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장|봄과 가을 사이, 그 여운에 머물다

찰나의 온도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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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II. Adagio sostenuto


당신에게도 그런 계절이 있나요?
스치듯 지나가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계절.
나에게는 봄과 가을이 그렇다.
둘 다 너무 짧아서,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된다.
짧다는 건 잔인하지만, 그 짧음 덕분에 마음에 각인된다.

봄과 가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찰나처럼 스쳐가서 여운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피어나는 계절과 물드는 계절.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두 시절 속에서
나는 매번 같은 질문을 떠올린다.
“지나간다는 건, 사라진다는 뜻일까?”

봄의 향기는 유난히 부드럽다.
햇살이 하얗게 녹아들고, 공기 속엔 꽃의 분말이 섞인다.
그 냄새를 맡을 때면, 마음이 먼저 눈을 뜬다.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나는 설레고,
작은 변화에도 숨이 막히듯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는다.
겨우 봄이 익숙해질 때쯤, 꽃은 져버린다.
꽃잎이 흩날릴 때마다 알게 된다.
모든 아름다움은 ‘잠시’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는 걸.

그래서일까. 나는 봄이 늘 아쉽다.
손끝에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려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조금만 더”를 외쳐도
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 무심함이 얄밉다가도,
그 덕분에 봄은 내 안에서 더 오래 산다.

여름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눈치 없는 녀석이다.
누가 반긴다고, 대체 어느 틈에 스며든 걸까.
봄의 여운이 아직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여름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와 온 세상을 달아오르게 만든다.
햇살은 잔인할 만큼 솔직하고, 공기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숨이 차고, 마음은 쉽게 들뜬다.

여름은 참 모순적인 계절이다.
모든 게 넘치는데, 정작 마음은 공허하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나는 자주 작아지고,
무기력과 피로가 번갈아 찾아온다.
때로는 나를 태우는 태양처럼,
내 안의 열정도 그 뜨거움에 지쳐버린다.

그럼에도 여름은 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니?”
그 질문이 버겁지만, 피할 수 없다.
여름은 언제나 우리를 정직하게 만든다.
감정을 숨길 수 없고, 생각을 외면할 수도 없다.
덥다는 건 솔직함의 다른 이름이니까.

나는 여름에게서 배웠다.
견딘다는 것은, 사는 일과 닮아 있다는 것을.
땀을 흘리고, 번번이 지쳐가며,
그럼에도 다시 해를 맞이해야 하는 일.
삶도 그렇다. 피하고 싶지만, 결국 마주해야 한다.
그게 성장의 모양이니까.

여름의 끝자락이 보이면
나는 늘 안도의 숨을 쉰다.
무더위가 물러나고, 바람이 조금씩 부드러워질 때,
비로소 나는 여름에게 인사한다.
“그래도 수고했어. 너 없이는 가을을 맞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가을이 온다.
낮이 짧아지고, 해 질 녘의 노을이 길어지면
그때부터는 세상이 조용히 색을 바꾼다.
가을은 봄보다 느리고, 여름보다 깊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직하다.
모든 생명이 서서히 빛을 거두며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가을은 나를 가만히 앉혀놓고 묻는다.
“이제 조금은 괜찮아졌니?”
그 질문에 나는 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봄의 들뜸도, 여름의 혼란도 지나고 나면
가을의 고요함 속에서야 비로소
내 마음의 방향이 선명해진다.

가을바람에는 그리움이 실려 있다.
누군가의 이름, 지나간 시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하루들이
가을빛 아래에서 되살아난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라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감정이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난다는 건,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은 낙엽을 보며 생각한다.
떨어지기 전까지, 저 잎도 얼마나 빛나고 싶었을까.
스러짐이 끝이 아니라, 자연의 한 과정이라는 걸
가을은 조용히 가르쳐준다.
봄은 피어남으로 아름답고,
가을은 사라짐으로 아름답다.
그 두 계절이 닮은 점은,
모두가 ‘한순간’이란 것이다.

어릴 땐 몰랐다.
왜 어른들이 봄과 가을을 좋아하는지.
그저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좋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계절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라는 걸.
살면서 가장 그리운 건, 늘 오래 머물지 못한 것들이었다.

봄의 설렘은 한순간이고,
가을의 여운은 오래 남는다.
짧다는 건 불완전함이 아니라, 선물이다.
그래서 나는 봄과 가을을 사랑한다.
그 찰나의 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봄에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가을에는 살아왔음을 실감한다.
그 둘의 사이에서 나는 매번, ‘나’를 새로 배운다.

여름은 여전히 눈치 없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사이의 뜨거움이 있었기에
봄의 향기가 더 짙어지고, 가을의 빛이 더 선명해졌다는 걸.
견디는 여름이 있었기에,
나는 봄의 설렘과 가을의 그리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봄은 나를 피우고,
가을은 나를 덮는다.
그 사이에서 나는 매번 흔들리지만,
결국 다시 일어난다.
삶이란 게 그렇다.
피어남과 시듦 사이에서,
매번 아파하고, 또다시 아름다워진다.

오늘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었다.
봄인지, 가을인지, 여름의 끝자락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공기든 괜찮았다.
그건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봄과 가을은 여전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짧아서 좋다고.
스쳐가서 오래 남는다고.
그리고 그 사이의 여름까지도
결국 나를 완성시키는 계절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