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짐의 온도
가을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이상하게 허전해진다.
거리의 색이 천천히 옅어지고, 하늘은 멀어지고, 바람은 지나치게 솔직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시월이 되면 꼭 작약을 떠올린다.
봄의 꽃이라던 그 작약을, 계절이 한참 틀린 이때에야 생각한다는 게 참 이상하다.
아마 시월이라는 시간 속엔, 이미 사라진 것들을 조용히 불러내는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라졌지만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감정들, 피었다가 지고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무언가 들.
그게 내게는 늘 작약의 얼굴로 떠오른다.
작약은 유난히 부드럽고, 동시에 강인한 꽃이다.
한 번 피어나면 짧게, 그러나 뜨겁게 존재한다.
그 짧은 생을 다 태워버리는 듯한 색과 향.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사람의 감정을 닮았다고 느낀다.
사랑도, 그리움도, 미련도 결국은 짧고 강렬하게 피어났다 스러지는 일.
시월의 작약은 그런 감정의 잔향 같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마음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빛.
몇 해 전, 가을이 막 시작되던 어느 오후였다.
누군가 내게 작약 한 송이를 건넸다.
“이 꽃은 오래 못 가요.”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꽃이 아니라 우리 관계에 대한 예고처럼 들렸다.
작약은 금세 시들었다.
꽃잎은 물기를 잃었고, 향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꽃을 버리지 못했다.
마른 잎을 스케치북 사이에 끼워두고,
가끔 그걸 꺼내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야.’
그 후로 시월만 되면 그 꽃이 떠오른다.
시월의 작약은 현실 속에서 피지 않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조용히 피어난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감정들, 끝났지만 여전히 따뜻한 기억들,
그 모든 것이 시월의 공기 속에서 작약처럼 다시 피어난다.
그리고 나는 그 꽃 앞에서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지금이야?”
그러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이 계절이, 네가 가장 비어 있을 때니까.”
시월의 작약은 내게 ‘사라짐의 온도’를 가르쳐준 존재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감정의 깊이.
사람은 잃고 나서야 마음을 이해한다.
남아 있는 건 후회가 아니라, 미처 다 하지 못한 다정함이다.
나는 그 다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가끔 멈춰 선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말라버린 꽃잎을 만져본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빛, 그때의 온도.
모든 게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작약을 봄의 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내게 작약은 시월의 꽃이다.
한 계절이 저물어가는 자리, 모든 게 떨어져 나가고 비워지는 시점에야 피는 꽃.
그건 삶의 역설을 닮았다.
사라짐의 끝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존재.
그게 시월의 작약이다.
아름답다는 건 결국, 사라짐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이 꽃은 알고 있다.
나는 한동안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사라지는 걸 두려워했고, 이별을 실패처럼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깨달았다.
사라진다는 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를 이어가는 일이라는 걸.
꽃잎은 떨어지지만, 그 자리에 씨앗이 남는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함께했던 시간, 나눴던 말, 그 속에 남은 온기.
그게 바로 시월의 작약처럼 다시 피어나는 마음이다.
나는 작약을 떠올릴 때마다 내 젊은 날의 사랑들을 함께 기억한다.
순수했던 첫사랑, 너무 뜨거워 금세 타버렸던 관계,
끝내 서로를 지켜내지 못했던 인연들.
그 모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작약의 의미를 이해했다.
사랑은 언제나 피어남보다 사라짐에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라짐 속에서도 여전히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느 날, 오래된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바스러진 작약 꽃잎 한 장이 나왔다.
손끝으로 건드리자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감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 시절의 나를 품어준 것들에 대한 고마움,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다정함.
시월의 작약은 그렇게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자리에 피어 있었다.
이제는 알겠다.
인생은 끊임없이 피고 지는 일의 반복이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잃고, 다시 사랑하고, 또 잃는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시월의 작약은 그 순환의 중심에 서 있다.
사라짐과 피어남이 맞닿은 자리에서, 묵묵히 존재하는 꽃.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배운다.
사라짐이 꼭 비극은 아니라는 걸,
끝이 곧 시작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람의 마음도 꽃과 같다.
너무 일찍 피면 금세 시들고, 너무 늦으면 피지도 못한다.
그래서 타이밍을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시월의 작약은 그 모든 타이밍을 거스른다.
지나간 계절에 홀로 피어나,
사라지는 것들의 끝에서 마지막 빛을 남긴다.
그건 어쩌면 ‘인연의 잔향’ 일지도 모른다.
끝났다고 생각한 관계, 다 던졌다고 믿었던 감정,
그 모든 것들이 조용히 다시 빛을 내는 순간.
그게 바로 시월의 작약이 피는 시간이다.
나는 언젠가 이 계절을 글로 남기리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작약은 내 안에서 여전히 피고 진다.
가끔은 기억 속에서, 가끔은 글 속에서.
그리움의 형태로, 회복의 형태로, 다시 피어난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모두 그렇게 사라졌다가 또 피어나는 법이다.
시월의 작약은 말한다.
“사라진다는 건 없어지는 게 아니야.
다만 형태를 바꿔 다시 피는 것뿐이야.”
그 말이 내게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라짐은 새로운 시작의 씨앗이니까.
그 씨앗이 내 안에서 자라, 다음 봄이 아니라 바로 지금 —
이 시월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피어난다.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그 꽃을 그려본다.
빛이 사선으로 들어오고, 바람이 커튼을 흔든다.
공기 속에는 미세한 먼지와 햇살이 함께 떠다닌다.
그 속에서 작약 한 송이가 천천히 피어난다.
붉지도, 하얗지도 않은 그 애매한 색의 꽃.
그건 미련도, 슬픔도 아닌 조용한 평온의 색이다.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가 번진다.
모든 게 사라져도, 마음은 다시 피어나는 법이니까.
마치 시월의 작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