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향한 가장 조용한 사랑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멀어지는 뒷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거리는 마음의 거리이기도 했다. 손끝이 허공을 스칠 때마다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건, 그 사람이 사라지는 방향을 끝까지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오래 지켜보는 건 쉽지 않다. 사랑이 깊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미움이 스며들면 시선은 흐려진다. 우리는 대체로 ‘보는 법’을 배우지만, ‘지켜보는 법’은 배우지 못한다. 보는 건 즉각적이지만, 지켜보는 건 인내의 시간이다. 서두르지 않고, 대신 묵묵히 기다리는 마음. 그게 진짜 지켜봄의 시작이다.
한때 나는 사랑을 ‘지켜보는 일’이라 믿었다. 그 사람의 하루를 눈빛으로 따라가고, 미세한 표정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웃으면 세상이 환했고, 그가 침묵하면 내 안까지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건 감시였지, 지켜봄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지켜본다는 건, 그 사람의 시간 속에서 내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다. 내 자리를 비워두는 용기, 그것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켜본다는 건 붙잡지 않는 애정이다. 손에 넣지 않아도 그 존재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성숙한 시작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침묵이 길어지고, 손이 아닌 눈으로 전하는 위로가 커진다. 지켜봄은 결국 기다림의 다른 말이니까.
나는 할머니를 그렇게 보냈다. 손마디가 점점 가늘어지고, 목소리가 바람결처럼 얇아지던 시절이었다. 아무리 많은 약을 챙겨드려도 병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스며들었다. 나는 할머니의 숨결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분은 이미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어느 저녁, 햇살보다 희미한 열이 손끝에 남았다. 나는 그 온기를 잃지 않으려 천천히 숨을 쉬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붙잡는 사랑보다 지켜보는 사랑을 배웠다.
사람은 언젠가 모든 것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게 자연의 순리이고, 관계의 질서다.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놓을 순간이 온다. 그때의 놓음은 포기가 아니라 인정이다. 흘러가야 할 것은 흘러가게, 남아야 할 건 남게 두는 일.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지켜보듯, 나 자신도 지켜본다. 초조한 마음이 달아오를 때, 결과를 재촉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상처가 아무는 속도도, 관계가 회복되는 속도도 모두 다르다. 억지로 재촉하면 결국 상처는 더 깊어진다. 때로는 기다림이 가장 빠른 길이다.
세상을 지켜본다는 건, 멈춤 속에서 움직임을 보는 일이다. 구름이 흘러가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아이가 웃고, 고양이가 창가에 앉아 낮잠을 자는 모습들. 그런 평범한 장면들이 마음을 부드럽게 덮는다. 그 안엔 삶의 속도가 아니라, 온도의 차이가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결국 서로를 잠시 지켜보다 흩어지는 일이다.
예전엔 사랑이 끝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끝난 뒤에도 남는 게 있다. 사진 한 장, 메시지 한 줄, 문득 떠오르는 웃음소리.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의 형태는 바뀌어도 시선은 여전히 남는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며 보내는 마음, 그게 사랑의 완성일지도 모른다.
지켜봄에는 거리감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상처가 선명하고, 너무 멀면 온기가 식는다. 적당한 거리란, 그 사람의 세상을 존중하면서도 내 마음을 놓치지 않는 간격이다. 마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방 안을 덮되, 결코 타오르지 않는 것처럼. 그 절제의 온도가 관계를 오래 지속시킨다.
때로는 그런 지켜봄이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진심은 결코 헛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아도 전달된다. 멀리 서라도 그 사람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면, 그건 이미 내가 닿은 것이다.
지켜보다 보면 결국 자신을 보게 된다. 그를 향했던 시선이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온다. 상처투성이의 하루도, 아무 말 없이 견뎌낸 밤도, 이별 후 남은 빈자리도 다 지켜본다.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그래, 지금은 이만큼 힘든 시간이다’ 하고 인정하는 일. 그것이 나를 위한 지켜봄이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향해 “괜찮니?”라고 묻기보다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에는 힘이 있다. 조언보다, 위로보다 더 오래 남는 온기다. 지켜본다는 건 관심의 다른 얼굴이고, 사랑의 다른 형태다.
세상은 늘 변한다. 사람은 떠나고, 계절은 바뀌고, 마음은 식기도 한다. 하지만 지켜보는 마음만은 닳지 않는다. 그 마음이 세상을 단단하게 묶는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을 수 없지만, 서로의 시간을 지켜볼 수는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뒤따른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든 우리는 서로의 등을 바라본다. 그게 삶이다. 지켜보는 일은 끝이 아니라 연속이다.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고, 멀어져도 기억된다.
사랑이란 결국 서로를 잠시 지켜보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 돌아와서야 비로소 안다. 그때의 지켜봄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그 사람을 보던 눈빛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오늘도 나는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본다. 구름이 흘러가고, 햇살이 벽을 타고 내려앉는다. 멀리서 누군가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세상 모든 인연은 결국 서로를 지켜보다 스쳐 지나가는 일.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대를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