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by Helia

서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누군가는 내게 말했다.
“남자는 남자로 잊는 거야. 내가 괜찮은 사람 소개해줄까?”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웃음은 가벼운 농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상처 위에 덧칠된 말이 주는 허망함에 대한 반사작용이었다. 남자라면 이제 다시는 쳐다도 보기 싫은데, 전남편의 그림자가 여전히 집 안 구석마다 스며 있는데, 어떻게 또 다른 남자를 통해 지워낼 수 있겠는가. 거절은 단호했다. 하지만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집요한 권유는 멈추지 않았다. 전화, 문자, 카톡. ‘한번 만나봐, 기회는 열려 있어야 해.’ 친구의 말은 위로 같았지만 사실은 강요에 가까웠다. 나는 매번 고개를 저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아직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젖어 있었고, 단어마다 취기가 배어 있었다. “헤어졌어. 술 한잔 하자.” 나에게 위로가 필요했던 건 오히려 그였는데, 그날은 내가 들어주는 쪽이어야 했다. 망설임 없이 나갔다. 그런데 술집 문을 열자, 낯선 남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알았다. 아, 또 낚였구나. 이번엔 그냥 술친구가 아니라, 술자리에 섞여든 소개팅 상대였다. 돌아서려는 나를 친구가 막아섰다. “진짜 오해하지 마. 그냥 셋이서 마시는 거야.” 억지웃음을 띠며 변명했지만, 이미 나는 속으로 모든 그림을 읽어냈다.

술잔은 금세 차고, 또 비워졌다. 대화는 이어졌지만 공기는 어색했다. 친구는 자기 얘기를 쏟아냈다. 전 남자친구의 무심함, 끝내 다다른 이별, 분노와 후회. 우리는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돌렸다. 그러나 잠시 자리를 비운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십 분, 삼십 분, 한 시간이 흘렀다. 결국 도착한 건 단 한 줄짜리 메시지였다. ‘미안, 네가 더 필요할 것 같아.’ 그리고 전원이 꺼진 화면. 남겨진 건 나와,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뿐이었다.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는 억지로 나를 웃기려 애썼고, 나는 억지로 잔을 들었다. 대화는 허공을 떠돌았다. 그의 말은 라디오 잡음처럼 스쳐갔고, 내 마음은 이미 닫혀 있었다. 나는 술잔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눈가에는 웃음 대신 피곤이 가득했고, 입술에는 대답 대신 침묵이 번졌다. 남자라는 존재가 싫다기보다, 그 자리가 싫었다. 상처 위에 얹힌 또 다른 만남이라는 상황 자체가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술잔이 바닥을 드러낼수록 마음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애의 실패, 부모님과의 갈등, 직장에서의 불안정함. 착한 사람이었고, 억지로 꾸며낸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듣지 못했다. 내 안에는 아직 멍울진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 위로 어떤 말도 스며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은 유난히 차갑게 번졌다.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고, 발걸음은 무겁게 끌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그 말은 그 남자에게 던지는 말도 아니고, 친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억지로 나를 밀어 넣는 상황, 남자를 통해 남자를 잊을 수 있다는 허무한 공식, 타인의 방식에 끌려 억지로 앉아 있던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그만’이라는 신호를 스스로에게 보낸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다. 남의 기대와 조언을 따라가느라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더는 억지로 끌고 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나는 그날 술자리를 끝으로 깨달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비교와 대조로 더 선명해진다는 것을.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어깨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였다.

그 이후에도 소개팅 제안은 이어졌다. 나는 웃으며 거절했다. “괜찮아, 아직은 나 혼자가 좋아.” 사람들은 말했다. “너무 폐쇄적으로 사는 거 아니야?” 그러나 나는 안다.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내 안의 고요를 지켜야 할 때다. 억지로 누군가와 웃음을 주고받으며 상처를 덮는 건 진짜 치유가 아니다. 상처는 덮는다고 아물지 않는다. 오히려 공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대로 드러낸 채, 숨 쉬게 두어야만 언젠가 옅어지고 옅어지다 결국 희미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 직후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고 한다. “괜찮아질 거야.”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 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상처를 새로운 만남으로 잊는다고 믿지만, 나는 알았다. 상처는 사람으로 잊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희석된다는 것을.

‘우리,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이 말은 단절의 말이 아니라, 위로의 말이다. 더는 억지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상처 위에 덧칠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 아직은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는 안도. 언젠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 위해, 지금은 멈춤이 필요하다는 선언.

나는 이제 안다. 남자는 남자로 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로서 잊고 싶지 않게 만드는 시간 속에서 잊히는 것임을. 억지로 꾸며낸 만남도, 누군가의 성급한 권유도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오직 나 자신과의 합의다. 우리, 이쯤에서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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