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말로 닿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by Helia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 거울 속 사람은 분명 나인데, 낯선 그림자를 닮아 있다. 이름을 붙이면 무언가 명확해질 것 같지만, 이상하게 그럴수록 더 멀어진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오늘의 나는, 무제다.

햇살이 커튼 틈을 비집고 방 안의 먼지를 반짝였다. 커피 향이 공기를 천천히 데우고, 아직 덜 깬 마음은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지나가며 이름 모를 소리를 남겼다. 그 모든 장면이 의미도 이유도 없이 나를 감쌌다. 그냥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이름 없이도 살아 있다는 건,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정의하려 한다. 감정에도, 관계에도, 심지어 하루의 온도에도 이름을 붙인다. 사랑, 우정, 희망, 후회. 하지만 그 단어들이 정말 우리가 느낀 것들을 다 담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사랑은 눈물의 온도였고, 후회는 손끝의 떨림이었다. 그건 단어가 아니라 감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설명 대신 침묵을 택했다. 말로 닿지 않는 마음은, 그냥 그렇게 둔다.

무제의 하루는 유연하다. 계획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묘한 평온이 있다.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낙엽처럼, 어디로 가든 그것 자체로 자연스럽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억지로 방향을 정하지 않고, 누가 묻지 않아도 괜찮은 삶. 이름이 없어도 존재하는 나로서.

아침에 마주한 거울 속의 나는 조금 전보다 더 투명했다. 익숙한 표정인데도 왠지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어쩌면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제의 나는 확신이 있었지만, 오늘의 나는 망설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내일의 나는 또 다른 무언가로 깨어나겠지. 그 변화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무제 속에서는 모든 것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자유는 사라진다. ‘행복’이라 부르는 찰나도, ‘사랑’이라 부르는 숨결도, 단어 속에 갇히면 한순간 빛을 잃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진을 찍을 때도 제목을 붙이지 않다. 그냥 ‘IMG_0001’ 같은 파일명으로 남겨둔다. 그게 더 솔직하다. 그날의 하늘이, 그날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오직 나만 안다.

어릴 적 미술 시간에 제목 없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선생님이 물었다. “이건 뭐 그린 거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푸른색 한가운데, 조그만 점 하나를 찍었다. 친구들은 웃었지만, 내겐 그 점이 전부였다. 설명할 수 없지만, 지우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내 첫 번째 ‘무제’였다.

사람은 자꾸 의미를 찾아 헤맨다. 이유가 있어야 안심하고, 이름이 있어야 기억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어떤 감정은 이름이 없어야 오래 남는다. 이름이 붙으면 언젠가 불리지 않게 되고, 잊힌다. 그러나 무제의 감정은 그렇지 않다. 모호함 속에서 끝없이 변화하며, 매번 새로운 얼굴로 찾아온다.

커피잔을 들었다. 잔 표면에 햇빛이 일렁였다. 불완전한 유리의 미세한 기포들이 그 속에서 반짝였다.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세상 모든 투명함은 약간의 혼탁함을 품고 있다. 삶도 그렇다. 너무 깨끗하면 숨 쉴 틈이 없다. 얼룩 하나쯤은 있어야 빛이 머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없는 하루는, 마치 공기 같다. 잡히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를 살게 한다. 그런 하루가 내겐 많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기대도, 나 자신의 기준도 벗어난 하루. 그저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충분한 날.

한동안 나는 모든 것에 제목을 달았다. 하루의 일기에도, 마음의 상태에도, 심지어 꿈에도 이름을 붙였다. ‘후회’, ‘기대’, ‘그리움’. 하지만 어느 날, 그 단어들이 하나같이 낯설게 느껴졌다. 단어의 껍질을 벗겨보니 안에는 결국 같은 감정이 있었다. 사랑은 슬픔이 되었고, 슬픔은 그리움으로 번졌다. 감정은 이름을 바꿔가며 같은 자리에서 순환했다. 그래서 무제가 편했다. 이름 없이 존재하는 감정은, 한계 없이 확장될 수 있었으니까.

오후의 햇살이 방 안을 기울였다. 그림자가 천천히 바닥을 지나가며 내 발끝을 덮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웃음이 났다. 이유를 찾지 않으려 했다. 이유를 찾는 순간, 그 웃음이 사라질까 봐. 우리는 너무 자주 ‘왜’라는 단어로 마음의 온도를 식혀버린다. 때로는 그냥 느끼면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진짜일 수 있다.

밤이 찾아오면, 나는 종종 글을 쓴다. 제목을 정하지 못한 채로. 키보드 위에 흩어지는 단어들은 내 마음의 조각들 같다. 어느 하나 완성되지 않았지만,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문장이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이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무제의 글은 그래서 좋다. 끝을 정하지 않아도, 이미 시작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삶도 그렇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미완의 상태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언젠가 완벽해지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나는 내 불완전함을 믿는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아름답고, 흐릿해서 더 오래 남는다. 무제는 그런 나를 그대로 품어주는 이름 없는 그릇이다.

이름을 잃은 채 걸어가는 밤거리에는 묘한 평화가 있다. 불빛들이 제각각 흔들리며 나를 따라온다. 그 빛들은 어느 것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명의 순간이 가장 나다워진다. 아무도 나를 규정하지 않고, 나조차 나를 단정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비로소 자유다.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쓴 문장을 잊는다. 그러나 마음으로 쓴 문장은 남는다. 그것이 무제의 힘이다. 말로 닿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용히 흔들린다.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규정하지 않아도 남는 글.

무제는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사랑, 이별, 후회, 다짐, 미련. 다만 이름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제의 이름으로 하루를 산다. 누군가 물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웃는다. 그게 오늘의 나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직 제목 붙이지 못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여전히 서두에 머물고, 누군가는 마지막 장을 쓰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장면에 있든, 그 이름 없는 순간들이 모여 결국 한 권의 삶이 된다. 그리고 그 책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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