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건 사진이 아니라 나의 기억이었다.
졸업앨범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과거의 한 조각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은 충격이었다. 서랍과 상자를 뒤져도, 옷장 위 먼지를 털어도, 책장 사이 빈틈을 살펴도 그 책은 나오지 않았다. 검은 인조가죽의 반짝임, 반듯하게 정렬된 단체사진,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억지로 웃던 표정들이 머릿속에만 번질 뿐, 실물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내가 그 시절을 정말 살아낸 게 맞는지, 내 과거가 허공으로 흩어진 건 아닌지 의심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앨범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누구였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가물가물하다. 돌려받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단순하다. 나는 잊었고, 그도 잊었을 것이다. 그렇게 무심함 속에서 책은 흘러갔고, 남은 건 텅 빈자리뿐이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그 앨범을 애초에 소중히 여겼던 게 아니었다. 내게 학창 시절은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좋은 순간보다 상처가 더 짙게 남아 있었고, 웃음보다는 울음이 많았다. 그러니 앨범을 품에 안기보다는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마음 때문에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누군가에게 선뜻 건넸고, 다시 찾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졸업앨범은 표면적으로는 웃음을 나열해 놓은 책이다. 똑같은 배경, 똑같은 각도, 똑같은 크기의 웃음. 하지만 그 균일한 웃음 속에는 담기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사진 찍던 날 교실 뒤에서 울던 친구, 체육대회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진 순간, 졸업식 날 선생님의 떨리던 목소리. 그런 장면들은 카메라의 프레임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서 앨범을 잃어버린 지금, 오히려 사진 밖의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복도에 가득하던 분필 가루 냄새, 여름날 창문 너머로 흘러들던 바람, 장마철 젖은 교실 바닥의 축축한 냄새 같은 것들. 사진이 사라지자, 오히려 감각이 내 과거를 되살린다.
사람들은 흔히 졸업앨범을 잊는다. 결혼식이나 동창회 같은 특별한 자리에나 잠깐 꺼내볼 뿐, 대부분의 시간에는 책장 한구석에 방치한다. 그래서 나는 앨범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곧장 되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묘한 허전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물건 하나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과거를 증명하는 도장이 지워진 듯했기 때문이다. 졸업앨범은 결국 증명사진과 같다. 지금의 내가 필요할 때 꺼내는 증명사진이 현재를 입증하듯, 졸업앨범은 과거를 입증하는 도구였다. 나는 그 증명서를 잃었고, 그래서 내 과거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금씩 다른 깨달음에 닿았다. 졸업앨범이 없어도 그 시절은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에 가려져 있던 기억들이 앨범의 부재 덕분에 더 자유롭게 피어올랐다. 사진 속 억지웃음은 사라졌지만, 그 웃음을 짓던 순간의 공기와 온도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졸업식 날 운동장에 퍼지던 함성, 비 오는 날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던 물방울, 복도 끝에서 울리던 발소리. 앨범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었다.
잃어버린 졸업앨범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기억을 더 선명하게 했다. 책 한 권의 부재가 오히려 내 안의 조각들을 불러냈다. 분실은 곧 회상의 시작이었고, 빈자리는 곧 새로운 자리였다. 어쩌면 나는 그 앨범을 빌려준 순간부터 이미 내 과거를 사진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무의식적으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웃음으로 포장된 기록 대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진 장면들을 택한 것이다.
이제 나는 되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앨범이 없는 자리를 다른 것들이 채운다. 오래된 노트의 삐뚤빼뚤한 글씨, 집에 남은 몇 장의 낡은 사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꺼내는 기억들. 졸업앨범은 사라졌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은 여전히 여기 있다.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책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내 마음의 그림자였다는 걸 이제야 안다. 그리고 그 그림자마저 나의 일부로 품어내는 지금의 내가, 가장 확실한 기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