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장| 진상 손님이 남긴 밤의 잔상

가게 문 닫고 난 뒤에도 남는 잔상

by Helia

추전클래식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다단조 Op. 18,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라흐마니노프)


영업시간은 이미 끝났다. 불은 절반쯤 꺼져 있었고, 나는 대걸레질을 하던 중이었다. 물에 젖은 걸레 자국이 반짝이며 바닥을 따라 남아 있었다. 하루 동안 쏟아진 술과 음식의 흔적이 묻은 바닥을 천천히 닦아내는 그 시간이면, 하루가 끝났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는 얼굴, 비틀거리는 발걸음. “한 잔만 주라.” 처음엔 딱 한 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한 잔은 절대 한 잔으로 끝난 적이 없다. 술잔이 채워지고, 목소리가 커지고, 억지와 트집이 시작된다. 나는 그 장면을 수없이 겪어왔다.

진상 손님. 장사를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단어다. 단순히 까다로운 손님을 뜻하지 않는다. 목소리만 크고, 개념은 두고 온 사람.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가게를 흔드는 사람. 처음에는 이해하려 했다. 술에 취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루가 힘들었나 보다, 기분이 상했겠지. 그러나 시간이 쌓일수록 알게 되었다. 이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상황을 자기 멋대로 만들려는 태도 자체가 습관이 된 사람들. 그게 진상의 본질이었다.

술값을 내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술은 다 마셔놓고 계산대 앞에서 버티며 실랑이를 벌인다. “맛이 없었으니 반값만 내겠다.” “현금이 없으니 다음에 줄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았는데 왜 돈을 내야 하냐.” 변명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같다. 술값은 못 내겠다는 거다. 그 순간, 나는 참을성의 끝자락에 서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흔들린다.

더 황당한 건 자리를 떠나지 않는 손님들이다. 이미 자정이 넘었고, 의자들은 하나둘 포개져 있는데도, 그들은 버틴다. 술을 더 시키지도 않으면서, 그저 자리를 차지한 채 앉아 있다. 계산을 미루고, 이야기를 질질 늘리며, 결국은 나를 지치게 한다. 마감은 늦어지고, 마음은 바닥을 기듯 무거워진다.

혹시 당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왔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 카페에서 사소한 이유로 직원 붙잡고 끝까지 늘어지는 손님.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불편해지는 순간. 우리는 한 번쯤 그 공기를 마셔본 적 있을 것이다. 진상은 어디서나 존재하고, 그들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크다.

나는 종종 묻는다. 왜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걸까. 논리가 있는 것도,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리를 지르면 상대가 물러날 거라 믿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전략은 자주 통한다. 상대가 피곤해서, 더 엮이기 싫어서, 그냥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상은 세상 속에서 더 대담해지고, 더 목소리를 높인다.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양.

몇 번은 경찰을 불러야 했다. 술값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 괜한 시비 끝에 가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사람. 그들은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겼다. 경찰 앞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억지를 쓰며, 마치 억울한 일을 당한 듯 행동했다. 그 모습이 더 씁쓸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것이 유일한 방어라고 믿는 사람들.

그러나 나는 안다. 목소리만 크다고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저 소란스러울 뿐,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다수다. 조용히 들어와 술 한 잔 기울이고, 웃으며 계산을 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돌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나는 여전히 가게 문을 열 수 있다.

사실 진상보다 훨씬 많은 건 그런 손님들이다. 긴 하루 끝에 조용히 들어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따뜻한 인사를 남기고 가는 사람들. 술 한 잔에 위로받고, 음악 한 곡에 마음을 풀고, 담담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나는 아직도 인간을 믿는다. 문제는, 진상은 늘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는 거다.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오래가는 것처럼, 목소리 큰 진상들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세상이 그들에게 기울지는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고 억지를 부리는 동안에도, 묵묵히 대걸레질하는 손이 있고, 조용히 계산하고 나가는 발걸음이 있다. 세상을 지탱하는 건 결국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또 다른 진상을 만날지도 모른다. 영업이 끝난 뒤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오는 사람, 술값을 내지 않으려는 사람, 자리에서 버티며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 그들을 막아내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세상은 결국 묵묵히 살아내는 다수 덕분에 흘러간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오늘도 가게 문을 열 것이다. 혹여 또 다른 진상을 만나더라도, 그보다 더 많은 좋은 손님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다만 묻고 싶다. 정말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우리가 세상을 버티게 만드는 걸까? 오늘 당신은 어떤 사람들과 하루를 마주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