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진 책방 거리에서

책 향기가 머무는 골목

by Helia

나는 인천에 산다. 누군가에게 인천은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항구 도시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삶의 무대이고 매일의 배경이다. 그 속에서 화도진 책방거리는 내 일상 반경 안에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버스로 40분 남짓, 지하철로는 30분쯤이면 닿을 수 있다. 멀리 있는 것도, 그렇다고 늘 가까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 묘하게 애매한 거리. 그래서일까,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떠오르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처음 화도진 책방거리를 찾았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오래된 건물과 낡은 간판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은 도시의 흔한 풍경 같았지만,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책방 특유의 종이 냄새와 묵직한 정적, 바닷바람이 뒤섞인 공기가 다른 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천에 살면서도 이런 공기를 품은 골목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책방 안으로 들어서면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의 손길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공간.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진열대, 오래된 책마다 남겨진 누군가의 밑줄과 메모,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손님들의 움직임. 나는 책을 고르면서도 책의 제목보다 이 장소가 쌓아온 시간에 더 눈길이 갔다. 헌책 속에는 알 수 없는 독자의 흔적이 남아 있고, 신간 서적은 아직 아무의 손길도 타지 않은 채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비 속에서 화도진 책방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로 빛났다.

어느 날 한 책방에서 오래된 시집을 펼쳤다. 종이는 누렇게 빛바랬고 글씨는 희미했지만, 페이지 사이사이에 누군가 연필로 적은 짧은 문장이 있었다. ‘이 구절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낯선 필체의 메모가 나의 마음과 겹쳐지며, 책은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로 변했다. 화도진 책방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이런 연결이었다. 익명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독자의 손에 이어지고 있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책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카페와 갤러리, 공방이 책방 사이사이에 숨어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매력이 있다. 흰 벽에 걸린 사진 몇 장, 소박한 캔버스에 담긴 그림, 커피 향이 배어 있는 공기. 특히 어떤 날은 작은 무대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나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이 손을 잡은 부모, 연인, 혼자 온 이들을 바라봤다. 모두 다른 이유로 이 거리를 찾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화도진 책방거리라는 같은 이름 속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내게 이 거리는 일상 속의 낯섦이다. 인천에 살며 수없이 지나친 골목이지만, 막상 발을 들이면 언제나 새로운 감각이 찾아온다. 익숙한 얼굴에서 갑자기 발견한 낯선 표정처럼, 이곳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하고 마음 한쪽의 먼지를 털어내듯 맑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지쳐서 숨이 막힐 때, 특별히 할 일이 없어도 문득 떠올라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 책방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도시의 소란은 바깥에 머물고, 이곳에서는 오직 책과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곳이 내 일상 속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거창한 여행을 계획하지 않아도, 이렇게 특별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화도진 책방거리는 내게 여행지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발견한 숨은 피난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품에 안은 책 두 권이 묵직했다. 그러나 그 무게는 피로를 더하는 짐이 아니었다. 오히려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주는 닻 같았다. 화도진 책방거리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태도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결국 자신을 지키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나는 이곳에서 다시 확인했다.

나는 인천에 산다. 그래서 화도진 책방거리는 멀리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길목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나 깊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쉽게 닿지 않는 특별함, 생활 속에서 발견한 낯섦. 그 애매한 간격 속에서 이 거리는 언제나 나를 불러낸다. 언젠가 또다시 마음이 흔들린다면, 나는 이 골목을 걸을 것이다. 책이 주는 위로와 시간이 쌓은 이야기가 내 곁에 늘 준비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에 인천에 사는 누군가가 “가까운데 뭐 할 만한 데 없을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화도진 책방거리를 걸어보라고.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경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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