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밝아서일까
언제부턴가 별이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하늘을 잃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밤이면 늘 창밖을 바라보던 내가,
이제는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빛은 많아졌는데,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진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별을 셌다.
“하나, 둘, 셋…”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불빛들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은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별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빛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하늘엔 별이 없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수많은 광고판,
현란한 네온사인,
끝없이 반짝이는 창문 불빛들이다.
모두 빛이지만, 그중 어느 것도 마음을 비추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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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지 않아.”
누군가의 이 한마디가 요즘 따라 이상하게 아프다.
별이 보이지 않는 건 단지 공해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별을 보려면 일단 멈춰야 하니까.
고개를 들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비워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잊었다.
늘 바쁘게 움직이고, 늘 뭔가를 채우고,
늘 무언가를 확인하느라
정작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도시의 밤은 밝지만, 그 밝음은 피곤하다.
눈이 부시지만, 마음은 점점 어두워진다.
빛의 방향이 잘못된 걸까.
우린 앞만 비추고, 위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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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있다.
숨이 멎었다.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깊은 어둠이 있었고,
그 어둠 속에서 별빛은 오히려 더 또렷했다.
그건 ‘빛’이라기보다 ‘기억’ 같았다.
오래된 나를 불러내는 어떤 신호처럼.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별을 떠올린다.
손끝으로 그려보고, 사진으로 담고, 글로 남긴다.
별은 내게 ‘빛’이라기보다 ‘침묵’이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제자리를 지키는 고요한 존재.
아무도 바라보지 않아도 꺼지지 않고,
아무도 칭찬하지 않아도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
요즘 그런 게 얼마나 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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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관계도, 마음도
다들 너무 빠르게 꺼졌다 켜진다.
짧은 대화, 짧은 유행, 짧은 관계.
그러다 보면 별처럼 오래 빛나는 건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별을 보면
묘하게 안정된다.
마치 “그래, 세상은 아직 괜찮아” 하고
속삭이는 듯해서.
예전에는 친구가
“별이 참 많다”라고 말하면 그냥 웃었다.
이제는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였는지 안다.
별이 많다는 건 세상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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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별보다 화면 속의 ‘좋아요’를 더 많이 본다.
눈앞의 반짝임에 눈이 익어서
진짜 빛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별이 정말 사라진 걸까?
아니면 내가 먼저 눈을 감은 걸까?’
어쩌면 별은 여전히 거기 있다.
다만 우리가 너무 밝은 세상에 갇혀서
어둠 속의 빛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조명이 하늘을 덮은 게 아니라,
우리의 불안이 하늘을 덮은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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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도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 하나라도 보이면 안심이 된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해서.
그리고 그 별이 과거의 빛이라면,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위로받는 셈이다.
별은 아주 먼 옛날의 흔적이지만
지금 여기서 빛난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도착이 늦을 뿐이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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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 해도
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진 건 아니다.
희망도, 사랑도, 신념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 밝아서 못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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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빛이 아니라 ‘어둠’ 일지도 모른다.
잠시 불을 끄고,
모든 소음을 멈추고,
하늘을 다시 열어보는 일.
그때야 비로소
별이, 그리고 나 자신이 보인다.
나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둠이 있어야 별이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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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창가에 앉아
빛 하나 없는 하늘을 바라본다.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때, 아주 희미하게 깜빡이는 한 점의 빛.
나는 그 빛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너무 밝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