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독과 사랑을 마주한다
추천 클래식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제9번 D장조, 제4악장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고요한 방 안 공기가 바뀌는 걸 느낀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아, 마치 내 삶의 결을 다시 쓸어내리는 듯하다.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간결하고 담백하다. 그러나 그 담백함이 오히려 마음을 파고든다.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그 바람은 오래도록 창문 틈새를 맴돌며 흔적을 남긴다.
처음 손에 든 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니, 그 발상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했다. 읽다 보면 허세 가득한 지식인의 허망한 자태가 우스꽝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웃음은 곧 씁쓸함으로 이어졌다. 고양이의 비꼼은 남을 향한 조롱이 아니라 결국 나를 향한 질문이었다. 나는 정말 진실된 삶을 살고 있는가. 내 말과 행동은 혹시 허세로 포장된 게 아니었는가. 그렇게 그의 문장은 웃음 뒤에 서늘한 고독을 남겼다.
『도련님』은 또 다른 얼굴이었다. 우직하고 정직하지만 세상살이에 서툰 인물이 등장한다. 정의감에 불타 곧장 달려들지만, 결과는 늘 어설프다. 나는 그 주인공을 따라가며 어릴 적의 나를 떠올렸다. 남들 앞에서 목소리를 크게 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모기 같은 작은 소리로 위축되어하고 싶은 말도 삼키곤 했다. 그래서 『도련님』을 읽으면서 묘하게 부러움과 동질감이 함께 피어올랐다. 그는 내게 없는 용기를 보여주었지만, 동시에 그 미숙함이 나와 닮아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나는 내 안의 작은 정의감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마음(こころ)』. 이 소설을 읽고 나는 한동안 책상 위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스승과 청년, 그리고 숨겨진 비밀과 죽음.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건 단순한 갈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고독과 죄책감, 그리고 시대가 남긴 상처였다. 나는 그 문장들 속에서 오래전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그림자와 마주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슬픔, 끝내 풀지 못한 후회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소세키의 문장은 허구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너무도 진실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아, 역시 나쓰메 소세키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의 삶이 글에 숨 쉬는 듯, 한 줄 한 줄이 살아 있는 체온을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문득 바란다. 나도 언젠가 소세키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고. 내 삶이 고스란히 스며든 문장을 남기고 싶다고.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며, ‘아, 이건 분명 그 사람의 삶에서 나온 문장이다’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내 글 속에서 내 호흡과 상처와 웃음이 그대로 살아 숨 쉬듯 담기기를 바란다.
소세키의 글은 시대의 거울이다. 메이지라는 전환기에 그는 사회의 혼란과 인간의 방황을 작품 속에 새겼다. 그러나 그 흔들림은 특정 시대에만 갇히지 않았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생생하다. 변화의 물결 속에서 길을 잃는 인간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백 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현재형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고독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소세키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짧은 문장 뒤에는 긴 침묵이 따라온다. 그 침묵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그 여백을 메우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관계 맺고 있는가.’ 소세키의 소설은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이야말로 작품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언젠가 내 삶도 누군가의 소설 속 한 장면이 될 수 있을까. 내 평범한 하루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고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울림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미완성 원고 속을 걷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이야기는 더 진실해진다.
소세키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배운다. 소설은 허구로 가장한 진실이라는 것을. 꾸며낸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마음. 나는 언젠가 내 글도 그런 힘을 지니길 바란다. 누군가 내 문장을 읽고 웃다가 울고, 다시 책장을 덮은 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 그것이야말로 소설의 본질 아닐까.
책장을 덮고 방 안이 고요해지면,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언젠가 나도 나쓰메 소세키처럼, 내 삶을 그대로 불어넣은 소설을 쓰겠노라고.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 내 체온이 묻어나는 문장을 남기겠노라고.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며 ‘아, 이건 분명 그 사람의 삶이 녹아든 글이다’ 하고 느낄 수 있기를. 그게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결국 내가 읽는 건 소세키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의 문장은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읽고, 또 쓰고 싶어진다. 내 삶을 비추는 문장을 남기기 위해서. 소세키가 그랬듯, 나도 내 소설 속에 나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