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달라지는 법

by Helia

나는 변하기 싫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느 날은 사람이 떠났고, 어느 날은 계절이 달라졌다. 감정이 식고, 다시 피었다. 모든 게 변하는데 나만 그대로였다.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으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낡았다. 어릴 적엔 ‘달라진다’는 말이 서운했다. 친구의 말투가 변하면 서운했고, 나 없이 다른 사람과 웃는 모습이 낯설었다. 변한다는 건 익숙함이 깨지는 일이었으니까. 그때의 나는 ‘그대로’라는 말에 안도했다. 변하지 않는 게 믿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고집을 배려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든다는 걸.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맞춰주고, 이해하고, 다독이며, 모난 부분을 스스로 깎아냈다. 그렇게 깎이다 보니 어느 날, 손끝에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다. 나를 잃어가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누군가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 체온을 버텨낸 날들이 있었다. 그 온기가 식자, 나는 허무하게 남았다. 그제야 알았다. 사랑이란 서로 닮아가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색을 인정해 주는 일이라는 걸.

그를 사랑하면서 나는 사라졌다. 그가 싫어하는 건 나도 싫어해야 했다. 그가 좋아하는 건 억지로라도 따라 했다. 그가 내 기분을 몰라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울 속 나는 낯설었다. 사랑받는 대신, 견디고 있었다. 사랑을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공포였다.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건 정말 나답나?”

나다움. 세상 모든 말 중에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지키기 어려운 단어. 나는 그걸 지키고 싶었다. 누군가의 기준에 갇히지 않고, 나의 속도로 살아가는 일. 누가 뭐라 해도 나로 존재하는 것. 달라진다는 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이제야 안다. 나는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변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가 바라서도 아니다. 그냥 내가 원해서, 내가 필요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사람들은 말했다. 예전 같지 않다고. 맞다. 나는 예전 같지 않다. 예전의 나는 두려웠다. 거절당할까 봐, 미움받을까 봐, 외면당할까 봐 내 마음을 삼켰다. 지금의 나는 그 두려움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본다. 여전히 무섭지만, 도망치지 않는다. 무서움과 함께 걸어간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로 달라진다는 게 그런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는 더 솔직해졌다.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가 까칠해졌다고 말하지만, 그건 솔직해진 거다. 이전의 나는 내 감정을 억눌렀고,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존중한다. 나는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내가 달라진 가장 큰 이유다.

달라진다는 건, 결국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다. 겉모습은 바뀌어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건 성장이다. 나는 그 중심을 ‘나다움’이라 부른다. 세상이 흔들어도 내 안의 중심만은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단단히 붙잡는 뿌리이자, 나로 존재하게 만드는 힘이다.

살다 보면 흔들릴 때가 있다. 길을 잃을 때도 있고,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변화는 나를 더 나답게 만들고 있나?” 그 대답이 ‘그래’라면, 나는 그 길로 나아간다. 남들이 뭐라 해도, 그 길이 나의 길이라면 괜찮다. 천천히 걸어도,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된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말한다. 많이 변했다고. 나는 그 말이 싫지 않다. 그 안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으니까. 달라졌다는 건, 버텼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처를 견디고, 시간을 지나, 나를 지켜낸 사람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건 고집이 아니라 정체다. 고요한 물은 썩고, 흐르는 물만이 맑다. 나는 흐르기로 했다. 썩지 않기 위해, 멈추지 않기 위해, 내 안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제 안다. 달라지는 건 나를 잃는 게 아니라, 나를 되찾는 일이라는 걸. 오히려 변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진짜 나는 멀어졌다. 변화는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라는 이름의 강은 여전히 흘러간다. 돌부리에 부딪히며, 때로는 맑게, 때로는 탁하게. 하지만 흘러간다는 그 사실 하나로, 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나는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게. 나를 잃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변화란 살아 있는 존재의 증거이자, 나라는 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기 위한 필연이니까.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답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다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살아간다. 달라지며, 성장하며, 흘러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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