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
요즘 들어, 예전의 내가 점점 멀게 느껴진다.
같은 나인데, 어쩐지 조금 다르다.
예전보다 말수가 줄었고, 웃음은 천천히 피어난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세월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 때문일까.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지 않다.
옛날엔 몰아서 자던 버릇이 있었지만, 나이 들고 나서는 잠이 짧아졌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들 때도 많다.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저 푹 자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어느 순간 가장 큰 소원이 되어버렸다.
예전엔 밤을 새워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단 몇 시간의 잠 부족이 하루를 무겁게 만든다.
몸이 예민해졌다는 건, 세상에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때 나는 시간에 쫓기며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늘 여유로웠다.
늦으면 늦는가 보다, 하는 사람이었다.
서두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달라졌다.
약속이 있으면 30분, 아니 한 시간 일찍 출발한다.
그렇게 미리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마음이 제일 편하다.
시간에 쫓기듯 허둥대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질색이지만,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건 더 싫다.
그건 예의가 아니라 민폐다.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먼저 움직이고,
초조함이 싫어 미리 도착하고,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한때 낭비처럼 느껴지던 그 시간이,
이제는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달라진 건 단지 생활 습관이 아니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의 온도다.
예전의 나는 ‘괜찮아, 뭐 어때’ 하며 모든 걸 대충 넘겼다.
그게 여유라 착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진짜 여유는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에서 온다는 걸.
그래서 나는 늦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어쩌면 내가 세상과 맺는 가장 단정한 예의다.
예전엔 남의 시선을 신경 썼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말을 할지.
그 눈빛 하나에 하루 종일 흔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고,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였다.
이젠 해명하지 않는다.
진심은 설명이 아니라 시간으로 드러난다는 걸 배웠으니까.
몸의 속도도 달라졌다.
예전엔 잠이 부족해도 하루를 버텼지만,
지금은 피로가 쌓이면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따라 무너진다.
그 사실을 뒤늦게 배웠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다.
쉬는 법을 알게 됐고, 쉬어야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버스가 늦으면 발끝이 들썩이고,
택배가 하루만 늦어도 불평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기다림의 결이 바뀌었다.
기다림 속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초조함을 견디는 힘, 멈춤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다.
이젠 기다릴 줄 안다.
누군가를, 상황을, 그리고 나 자신을.
무언가가 조금 늦어도 괜찮다.
때로는 세상이 내 속도에 맞춰 늦게 움직여주는 듯할 때도 있다.
그 느림이 나를 살린다.
사람 관계도 달라졌다.
예전엔 모든 사람에게 다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정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모든 사람을 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선택한다.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한 사람,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
그 몇 명이면 충분하다.
넓이보다 깊이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외로움도 달라졌다.
예전엔 외로움이 두려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공허했고,
누군가 곁에 없으면 허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외로움은 다르다.
조용하고, 단정하고, 때로는 따뜻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회복시킨다.
그 시간에 비로소 나를 이해하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다.
잃음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예전엔 잃는 걸 실패로 여겼다.
사람이 떠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잃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비워야 채워지고, 놓아야 자유롭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내려놓는다.
사람을, 미련을, 그리고 어제의 나를.
이제는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약함을 숨기지 않고, 불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속도로 살아가면 된다.
그게 내게 맞는 삶의 리듬이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다.
사람들은 여전히 앞다투어 달린다.
하지만 나는 그 속도에서 살짝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걷는다.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숨을 고르며.
누가 먼저 도착하든, 누가 더 멀리 가든 상관없다.
나는 나의 리듬으로 산다.
그리고 그 리듬 속에서 깨닫는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조급함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기다림이 싫어도, 기다리게 하지는 않는 마음.
그게 내가 배운 예의이고, 내가 달라진 점이다.
오늘도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선다.
그 기다림의 여백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예전엔 게으름 같았던 나의 느림이,
지금은 나를 지켜주는 리듬이 되었다.
이제야 안다.
나는 변한 게 아니라,
조금 더 나를 아끼는 법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