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남는다
모든 건 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상하게, 영원을 믿고 싶어 한다.
사람도, 계절도, 감정도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중 일부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라지지 않는 마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
그런 것들을 영원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바람이 인간다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찰나가 있다.
아무런 준비도, 이유도 없이 마음속에 새겨지는 순간들.
그건 오래 두고 보려던 사진이 아니라,
불현듯 스며든 빛 같은 것이다.
그 순간은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때의 공기와 냄새와 온도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나는 그걸 ‘순간의 영원’이라 부른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느낀다.
셔터를 누르는 찰나, 세상은 멈춘다.
바람도, 숨소리도, 생각조차도 잠시 멈춘다.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나는 안다.
이건 단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지금’을 영원으로 남기려는 시도라는 걸.
찰나는 그렇게 영원과 닿아 있다.
영원은 길게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순간의 기억이다.
몇 해 전, 아주 평범한 오후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빛이 벽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던 시간.
그날 나는 길가에서 벚꽃 잎이 흩날리는 걸 보았다.
그 아래를 한 여자가 천천히 걸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고,
그 빛이 공기 중에서 잠깐 머물다 사라졌다.
나는 카메라를 들지 못했다.
그건 너무 짧아서, 셔터를 누르기도 전에 지나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아직도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찍지 못한 사진이지만,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남은 한 장면이다.
순간의 영원은 그런 식으로 찾아온다.
의도하지 않아도, 준비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이 내 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의 마음은 시간을 잃어버려도 감정의 온도는 기억한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손끝의 따뜻함,
그때의 바람 냄새 하나까지.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감각은 남는다.
그 감각이 다시 떠오를 때, 사라졌던 순간이 영원처럼 되살아난다.
나는 그걸 여러 번 경험했다.
누군가 내 손을 잡던 온도,
비 오는 날 카페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하늘,
아무 말 없이 눈을 맞추던 짧은 순간들.
그때는 몰랐다.
그 모든 게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 버릴지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짧은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계속 숨을 쉰다.
그건 더 이상 현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인다.
그게 바로 ‘순간의 영원’이 가진 힘이다.
예전엔 영원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기 마련이고,
사랑이든 우정이든 결국은 시간 앞에서 희미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알게 된다.
진짜 영원은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니라,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이다.
형태는 바뀌어도, 그때의 마음은 여전히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그건 잊힌 게 아니라, 조용히 남은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선다.
하지만 아주 가끔,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온전히 느낀다.
누군가의 눈빛, 계절의 냄새, 바람의 결.
그건 사소해 보이지만, 인생 전체보다 더 오래 남는다.
이상하지 않나.
수십 년이 지나도 단 몇 초의 순간이 우리를 움직인다.
그게 바로 ‘순간의 영원’이다.
나는 종종 오래된 사진을 본다.
색이 바래고, 종이 끝이 구겨진 사진들.
그 안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때의 웃음, 그때의 하늘은 여전히 생생하다.
사진은 낡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낡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건,
기억이 아니라 마음의 진심이다.
그 진심이 남는 한, 순간은 영원해진다.
어느 날, 나는 알게 되었다.
영원이란 끝없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끝났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사랑이 끝나도 그리움이 남고,
그리움이 사라져도 평온이 남는다.
결국, 모든 건 형태만 바꿔 존재한다.
사람이 떠나도, 그 사람이 남긴 온도는 남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 계절의 냄새는 다시 찾아온다.
그렇게 삶은 ‘사라짐’과 ‘남음’이 교차하며 이어진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피어나는 것이 바로 영원이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사진을 왜 찍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사라질 걸 알면서도,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그건 기록이 아니라 다짐이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
변해도 괜찮다는 다짐.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나를 기억하겠다는 약속.
아마 예술이라는 건, 결국 그 약속을 지키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순간의 영원은 기억의 형태로 남기도하고,
향기의 잔상으로 남기도하고,
혹은 문장 하나로 남기도 한다.
이 글 또한 언젠가는 잊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여기에 존재한다.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시간을 붙잡고 있다.
이 문장을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순간은 이미 영원이 된다.
모든 건 사라진다.
하지만 사라진다고 해서, 끝나는 건 아니다.
빛이 꺼지면 어둠이 시작되듯,
끝난 사랑 뒤에는 여운이 남는다.
그 여운이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든다.
우리는 그 여운 속에서 여전히 무언가를 느끼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꿈꾸고, 다시 기억한다.
그건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순환이다.
순간이 지나가고도 영원히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순환 때문이다.
가끔은 두렵다.
지금의 내가 언젠가 잊힐까 봐.
하지만 이젠 조금 알 것 같다.
잊힌다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옮겨 가는 일이라는 걸.
내가 남긴 말, 눈빛, 웃음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작은 빛으로 살아남는다면,
그것도 하나의 영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순간을 붙잡는다.
카메라의 셔터로, 글의 한 줄로, 마음의 시선으로.
그건 집착이 아니라 감사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증거,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기적.
찰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영원을 품을 자격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 순간의 마음만은 남는다.
나는 그걸 영원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