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색을 그리는 사람, 몽상화가

현실이 버거운 날엔, 나는 몽상을 그린다

by Helia

눈을 감으면 현실이 흐려진다. 그리고 그 흐림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아무도 본 적 없는 색이 번지고, 시간은 느리게 숨을 쉰다. 그곳에서 나는 그림을 그린다. 손에 붓이 없어도, 캔버스가 없어도 괜찮다. 내 마음이 곧 물감이고, 내 생각이 곧 선이 된다. 누군가는 그것을 ‘망상’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 이름이 오히려 좋다. 세상을 버텨내기 위해선, 때때로 꿈이 현실보다 더 선명해야 하니까.

어릴 적, 내 방 벽지는 새하얀 색이었다. 하지만 내 눈엔 늘 바다가 일렁였다.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마다 그 흰 벽은 푸른 물결로 바뀌었다. 나는 손끝으로 파도를 그리며 놀았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건 이미 내 첫 그림이었다. 세상에 없는 색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다. 나중에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될 줄을.

“나만 이런 걸까?”
현실이 너무 뚜렷해서 숨이 막히던 날들, 나는 자주 상상 속으로 도망쳤다. 벽 틈 사이로 비가 스며들 듯, 현실의 틈새로 꿈을 밀어 넣었다. 세상이 내게 이성으로 살아가라 말할 때, 나는 감정으로 그렸다. 세상이 정답을 요구할 때, 나는 색으로 대답했다.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괜찮았다. 상상만이 내 마음을 숨 쉬게 했으니까.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현실만으로 정말 숨이 쉬어지냐고. 어쩌면 상상은 생존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고단한 하루 끝마다 눈을 감고,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무너진 다리 위에도 꽃이 피고, 사라진 계절에도 바람이 분다. 눈물은 별빛이 되고, 상처는 그림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버틴다. 상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번 마음의 붓을 든다.

나는 세상에 없는 풍경을 그린다. 공기 속의 향기, 바람의 모양, 기억의 그림자들. 누구도 본 적 없는 색이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그린다. 외로움은 짙은 남색, 불안은 흔들리는 회색, 위로는 투명한 연보라. 내 그림은 감정의 팔레트에서 시작된다. 현실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결을, 색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내 방식의 고백이다.

가끔은 현실이 너무 단단해서, 아무 색도 묻지 않는다. 그런 날은 그저 눈을 감는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 안의 조용한 빛을 켠다. 바람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붓질이 되고, 커피잔에 뜬 거품의 윤곽이 누군가의 얼굴로 번진다. 나는 그 미세한 흔적 속에서 색을 찾는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어쩌면 그것이 진짜 예술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복제하는 대신, 세상에 숨겨진 마음을 그려내는 일. 나는 그 일을 믿는다.

“현실은 늘 날 밀어냈다.”
나는 그 문장으로 수없이 스케치북을 열었다. 하지만 밀려난 자리에서만 피어나는 색이 있다. 절망은 검은색만 남기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반짝이는 은빛을 품고 있다. 상처의 선은 거칠지만, 그 거침 속에서만 진짜 질감이 태어난다. 나는 그걸 사랑한다. 불완전함이 만든 아름다움, 모순이 빚은 온기. 세상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나의 세계를 이해하니까.

때로는 누군가가 내 그림을 보고 묻는다. “이건 무슨 뜻이에요?”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림은 말로 설명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느끼는 그대로가 답이다.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미소,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림은 언어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다. 몽상은 그 감정을 지켜내는 쉼표 같은 것. 우리는 모두 현실 속에서 문장을 쓰지만, 나는 그 문장의 사이, 쉼표에 머문다. 그 잠깐의 틈이 나를 살린다.

현실의 속도가 너무 빠를 때, 나는 일부러 멈춘다. 다른 사람들은 달리지만, 나는 눈을 감는다. 상상 속의 바다로 걸어 들어가, 나만의 하늘을 띄운다. 그곳엔 정답도, 경쟁도 없다. 오직 색과 감정만 있다. 거기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그 목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 나의 몽상이 현실을 지탱해 주는 역설적인 순간이다.

세상은 늘 합리적이길 원한다. 하지만 예술은 불합리 속에서 피어난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불합리의 온도를 믿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의 틀을 벗어나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인다. 누구도 보지 못한 색, 누구도 듣지 못한 소리. 그것은 몽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계속 꿈을 꾼다. 그 꿈이 나를 지켜왔고, 지금도 나를 살아 있게 하니까.

“언제부터 현실이 전부가 되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어린 날의 나는 벽 한쪽만 봐도 바다를 보았고, 구름 한 조각에도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상상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단지 더 조용해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허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허무는 사라짐이 아니라, 다른 색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내가 그리는 모든 그림은 그 허무의 잔향으로 완성된다.

밤이 찾아오면, 창문에 달빛이 번진다. 나는 그 빛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종이 대신 어둠 위에, 물감 대신 마음으로. 세상에 없는 색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눈을 감는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바람이 내 어깨를 스친다. 그 순간 나는 안다. 세상은 여전히 그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걸. 현실은 회색이지만, 그 속엔 무수한 색이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색을 찾아내는 사람, 세상에 없는 색을 그리는 몽상화가다.

현실이 내 꿈을 비웃어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세계를 그린다.
그곳에만 진짜 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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