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어떤 영화의 장르로 살고 싶나요?

엔딩이 조용히 아름다운 영화처럼

만약 내 인생이 영화라면, 어떤 장르일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액션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다.
환상적인 판타지도, 웃음소리로 가득한 코미디도 아니다.

나는 조용하고, 그러나 깊은 여운을 남기는 휴먼드라마 속을 살아가고 싶다.

반짝이는 클라이맥스가 없어도 좋다.
박수를 유도하는 영웅의 서사도 없어도 된다.
다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관객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독이며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생의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이지만,
나는 동시에 조연이기도 하다.
조연으로서 누군가의 장면을 완성시켜 주는 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빛나는 한 사람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배경처럼,
나는 누군가의 하루를 덜 외롭게 만들고,
그들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대사 하나, 내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에서 작은 전환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의 일상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중해진다.

휴먼드라마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진짜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갈등과 눈물, 미완의 화해,
다시 맞잡지 못한 손끝의 아쉬움까지.
그 모든 것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룬다.

나는 그 감정의 결들을 껴안고 살고 싶다.
찢어진 순간들조차 한 장면의 조각으로 남겨,
시간이 흐르면 따뜻하게 회상할 수 있도록.
때로는 마음이 부서져도,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과정이
결국 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일 테니까.

가끔은 화면이 멈춘 듯,
삶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조명이 꺼지고, 대사도 사라지고,
내가 무대 밖으로 밀려난 듯한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삶의 장면들을 다시 돌려본다.

친구와 함께 웃던 오후,
길가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울컥했던 순간,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던 새벽.
그런 장면들이 내게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희망이란 결국 그런 기억 속에 숨어 있는 빛이다.
눈부시게 크지 않아도,
작고 따뜻하게 내 안을 비추는 조명 하나.
그게 바로 인생이 나에게 건네는 희망의 형태다.

나는 행복을 좇는 주인공이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상처받고, 흔들리고, 때로는 길을 잃더라도,
결국엔 다시 웃을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웃음이 나 하나의 감정으로 머무르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길 바란다.
내 인생의 영화가 누군가에게도
희망의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보다 영광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영화 속 인물이다.
내게는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하루에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진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늘을 허투루 살 수가 없다.
누군가의 장면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하루를 진심으로 연기하고 싶다.

연기라고 하면 어쩐지 가짜 같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때로는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다고 내 삶이 거짓은 아니다.
오히려 더 진짜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북돋우고, 믿어주기 위해
오늘도 살아낸다.
그런 내가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나라는 존재, 내 말 한마디,
때로는 조용히 건넨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우울한 하루에 작은 등불이 될 수 있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인생의 장르는 하루아침에 정해지지 않는다.
어릴 때는 코미디 같다가,
사춘기에는 다큐멘터리 같고,
청춘에는 멜로드라마가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
결국 각본 없는 휴먼드라마가 된다.

나는 지금 그 드라마 속을 걷고 있다.
때로는 엑스트라처럼 조용히 배경이 되고,
때로는 카메라가 나를 중심으로 비출 때도 있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엔 진짜 감정이 있다는 것.
대본도, 리허설도 없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는 것.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
나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다.
후회도 하고, 감동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나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언젠가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내 인생이 단 하나의 장르로 남기를 바란다.

휴먼드라마.

그 안에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상실도 있고,
다시 일어서는 희망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며
주변 사람들을 조금 더 환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그 흔적 하나로 충분하다.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끝까지 진심으로 살아낸 시간들 속에 있다.
누군가의 박수보다,
조용한 여운으로 남는 엔딩이 좋다.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화면이 서서히 어둠에 잠길 때,
나는 나지막이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 이 인생이면 충분했어.’

그리고 엔딩 크레디트가 천천히 올라갈 때,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장면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아직 찍히지 않은, 내일의 이야기.

나는 오늘도 내 영화 속을 걸어간다.
대본도 리허설도 없는, 단 한 번뿐인 장면 속에서.
이 장르의 이름은, 휴먼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