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장|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단단한 온도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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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어릴 때는 그 말이 웃겼다.
어디서 들은 속담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어른들의 잔소리 같았다.
그땐 몰랐다. 그 한 문장이, 언젠가 나를 구할 주문이 될 줄은.

사랑이란 게 늘 그렇다.
처음엔 봄처럼 부드럽고, 나중엔 여름처럼 버겁고, 마지막엔 돌덩이처럼 차갑다.
그의 말 한마디에 웃었고, 그의 침묵 하나에 무너졌다.
매일 아침 “잘 자라”는 메시지 하나에 하루를 버텼고, 어느 날부터인가 그 메시지가 사라졌을 때, 세상이 멈춘 듯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는 나의 세상이 아니었고, 나는 그의 주변 풍경 중 하나였다는 걸.

사랑은 종종 착각으로 시작한다.
그가 내게 커피를 건네던 손끝, 문을 잡아주던 사소한 배려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눈빛이 내게만 머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엔 그런 눈빛이 많았다.
나만 특별하다는 착각은 늘, 나만 아프게 했다.

그는 내게 말했다.
“넌 너무 감정적이야.”
그래서 나는 감정을 접었다.
“넌 너무 예민해.”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너무 사랑에 진지해.”
그래서 나는 가벼운 척 웃었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졌다.
그리고 그가 떠났을 때, 나는 이미 나의 절반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그 후로 오래 걸었다.
밤마다 핸드폰 불빛이 꺼진 채,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눈물이 났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미워했다.
사랑이 이렇게 잔혹한 건지, 왜 나는 늘 지는 사람인지.

그러다 문득 거울을 봤다.
눈 밑은 푹 꺼져 있었고, 입술엔 피멍 같은 흔적이 남았다.
그때야 깨달았다.
사랑이 나를 망친 게 아니라, 내가 그 안에서 나를 놓아버린 거라고.
그제야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의 뜻이 몸에 새겨졌다.

돌이 된다는 건 차가워지는 게 아니었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사랑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쉽게 부서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누가 던져도 깨지지 않고, 누가 밟아도 흔들리지 않게 단단해지는 일.
그게 진짜 강함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돌은 말이 없지만 세상을 지탱한다.
길 위에서, 강 밑에서, 벽 속에서.
누구의 손에 들려도, 그 자리의 의미를 잃지 않는다.
사랑이 와도 중심을 잃지 않는 나.
떠나도 흔들리지 않는 나.
그게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한때는 사랑이 전부였다.
그가 웃으면 봄이었고, 그가 돌아서면 겨울이었다.
하지만 이젠 계절이 그를 따라오지 않는다.
내 안에도 충분한 계절이 있으니까.
햇살도, 비도, 바람도, 내 안에서 흘러간다.
누가 내게 묻는다.
“그럼, 지금은 사랑 안 해?”
나는 웃는다.
“하지. 다만, 나부터 먼저 사랑하지.”

돌은 냉정하지 않다.
오래도록 햇빛을 받으면 따뜻해지고, 바람을 맞으면 부드러워진다.
누군가가 만져도 차갑지 않다.
그 온기를 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나도 이제 그런 사람이고 싶다.
쉽게 녹지 않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온기를 품은 단단함으로.

이제는 누군가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누가 뭐라 해도 괜찮다.
그의 말 한마디로 무너지지 않고, 그의 침묵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중심을 안다.
사랑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안에 잠시 머물다 가는 계절일 뿐이다.

누군가 말하더라.
“요즘 여자들은 너무 세.”
나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단단하다는 건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
눈물로 단단해지고, 버팀으로 다져진 결과니까.
부드럽게 굴러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 돌처럼, 나는 내 안의 상처를 매끈하게 다듬어냈다.

세상은 여전히 여자를 부드럽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진짜 부드러움은 단단함 위에만 존재한다.
흙 위의 물은 금세 스며들지만, 돌 위의 물은 오래 머문다.
빛을 머금고 반짝이기까지 한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어도 반짝일 수 있다는 걸.

돌이 되면 외로울까?
가끔은 그렇다.
모두가 지나가고, 아무도 머물지 않을 때.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나를 듣는다.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나의 숨결, 나의 고동.
그건 결코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함이었다.

이제 나는 사랑을 경계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온다면 좋다.
하지만 그가 떠나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나로 남을 테니까.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건 미움이 아니다.
누군가를 멀리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지키라는 명령이다.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 앞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사람.
부드러움 속의 강인함, 침묵 속의 확신.
그게 진짜 돌의 온도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돌은 말이 없지만, 그 안에는 세월이 있다.
시간이 다져놓은 단단함, 바람이 새긴 결, 비가 만든 반짝임.
사랑도, 상처도, 기다림도 그 안에 다 있다.
그래서 나는 돌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의 세상에 쉽게 부서지지 않기 위해.

이제 나는 이렇게 산다.
누군가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의 시선에 비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돌처럼.
사랑을 해도, 아파도, 흘러도 괜찮다.
내 안에 나를 잃지 않으면 되니까.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돌같이 단단한 온도로 산다.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사랑하되 휘둘리지 않으며.
이제야 진짜 나로 선다.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
그 말은 결국, 여자여, 너 자신을 믿어라.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는 돌이 되어라.
그 돌 위에 너의 세상을 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