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나는 널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보고 싶다.
이 모순된 마음이 괴리라면, 나는 그 괴리 속에서 아직도 널 사랑하고 있는 걸까. 내가 아무리 용을 써가며 발악을 해도 네 발끝도 못 따라가. 그런 게 괴리라면, 나는 태생부터 패배자였다. 머리로는 끝났다고, 이제 미련 두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마음은 네 이름 앞에서 무너졌다. 내 안의 이성과 감정이 따로 논다. 머리는 미워하고, 가슴은 그리워한다. 증오는 차갑고, 그리움은 따뜻하다. 그 두 온도가 한 몸에 공존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게 괴리다.
처음엔 단순히 감정의 문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괴리는 감정이 아니라 온도의 차이였다. 나는 네가 떠난 자리를 여전히 뜨겁게 붙잡고 있었고, 너는 이미 식은 마음으로 돌아서 있었다. 나는 잿더미 속에서도 불씨를 찾으려 애썼고, 너는 차가운 바람처럼 멀어졌다. 그 거리, 그 온도의 차가 괴리를 만들었다. 괴리는 이별보다도 잔인했다. 끝이 명확한 이별은 차라리 수긍할 수 있지만, 괴리는 끝나지 않은 채로 남아 마음을 갉아먹는다.
가끔은 네가 밉다. 그렇게 쉽게 나를 떠난 네가,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네가. 네 SNS 속 웃음이, 누군가의 댓글이, 무심한 일상 사진이 내 하루를 무너뜨린다. 나는 그 사진 속 네 표정을 확대해 본다. 혹시 거기에 내 흔적이 남아 있진 않을까.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알면서도, 손가락은 자꾸만 스크린 위를 맴돈다. 미워서라도 보고 싶고, 보고 나면 더 미워진다. 그런 감정의 순환은 지독하다. 사랑이 증오로 변했다가, 증오가 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 도무지 끝이 없다. 괴리는 그렇게 돌고 도는 미로 같다.
언젠가 누군가 그랬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무관심은 이미 끝난 사람에게나 가능한 감정이다. 나는 아직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미워하고, 그리워한다. 네가 내게 남긴 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흔적이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몸 안에 새겨진 문신처럼.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닿을 수 없는데도 아프게 살아 있다. 그게 괴리다.
밤이면 그 괴리가 더 짙어진다. 불 꺼진 방, 고요한 공기 속에서 나는 네 이름을 삼킨다. 혀끝에 맴도는 이름 하나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네가 내게 남긴 말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나는 그 파도에 매번 휩쓸린다. 한때는 그 말들이 나를 살게 했는데, 이제는 나를 무너뜨린다. 괴리는 그런 것이다. 같은 말, 같은 기억이 다른 의미로 변하는 것. 사랑이던 문장이 독이 되고, 위로이던 손길이 흉터가 된다.
이런 마음이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널 증오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미워하려 하면 그리움이 먼저 올라온다. 보고 싶다는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간극 속에서 흔들린다. 머리는 “잊어라”라고 말하고, 가슴은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라고 한다. 그 둘의 싸움에서 늘 지는 쪽은 나다. 괴리는 그렇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는데, 괜찮아지는 대신 무뎌졌다. 무뎌짐은 회복이 아니다. 단지 감정의 감도가 줄어든 것뿐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미워하고, 동시에 그리워한다. 감정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너라는 존재의 궤도 안을 돌고 있다. 괴리는 그런 거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도는 행성처럼, 중심이 사라진 후에도 원을 그리며 맴도는 궤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미워했던 건 네가 아니라, 너를 놓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괴리는 타인과의 거리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거리에서 더 깊어진다. 이성은 잊자고 하는데 감정은 버티고, 마음은 앞으로 가야 한다는데 발은 뒤로 걸어간다. 그 모든 방향이 뒤섞이며 생긴 혼돈이 괴리였다. 나는 그 혼돈 속에서 길을 잃었다.
괴리를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사랑이 끝나면 바로 미움이 오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엔 반드시 괴리가 있다. 그 괴리의 시간 동안 사람은 자신을 해부한다. 왜 나는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끝난 일을 붙잡고 끝없이 되감는다. 그건 미련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결국 답은 없다. 괴리는 완성되지 않는 문장처럼 남는다.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감정의 문단.
이제는 안다. 괴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형태만 바뀔 뿐이다. 처음엔 사랑으로, 그다음엔 미움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담담함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괴리다.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주는 체념, 그러나 여전히 그리워하는 마음이 주는 미련. 그 둘이 공존하는 상태. 그것이 우리가 끝내 풀지 못하는 감정의 방정식이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다르다. 네가 떠올라도 예전처럼 숨이 막히진 않는다. 미워도 괜찮고, 그리워도 괜찮다. 그게 나니까. 나는 더 이상 괴리를 없애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 괴리 속에서 나를 이해하려 한다. 그리움이 내 일부라면, 미움도 내 일부다. 너는 그 두 감정을 동시에 깨운 존재였다. 그래서 여전히 특별하고,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
결국 괴리는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에서 나는 내 중심을 배웠다. 괴리는 상처였지만, 동시에 거울이었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고,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나는 그 괴리를 견디며 조금씩 나로 돌아왔다. 이제는 네가 아니라,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널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보고 싶다.
하지만 그 괴리 속에서도 나는 살아간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내가 여전히 사랑할 줄 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니까.
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