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함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무심해졌다

by Helia

누구나 언젠가는 무심해질 수밖에 없다.
너무 사랑했고, 너무 애썼던 사람일수록 더 빨리 식는다.
그건 차가움이 아니라, 마음이 다한 자리다.

나는 한때 모든 것에 반응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웃고 울었고,
사소한 오해에도 며칠을 뒤척였다.
세상이 조금만 흔들려도, 나는 금세 무너졌다.
그만큼 마음이 약했고, 사랑이 서툴렀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눈빛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혼자 상처받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마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니었다는 걸.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고,
누군가의 감정에 갇혀 있던 나는 늘 타인에게 끌려다녔다.
그게 지쳐서, 나는 조금씩 나를 지키기 시작했다.
모든 말에 반응하지 않고,
모든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로 했다.
처음엔 서운했고, 외로웠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 고요해지지만, 그 고요는 낯설다.
그럼에도 그 고요함이 싫지 않았다.
이제야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사람들은 말한다.
“넌 예전보다 무심해졌어.”
처음엔 그 말이 상처처럼 들렸다.
내가 차가워졌다는 뜻일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말이었다.
무심하다는 건 아무렇지 않다는 게 아니라,
모든 일에 다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뜨거웠던 마음을 식히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열을 가라앉히는 일이다.

나는 예전엔 무심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은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이 더 많이 아팠다는 걸.
무심함은 상처 위에 생긴 얇은 피부 같은 것이다.
너무 뜨겁게 사랑하다가 데인 자리,
그 자리를 덮는 새살이 바로 무심함이다.
다시 불타지 않기 위해,
조금 덜 뜨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사람들.
그게 어른의 온도다.

나는 이제 모든 일에 이유를 찾지 않는다.
사람의 말과 행동에는 종종 아무 뜻도 없다.
예전엔 그걸 몰라서 괜히 마음을 썼다.
‘왜 그랬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 질문들로 내 하루가 가득했다.
이젠 그냥 그렇게 흘려보낸다.
누군가는 그날 기분이 안 좋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챙겨야 했을 뿐이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것도 많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훨씬 가벼워진다.

무심함은 냉정함이 아니다.
그건 온도의 조절이다.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만이 진심은 아니다.
조용히 오래가는 마음이 더 깊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너무 자주 확인하려 들면 금세 닳아버린다.
무심함은 그 마음을 오래 지키는 기술이다.
덜 표현하지만, 더 오래 남는 방식.

한때는 다정함이 전부인 줄 알았다.
누구에게나 따뜻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항상 손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정함에도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따뜻할 순 없다.
나를 소모해 가며 배려했던 시간들이 남긴 건,
지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무심하게 굴기도 한다.
그게 미움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예의라는 걸 안다.
무심함 속엔 여전히 다정함이 있다.
다만 더 이상 흘러넘치지 않을 뿐이다.

어느 날, 오랜 친구가 말했다.
“넌 예전보다 달라졌어.
뭔가, 더 조용해진 것 같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미소 지었다.
맞다. 나는 달라졌다.
예전엔 모든 걸 쏟아야 마음이 편했는데,
이제는 남겨두는 법을 안다.
나를 다 내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야 배웠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덜 뜨겁게,
조금 더 오래 사랑하려 한다.

무심함은 관계의 끝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깊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
자주 보지 않아도 이어지는 마음,
그건 다정함보다 단단하다.
적당한 거리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건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요즘은 왜 그렇게 조용해?”
나는 대답한다.
“시끄러울 이유가 없어서요.”
이제는 모든 일에 반응하지 않는다.
세상은 원래 시끄럽고, 사람은 원래 다르다.
그걸 억지로 맞추려 애쓰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 마음만 다치게 했다.
무심해지자 세상이 조금 쉬워졌다.
모든 걸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나는 그저 내 자리를 지키면 된다.

가끔은 내가 너무 건조해진 게 아닐까,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건조함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의 정리다.”
뜨거운 감정이 식은 자리에 생긴 차분한 평온,
그게 무심함이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을 사랑한다.
다만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을 뿐이다.
무심하다는 건, 덜 느끼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보는 것이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나는 고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건 외면이 아니라 성숙이다.
무심한 사람은 세상을 거절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또 말했다.
“넌 예전보다 차가워졌어.”
나는 웃었다.
“그게 아니라요, 이제는 덜 불타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진화한다.
상처로 시작해,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그리고 무심함으로 식는다.
그건 끝이 아니라 균형이다.

무심함은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식지도 않은 온도.
서로를 태우지 않으면서도 잃지 않게 하는 거리.
그게 관계의 균형이고, 마음의 성숙이다.
나는 이제 안다.
무심함은 냉정이 아니라,
내가 나를 지키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라는 걸.

오늘도 나는 세상을 조금 무심하게 바라본다.
누군가의 말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불필요한 소음에는 귀를 닫는다.
그렇게 하루를 버텨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무심하다는 건 살아남는 방식이자,
조용히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다정하다.
다만 이제는,
그 다정함을 더 오래 남기기 위해 조금 덜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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