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는 빼 주세요.

국물 속 파처럼, 내 삶에서도 빼내야 할 것들이 있다.

by Helia

뜨끈한 순댓국을 주문하며 내가 꼭 하는 말이 있다.
“파는 빼 주세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 피식 웃는다. 겨우 파 하나 빼달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는 표정. 하지만 내겐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입안에 씹히는 순간 밀려오는 그 불쾌한 질감, 국물 위로 번져 나와 향을 덮어버리는 낯선 기운. 그 작은 초록빛줄기는 나의 밥상을 뒤흔들고, 때로는 하루의 기분까지 바꿔놓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뚝배기 속, 하얀 국물과 어우러진 순대와 내장, 기름방울 위에 엷게 스민 고소한 향. 숟가락을 들기 전부터 허기진 위장이 설렌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파 줄기 하나. 뻣뻣하게 어금니를 파고드는 순간, 모든 맛의 조화는 깨지고 만다. 뼈해장국도 마찬가지다. 묵직한 국물과 부드럽게 삶긴 고기 사이에서 불청객처럼 끼어든 파가 씹히는 순간, 나는 금세 식욕을 잃는다.

남들은 별것 아니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불편이야말로 사람을 지치게 한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신발 속에 들어왔을 때, 걷는 내내 발바닥이 괴로운 것처럼. 나에게 파는 그 작은 돌멩이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말한다.
“파는 빼 주세요.”

그 말은 단순히 식재료를 덜어내는 요청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내 취향과 내 목소리를 지켜내는 작은 선언이다. 사람들은 국물 요리에 파가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김치찌개에도, 라면에도, 국밥에도. 그러나 나는 그 ‘당연함’을 거부한다. 내 입맛은 남들의 규칙과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받기 위해 나는 기어이 말한다.

나는 파를 삶의 은유로 본다. 무심히 흩뿌려져 들어가지만 결국 전체의 맛을 바꿔버리는 것. 인생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숨 막히게 만드는 요소들. 불필요한 관습, 억지로 웃어야 하는 자리, 의미 없는 관계. 그 작은 것들이 내 삶의 국물맛을 흐려놓는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단순하다.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것이다.
“파는 빼 주세요.”
즉, “이건 나에게 맞지 않습니다.”

나는 종종 이 말을 속으로 반복한다. 회사에서 원치 않는 회식이 잡혔을 때. 억지로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순간.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자리에서 괜히 웃어야 할 때.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외친다. “파는 빼 주세요.”

그 주문은 결국 나를 지켜내는 힘이다. 세상은 늘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친절하라, 성실하라, 남들과 잘 지내라. 그러나 모든 덧붙임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 때로는 빼내야 비로소 본연의 맛이 드러난다. 국밥에서 파를 덜어내야 깊은 진국이 드러나는 것처럼.

어릴 적엔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국물 속 파를 억지로 씹어 삼켰다. 표정이 찌푸려져도, 속으로 불쾌해도, 대세를 따르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억지로 삼키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그제야 용기를 냈다. 작은 목소리지만, 내 입맛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말했다.

“파는 빼 주세요.”

그 순간 나는 단순히 파를 거부한 게 아니라, 나를 존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쓸데없는 고집 아니냐”라고.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건 고집이 아니라 자기 존중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대신, 내 기준을 지켜내고 싶다. 국밥 한 그릇 앞에서조차 나를 지킬 수 없다면, 더 큰 무대에서는 어떤 얼굴로 설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문한다.
“파는 빼 주세요.”

이 문장은 내 삶의 은유다. 국밥 속 파만이 아니라, 내 삶을 짓누르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주문이다. 원치 않는 인간관계, 무의미한 경쟁, 나를 해치는 습관들. 그것들이 국물 속 파처럼 내 삶을 뒤엉킬 때, 나는 다시 말한다. “이건 필요하지 않다. 빼 달라.”

혹시 당신도 삶 속에 불필요한 파를 넣어두고 억지로 씹어 삼키고 있지 않은가. 대세라서, 당연하다고들 해서, 남들에게 이상해 보일까 두려워서. 그러나 억지로 삼키다 보면 결국 본연의 맛을 잃는다. 이제는 주문할 차례다. 당신의 삶에서도 용기 내어 말해 보라.

“파는 빼 주세요.”

그 말이야말로, 나 자신을 존중하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선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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