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장|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은 것은 무엇

시기와 질투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질까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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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Mahler – “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 (나는 세상으로부터 잃어버려졌다)”
From Rückert-Lieder, for voice and orchestra


누군가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생물이라고. 매일 자라나고, 시들고, 또다시 돋아나는 그 마음속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우리는 종종 그 어둠을 인정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시기와 질투, 열등감, 미움 같은 것들. 아무리 감춰도 문득문득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은 바로 그 부정적인 마음들이 아닐까 하고.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비교의 저울을 품고 산다. 타인의 웃음에 자신을 대입하고, 누군가의 성공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떠올린다. 그건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감정의 반사신경 같다. 누군가가 빛나면 그 빛이 내 그림자를 더 짙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빛은 원래 각자의 방향으로 비춘다. 다른 이의 빛이 내 빛을 가릴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는다.

질투는 처음엔 작고 귀엽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그 단순한 바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바람이 오래 쌓이면 바람은 질풍이 된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이 점점 자신을 향한 분노로 바뀌고, 결국 그 마음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시기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행복을 내 불행으로 착각하는 순간, 내 안의 기쁨은 자취를 감춘다. 누군가의 웃음을 보며 ‘왜 나는 저렇게 되지 못했을까’라고 되묻는 그 짧은 찰나에 이미 마음은 독에 젖는다. 그렇게 관계가 녹슬고, 말끝이 차가워지고, 눈빛이 달라진다. 결국 미움의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친구가 나보다 예쁘다고 해서 내가 예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듣지 못한 칭찬을 친구가 들었다고 해서 시기할 이유도 없다. 단지, 나의 예쁨을 아직 누군가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의 시선은 제각기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어떤 이의 눈에는 장미가 먼저 들어오고, 또 다른 이에게는 들꽃이 먼저 피어난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처럼, 누군가의 눈에 내 친구가 먼저 예뻐 보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덜 아름다운 건 아니다. 나의 빛은 다른 계절에, 다른 온도로 피어날 테니까.

우리는 흔히 말한다. “나는 질투 같은 건 안 해.” 하지만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말일지도 모른다. 질투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어떤 이는 질투를 미움으로 키우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을 동기부여로 바꾼다. 질투는 본래 추한 감정이 아니다. 그 안에는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단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질투를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인정하면, 마음은 조금 덜 아프다.

SNS를 켜면 비교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진다. 누군가는 여행 중이고, 누군가는 사랑 중이며, 누군가는 여전히 빛나고 있다. 타인의 행복이 내 피드에 흘러들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용히 시들어간다.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그들의 행복은 내 슬픔의 이유가 될 필요가 없다. 사람마다 타이밍이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햇살의 각도가 다르다. 지금은 그들의 봄일 뿐, 언젠가 내 계절도 다시 올 것이다. 꽃은 한 번에 피어나지 않는다. 각자 피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질투와 시기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빛깔을 존중한다. 타인의 성공을 축하할 때 마음 한편이 쿡 찌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웃음이 내 미소를 덮지 않는다. 세상은 조금 더 느긋해지고, 관계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경쟁이 아닌 공존의 언어가 일상이 되고, 서로의 존재가 위로가 된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가 더 예쁜가’보다 ‘누가 더 행복한가’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그 질문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다.

시기와 질투가 무서운 이유는 그 감정이 너무 조용히 번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불이 타오른다. 그 불은 말 한마디에 옮겨붙는다. 무심한 칭찬에도, 작은 실수에도 쉽게 번진다. 하지만 그 불을 끄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타인의 눈을 거두고, 나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하고 있나?”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마음이 복잡할수록 답은 단순해진다.

나는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다. 질투는 바다 밑바닥의 소용돌이 같다. 겉은 잔잔해 보여도 그 밑은 늘 요동친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자신도 모르게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고르면, 바다는 금세 고요를 되찾는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비교를 멈추고 자신에게 집중할 때, 마음은 다시 잔잔해진다. 그 잔잔함 속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파도를 만든다.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를 미워하게 만드는 마음이다. 그 마음만 사라져도 세상은 훨씬 따뜻해질 것이다. 시기와 질투, 열등감과 미움, 그 모든 어두운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와 연민이 남는다. 그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면, 사람은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라 동행이 된다. 누군가의 성공이 내 실패로 느껴지지 않고, 누군가의 행복이 내 외로움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덜 외로워지고, 덜 상처받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누군가의 빛을 부러워하기보다, 그 빛을 축복하자고. 질투가 스며들 때마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존중하자고. 내 안의 어둠을 부정하지 말고, 그 안에 작은 불을 켜자고. 마음의 불씨는 그렇게 하나씩 바뀌어간다. 미움 대신 이해로, 열등감 대신 자존감으로, 비교 대신 존중으로.

시기와 질투는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내가 충분히 괜찮지 않다는 생각, 내가 뒤처졌다는 불안이 만든 허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히 순위를 매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각자 다른 시간표로 살아가는 존재들이 같은 속도로 걷지 못한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니다. 어떤 이는 아침 햇살에 피어나고, 어떤 이는 저녁노을에 물든다. 늦게 피어나는 꽃이 향기가 더 진하다는 말처럼, 나의 때는 언제나 나에게 맞춰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에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괜찮아. 아직 피어나지 않았을 뿐,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할 것은 미움과 비교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하게 빛날 수 있다. 누군가의 빛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나 또한 빛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