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장|설렘 ― 아직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

다시 느낄 용기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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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느껴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구나. 설렘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너무 먼 옛날이라,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훨씬 더 쉽게 흔들렸던 것 같다. 작은 눈빛 하나에도 가슴이 뛰었고, 짧은 문자 한 줄에도 밤새 잠을 설쳤다. 지금은 그 모든 감정이 낡은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잊은 줄 알았던 장면들이, 문득 어떤 향기 나 노래 한 소절에 스며 나올 때마다 이상하게도 조금 쓸쓸하다.

어릴 적의 설렘은 늘 ‘누군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새 학기 첫날, 창가 자리에 앉은 아이가 나를 향해 웃어주던 순간, 그 미소 하나로 하루가 반짝였다. 이름도 모르면서, 이름을 불러보는 상상만으로도 설레던 시절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지만, 그저 교실을 스칠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울리던 시간. 그때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곧 세상의 전부였고, 그 감정이 내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부터 설렘은 점점 희미해졌다.
관계는 조심스러워졌고, 감정은 효율로 계산되었다. 누군가를 만나도 마음을 먼저 주지 않게 되었다. 먼저 좋아하면 지는 거라고, 감정을 드러내면 상처받는다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배워버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군가에게 마음이 움직일 때조차 그걸 억누른다. 설레는 감정이 찾아올까 봐, 괜히 흔들릴까 봐, 마음의 문을 살짝 걸어 잠근 채 산다.

그런데도 가끔, 이유 없이 가슴이 미세하게 떨릴 때가 있다.
길가를 걷다 불어오는 바람에, 카페 창문에 비친 낯선 얼굴에, 오래 듣지 않았던 노래 한 소절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반응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마치 세상이 나를 부드럽게 흔드는 것처럼.
그럴 때면 문득 안도한다. “아직, 완전히 식은 건 아니구나.”

설렘은 단순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다.
그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 여전히 반응하고, 여전히 감각하고 있다는 표시다.
살다 보면, 너무 많은 것에 무뎌진다. 책임, 현실, 피로, 걱정. 그 속에서 감정의 색감은 점점 바래진다. 그런데 그 흐릿한 삶의 결 사이로 불현듯 피어오르는 감정, 그것이 바로 설렘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설렘이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설렘을 ‘잊은’ 건 아닐까?
매일이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작은 변화는 늘 존재한다.
하늘의 색, 바람의 냄새, 눈에 들어오는 낯선 풍경 하나.
그 모든 게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 여기 있어. 네가 다시 느껴주길 기다리고 있어.”

설렘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내가 외면했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설렘을 의식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매일 마시는 커피의 향을 조금 더 천천히 맡고, 익숙한 길에서도 다른 색의 꽃을 찾았다.
누군가와의 대화에서도 “좋아요” 대신 “그 말 참 따뜻하네요.”라고 진심을 표현하려 했다.
그 작은 차이가 내 마음의 결을 바꿨다.
설렘은 거창한 이벤트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일상의 미세한 틈에서 피어난다.

한 번은 퇴근길 버스 안에서 그런 순간이 있었다.
창밖으로 석양이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갑자기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심장이 쿵 하고 울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설렘은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오는 게 아니구나. 나 스스로에게도 설렐 수 있구나.’

어른의 설렘은 사랑이 아니라 ‘회복’에 가깝다.
한때 무너졌던 마음이 다시 일어나고, 닫혔던 감정이 다시 숨 쉬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가 아니라, 다시 나를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래 잊고 있던 나의 감정, 나의 취향, 나의 열정을 다시 느끼는 것.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 경험하는 설렘의 형태다.

사람이 설렘을 잃는 순간, 나이보다 먼저 늙는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그러니까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설렘을 잃으면서 늙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심스레 다짐한다.
늙지 않기 위해, 다시 설레기로.
무엇이든 좋아,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책 한 권, 새 카메라, 낯선 도시, 혹은 아직 만나지 않은 누군가.

그 ‘가능성’이 나를 살게 한다.

설렘은 ‘아직 기대할 수 있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없지만,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그 근거 없는 낙관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렘을 연습한다.
하루에 한 번은 내 가슴이 두 근할 일을 만들어보는 것.
낯선 카페를 들어가거나, 처음 보는 영화를 혼자 본다거나, 오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일처럼.
그런 사소한 시도가 내 마음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든다.

설렘은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설렘은 오지 않는다.
움직이는 사람에게, 감각을 열어두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래서 설렘은 결국 ‘살아있음의 태도’다.

문득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그 안에 오래된 기억의 냄새가 섞여 있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설렘을 느껴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고 말하던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설렘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잠시 나를 기다려준 것이었다.
다시 느낄 용기만 있으면, 언제든 돌아오는 감정.
그게 설렘이다.

오늘 밤, 나는 내게 조용히 묻는다.
“요즘, 넌 무엇에 설레니?”

대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질문 하나로도 이미 마음이 조금 두근거린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는 설렘이 있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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