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도, 그냥 살아본다
헤어지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건 ‘잊는 법’을 검색하는 거였다. 웃기지? 검색창에 대고 물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잊죠?” 그런데, 그 밑으로 주르륵 뜨는 답변들을 읽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사랑이란 게 그렇게 설명으로 사라질 수 있는 거였다면, 세상엔 아직도 울고 있는 사람이 없겠지. 나는 울지도 못하고 그저 모니터 불빛에 얼굴을 비추며, 이렇게 물었다. “정말, 사람을 잊는 법이 있긴 한 걸까.”
그때만 해도 나는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그 사람이 떠나면 내 모든 일상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다. 아침 햇살도, 커피 향도, 출근길 버스의 소음마저도 그 사람의 흔적으로 가득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했다. 헤어지고 나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세상은 여전히 돌아갔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여전했다. 웃기게도, 나는 그 평범함이 너무 괘씸했다. 내가 이렇게 무너졌는데,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가다니.
이별 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했다. 카페에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친구들은 별일 아닌 듯 안부를 물었다. 그게 더 잔인했다. 나만 시간이 멈춘 듯 아파했는데,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결국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나도 억지로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웃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이상하게 어느 날은 별거 아닌 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슬픔이란 것도 결국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구나.
우리 모두 그랬잖아. 헤어지고 나면 세상이 끝날 줄 알았잖아. 그런데 정작 아무 일도 없더라. 그렇게 절망스러웠던 마음이, 어느 날은 밥 한 끼 앞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라. 잊는 법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게 잊는 거더라. 숨 쉬고, 걸어 다니고, 커피를 내리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던 때가 있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눈물이 쏟아지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아도 아무 감정이 일지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듣지 않은 노래처럼, 멜로디는 익숙한데 가사가 낯설다. 잊는다는 건, 그렇게 스며드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옅어지고, 서서히 흐려지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진다.
잊는 건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문제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다. 버티고, 견디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약이야.” 그 말이 너무 뻔해서 믿기지 않지만, 결국엔 맞다. 시간은 약이다. 단, 서서히 녹는 약이다. 처음엔 아무 효과가 없는 듯하지만, 어느 날 문득 마음이 덜 아픈 걸 느끼면 그게 바로 시간의 작용이다.
잊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흔들린다. ‘내가 너무 빨리 잊는 걸까?’ ‘아직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이 감정이 진짜 끝난 걸까?’ 그 물음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답은 늘 같다. 잊는 건 배신이 아니라 생존이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마음은 바람에 닳고 비에 녹슬어버린다. 살아남기 위해선 결국 잊어야 한다.
어느 날은 그 사람이 듣던 노래가 우연히 흘러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노래가 그냥 노래로 들렸다. 그때 알았다. 아, 이제 정말 괜찮아졌구나. 잊는 건 그런 거다. 애써서 밀어내는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끝난다.
이별 후 마음이란 참 묘하다. 아픈 게 오래갈 줄 알았는데, 막상 그리움보다 허기가 먼저 찾아온다. 밥 먹고, 잠들고, 깨어나고,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나아간다. 잊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몸이 먼저 삶을 배우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걷고, 햇살을 맞는 일 — 그 사소한 생의 움직임들이 결국 우리를 구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별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사랑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잊는다는 건,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되찾는 일이다. 사랑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우리는 자신을 마주한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을까.’ ‘왜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었을까.’ 그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알아간다. 결국 잊는 법은, 자신을 아끼는 법이다.
완전히 잊는 건 불가능하다. 인간의 기억은 삭제가 아니라 덮어쓰기다. 새로 쌓이는 일상 위에 예전의 감정이 서서히 묻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가을 냄새 속에서, 오래된 노래 속에서, 혹은 아무 이유 없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는 그냥 미소 짓는다. 그 기억이 더는 나를 아프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슬픔의 잔재가 아니라, 잘 살아낸 시간의 흔적이다.
잊는 법을 알려주는 글들은 대체로 똑같다. “운동하세요.” “친구를 만나세요.” “여행을 가세요.”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잊는 건 그런 행동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뛰고 떠나도 마음이 따라오면 아무 소용없다. 결국엔 시간과의 타협이다. 버티고, 견디고, 하루를 살아내는 그 반복 속에서 마음이 조금씩 무뎌진다. 그리고 그 무뎌짐이 바로 회복이다.
이제 나는 잊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잊는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사랑했기에 아팠고, 아팠기에 기억했고, 이제는 그 기억 위에 새날을 쌓아가고 있으니까. 잊는 건 잔인한 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일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오늘도 그냥 살아보자. 누군가를 잊고 싶다면,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말고, 그냥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밥을 먹고, 걷고, 웃고, 자고, 그 단순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잊는다.
헤어지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건 ‘잊는 법’을 검색하는 거였다. 그런데 세상에, 그 답은 검색창이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었다. 잊는 법은 살아가는 법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