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의 철학
쓸데없다는 말, 참 잔인하지 않나.
마치 존재의 이유를 지워버리는 주문 같다.
그 한마디면 뭐든 무의미해진다. 꿈도, 취미도, 사람도. “그게 무슨 소용이야?”라는 말엔 늘 냉기가 묻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놓치는 건 있다. 세상의 모든 쓸데없음이, 사실은 삶의 숨결이라는 것.
누군가는 버려야 산다고 말한다. 불필요한 감정, 낡은 기억, 오래된 관계. 다 쓸데없다고.
그런데 그 ‘쓸데없다’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게 아닐까.
가끔은 쓸모보다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이유 없는 일들이 세상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으니까.
책상 서랍 안엔 언제 버렸어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 있다.
다 쓴 펜, 찢어진 엽서, 몇 년 전 영화 티켓.
누가 보면 쓰레기지만, 내겐 작은 시간의 증거다.
그때의 웃음, 그날의 냄새, 그 사람의 얼굴.
시간이 지나면 다 쓸데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제일 오래 남더라.
쓸모가 사라진 자리에서만 비로소 마음이 자라난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쓸데없는 존재라 느낀다.
하지만 세상에 진짜 쓸데없는 사람은 없다.
제자리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엉뚱한 곳에 놓인 의자는 불편하지만, 자리를 바꿔 놓으면 꼭 맞는다.
사람의 쓰임도 그렇다.
자신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선 누구나 쓸모를 잃는다.
그래서 때로는 떠나야 한다.
비켜서야 보이는 자리도 있으니까.
나는 쓸데없는 시간들을 사랑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창문 밖을 바라보는 순간들.
그 시간들이 나를 살린다.
쓸데없어 보이는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 할 건데?”
나는 이제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숨 쉬려고.”
그 말이면 충분하다.
누군가는 하루를 계획으로 채우며 살아간다.
나는 계획 대신 공백을 남겨둔다.
그 빈칸에서 좋은 일이 피어난다.
쓸데없는 일들은 꼭 그런 식으로 찾아온다.
예고 없이, 우연처럼.
커피를 쏟아 망친 하루에서 좋은 문장이 태어나고, 엉뚱한 골목길에서 오래된 향기를 만난다.
의미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삶은 더 자연스럽게 흐른다.
사람들은 쓸모를 너무 일찍 단정 짓는다.
“그 일은 시간 낭비야.”
“그 사람은 별 볼 일 없어.”
하지만 세상은 낭비 속에서 진화했다.
과학의 우연, 예술의 실패, 사랑의 미숙함이 세상을 이만큼 아름답게 만들었다.
쓸데없던 것들이 결국 전부를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쓸데없는 것을 믿는다.
그 안에는 아직 말로 다할 수 없는 가능성이 숨어 있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자주 한다.
아무 의미 없는 농담, 쓸데없이 긴 인사, 어설픈 위로.
그런데 그런 말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쉬어.”
단 두 마디로 사람의 마음이 살아난다.
쓸모없는 말이 사람을 살린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역설인가.
결국 말도 마음도, 다 쓸데없음에서 시작된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처음엔 꼭 필요한 문장만 쓰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글은 숨이 막혔다.
주제만 남고, 사람이 사라졌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는 쓸데없는 문장을 남겼다.
주제 밖의 문장, 엉뚱한 비유, 뜬금없는 기억.
그 문장들이 글을 살렸다.
쓸데없는 말이 글의 숨통이 되었다.
아마 인생도 비슷하겠지.
모든 게 효율적이면 결국 아무 감정도 남지 않는다.
한 번은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건 시간 낭비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낭비로 피는 꽃도 있어요.”
쓸데없음의 끝에서 피는 건 언제나 아름다움이다.
구름도, 바람도, 파도도 쓸데없다.
하지만 그 쓸데없음이 세상을 살린다.
그게 바로 자연의 방식이다.
쓸모를 따지지 않아도 존재는 빛난다.
우리는 자꾸 이유를 찾지만, 이유 없는 게 오히려 진짜다.
나는 오늘도 쓸데없는 일을 했다.
창밖 구름을 세고, 고양이의 하품을 따라 하며, 의미 없는 낙서를 남겼다.
그런데 그게 참 좋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누군가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겠지만,
삶은 그런 쓸데없는 것들 덕분에 이어진다.
효율만 남은 세상에선 아무도 웃지 못한다.
쓸데없음은 결국 인간의 여유이자 증거다.
가끔은 그렇게 생각한다.
쓸데없다는 건, 아직 쓰일 차례가 오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조금 늦을 뿐, 사라진 게 아니다.
모든 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언젠가 그 쓸모가 드러나는 날이 있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말자.
누군가의 쓸데없음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구원이 된다.
쓸데없음을 함부로 버리지 말자.
그건 살아 있는 증거다.
말도, 물건도, 기억도, 사람도.
다 때가 되면 쓰임을 가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쓸데없는 것들이 모여 결국 삶이 된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이 모든 게, 다 쓸데없지 않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