얼거림에는 다른 결이 있다. 어느 날 저녁,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다 불쑥 내뱉은 말을 들었다. “아버지는 이럴 때 늘 그릇을 깨뜨리곤 했지…”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도 아니었고, 대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사라진 사람을 불러내는 목소리를 들었다. 노인의 중얼거림은 기억을 붙잡는 끈이다. 오래된 이름과 장면을 스스로 되뇌며 잊히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 시작을 알리던 아이의 중얼거림과 달리, 노인의 중얼거림은 마무리의 속삭임이다. 결국 두 끝은 맞닿아 원을 이루듯 이어진다.

특히 밤이 되면 중얼거림은 더욱 잦아진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 눈을 감으면 낮 동안 밀려든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든다. 그럴 때 나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다 괜찮을 거야.”, “이제 잊어도 돼.” 아무도 대답하지 않지만 그 말들이 불안을 진정시킨다. 마치 보이지 않는 부적처럼 작동해 공포를 조금씩 녹여낸다. 종이에 적을 필요도, 특별한 형식을 갖출 필요도 없다. 오직 입술의 떨림만으로 충분하다. 그 작은 떨림이 삶의 무게를 버티게 한다.

중얼거림은 그리움과도 닮아 있다. 떠나간 사람을 떠올릴 때, 나는 이름을 크게 부르지 못한다. 대신 입술 안쪽에서만 굴린다. 소리 내지 않고 부른 이름이지만, 그 순간 웃음소리와 손길, 눈빛이 되살아난다. 누군가의 이름을 중얼거린다는 건 결국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떠난 이를 불러내는 방식이자 여전히 잊지 못한다는 증거다. 사랑은 꼭 큰소리로 외쳐야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작고 은밀한 중얼거림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기곤 했다.

중얼거림의 매력은 사라짐에 있다. 들려주려는 것도 아니고,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도 아니다. 입술에서 태어나 공기 중에 흩어지는 순간 그 생을 마친다. 그러나 바로 그 덧없음이 중얼거림을 특별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보존되는 시대에, 중얼거림만큼은 순간에만 머문다. 사진처럼 남지도 않고, 글처럼 보관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성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라지기에 오히려 단단히 각인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상상한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내뱉을 말도 중얼거림일 거라고.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닿는 한마디. 울부짖음이 아니라 속삭임일 것이다. 살아온 날들을 되감듯 떠올리며 나는 중얼거릴 것이다. “아, 그래도 괜찮았어.” 그 한마디가 나의 삶을 마무리하는 서명처럼 남지 않을까. 결국 사라지는 말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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