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에게

밤의 끝에서 들려오는 빛의 이야기

by Helia

세상에는 빛나지만 동시에 외로운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우리는 흔히 신화라 부르고, 전설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그 이름 뒤에 숨은 얼굴은 언제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쓸쓸함이었다. 도깨비, 당신이 바로 그랬다.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내며 불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 기적 같은 힘으로 세상을 뒤흔들지만 정작 당신의 마음은 언제나 한겨울 강가처럼 고요하고 차가웠다. 사람들은 당신을 두려움과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나, 그 눈빛 속에서 당신이 바랐던 단 한 가지, 따뜻한 동행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찬란함이란 언제나 이중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집을 단숨에 다시 세우고, 죽어가는 이를 다시 숨 쉬게 하는 힘, 계절조차 거슬러 눈 내린 벌판에 붉은 꽃을 피우는 기적.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며 당신을 숭배했다. 하지만 그 찬란함이 당신에게는 형벌이었다. 누군가가 눈부신 빛을 내뿜을 때, 다른 이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사람들은 경외심을 빌미로 거리를 두었고, 결국 남겨진 자리는 텅 빈 채로 울려 퍼지는 고독뿐이었다. 당신은 화려했지만, 그 화려함이 오히려 당신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

쓸쓸함은 기억 속에서 더욱 짙어졌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스쳐 간 인연들, 이름조차 희미해진 얼굴들, 그리고 끝내 잡지 못한 사랑들. 당신의 눈동자에는 늘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인간은 당신의 손길 덕에 살아남기도 하고, 운명적인 축복을 받기도 했으나 그 누구도 당신의 시간을 끝까지 함께 견딜 수는 없었다.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당신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은 영원을 짊어진 자로서 홀로 남겨졌다. 찬란하게 빛나지만, 그 빛의 그림자 아래선 누구보다 고독한 존재. 그것이 바로 당신이었다.

죽음을 바라는 마음조차 어쩌면 당신의 쓸쓸함이 낳은 열망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기에, 끝남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안식으로 여긴다. 그러나 불멸의 도깨비에게 죽음은 금단의 열매였다. 멈출 수 없는 시계의 바늘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생은 달콤하지 않았다. 영원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었고, 당신은 그 형벌 속에서 벗어나길 갈망했다. 찬란함은 많은 것을 줄 수 있었지만, 스스로의 자유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온기는 당신의 긴 시간을 지탱해 주었다. 겨울밤 언 손에 건네진 따뜻한 술 한 잔, 길가에서 아이가 건네던 들꽃 한 송이, 낯선 이의 웃음 같은 사소한 순간들. 그것들은 당신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기적 같은 힘이 아니라, 인간의 사소한 온기가 오히려 더 큰 기적이 되었다. 찬란한 능력으로는 구할 수 없는, 너무도 작은 온정. 당신이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화려한 찬미가 아니라, 그 따스한 손길이었다.

도깨비라는 이름은 경계의 존재를 뜻하기도 한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생과 사의 길목에 서 있는 자. 당신은 늘 두 세계의 사이를 오갔다. 그러한 ‘사이성’이야말로 찬란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지닌 자의 운명이었다. 세상은 당신을 특별한 자라 불렀지만, 당신의 내면은 늘 외줄 타기였다. 인간에게는 다가갈 수 없고, 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없는 그 어중간함이 당신을 더욱 고독하게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당신은 인간과 닮아 있었다. 우리 역시 경계 위에서 산다. 빛나고 싶어 하면서도, 그 빛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쓸쓸해지는 존재들. 영광을 꿈꾸면서도 그 끝을 두려워하는 모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언젠가 떠날까 불안해하는 마음. 결국 당신의 쓸쓸함은 우리의 그림자였고, 당신의 찬란함은 우리가 갈망하는 빛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에게 애정을 느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본다. 끝이 있기에 더 찬란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끝이 없어 더 쓸쓸한 길을 걷는 당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당신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워했다. 불멸을 부러워했지만, 끝이 있음을 더 사랑했다. 당신은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당신이 그토록 원한 것은 불멸의 힘이 아닌, 인간처럼 끝낼 수 있는 가능성이었으니까.

그러나 운명은 결국 당신에게도 사랑이라는 구원을 주었다. 오랜 세월 끝에 찾아온 단 한 사람, 끝을 함께할 수 있는 인연. 그 사랑은 당신의 찬란함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강했고, 그 사랑 앞에서 당신은 마침내 쓸쓸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죽음을 허락받았을 때, 당신은 비로소 인간이 누려 온 소중한 비밀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끝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고, 사라짐이 있기에 사랑은 더욱 빛난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오래 기다려 온 진실이었을 것이다.

찬란하고 쓸쓸한 도깨비여, 당신은 결국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불멸을 꿈꾸지만 끝을 갈망하는 모순, 빛나고 싶지만 그림자 속에 웅크리는 두려움, 그리고 결국 사랑으로 구원받고 싶은 간절함. 당신은 인간이 품은 모든 욕망과 두려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당신을 향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당신은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감정의 형상 그 자체였다.

우리는 유한하기에 찬란하다. 당신은 불멸하기에 쓸쓸했다. 그러나 결국 찬란함과 쓸쓸함은 서로의 그림자처럼 이어져 있었다. 당신이 우리를 동경했듯, 우리도 당신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도깨비라는 이름으로 남아,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빛나며, 동시에 쓸쓸히 앉아 있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묻는다. 찬란함과 쓸쓸함은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두 갈래의 꽃은 아닐까. 도깨비여, 당신은 그 꽃을 가장 오래 피운 존재였다. 이제는 안식 속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당신의 찬란함과 쓸쓸함이 고요히 화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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