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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나를 던졌다, 별 하나가 내게 말했다

빛은 멀리서도 닿는다

by Helia

그날 밤, 나는 하늘을 보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고, 내 마음은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도시의 불빛은 쉴 새 없이 번쩍였지만, 정작 그 불빛 속엔 따뜻함이 없었다. 수많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인공의 빛 사이로 나는 어딘가 허공에 걸린 듯 떠 있었다. 그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곳에, 수천의 별들 사이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었다.

도시의 불빛이 다 삼켜버린 줄 알았는데, 그 별은 여전히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괜찮아, 아직 여기 있어.”

나는 그 별을 오래 바라보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어릴 적 나는 밤마다 창문을 열고 별을 셌다. 몇 개까지 셀 수 있나 경쟁하듯,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하나씩 들어 올리곤 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어느 순간,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걸 깨닫고는 웃어버렸다. 별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셈을 멈추고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별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울 때도, 웃을 때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날에도.
빛을 잃은 것 같아도, 구름 뒤에서 여전히 존재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아주 오래전, 어떤 별이 폭발하며 흩뿌린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고. 그 말이 좋았다. 그러니까 나도, 당신도, 우리가 사랑하고 미워한 모든 존재도 결국 같은 별의 흔적이라는 뜻이니까.

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오르며 소멸을 향해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음이 또 다른 별의 탄생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인생도 별과 닮아 있지 않을까. 타오르기 위해선 사라져야 하고, 사라져야만 새로운 빛이 생긴다.

어두운 밤, 별빛은 더 선명하다.
어둠이 없으면 빛은 자신이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없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나는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나 자신을 발견했다. 모든 게 멈춰버린 듯한 날, 유리창 너머의 별이 내게 말했다.
“네가 사라진 게 아니야. 단지 지금은 어둠 속에 있을 뿐이야.”

그 말을 듣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세상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별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저기 저 먼 우주 어딘가에도, 나처럼 별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외로움을 견디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빛은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린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별빛은 수천 년 전에 떠난 것이다.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빛은 여전히 나에게 닿는다. 사라진 존재의 흔적이 여전히 누군가의 밤을 비춘다. 그 사실이 믿기지 않도록 아름다웠다.

삶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시간, 끝난 관계, 이미 멀어진 사람들.
그 모든 건 사라진 듯 보이지만, 그 빛은 여전히 내 안에서 반짝인다.
그때의 웃음, 그때의 말, 그때의 온기가 아직 나를 비추고 있으니까.

별은 불완전한 존재다. 완벽하게 빛나지도, 영원히 머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아름답다. 불안정한 불빛이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리듬, 그 안에 생의 진실이 있다.
“사라져도 괜찮아. 너의 빛은 이미 누군가에게 닿았으니까.”
별은 언제나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 안의 별은 어떤 빛을 내고 있을까?”
누군가의 길을 잠시나마 밝혀줄 만큼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잊지 않게 하는 조용한 불씨로 남을까?

이제는 안다. 반드시 눈부실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별은 크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빛나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의미가 된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거창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오래 기억되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별을 볼 때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본능이다.
별빛 아래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마음도 단순해진다.
외로움도, 미움도, 슬픔도 결국 ‘살아 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별은 방향이자 위로다. 옛날 사람들은 별을 보고 길을 찾았다.
나 역시 별을 보며 마음의 방향을 잡는다.
지치고 흔들릴 때, 별 하나만 봐도 된다.
그 작은 빛 하나면 충분하다.

“빛은 멀리서도 닿는다.”
그 문장이 내 마음속에서 자주 맴돈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어둠 속을 조금이라도 밝히길 바란다.

어떤 밤에는 별이 유난히 많다. 그런 날이면 오래된 약속들이 떠오른다.
“언제까지나 함께 보자던 별, 그 별이 아직도 거기 있을까?”
아마 그 약속은 오래전에 깨졌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그것을 지켜준다.
별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언제나 사람이다.

그래도 괜찮다.
별은 말없이 모든 변화를 품는다.
그 침묵이 우리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된다.
“괜찮아. 너도 언젠가 빛날 거야.”
그 말이 별이 건네는 가장 다정한 인사일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내 안의 작은 별 하나만은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아주 작게라도 빛나는 존재로 남길.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의 전부다.

밤하늘은 멀리 있지만, 별빛은 항상 닿는다.
그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구름에 잠시 가려질 뿐이다.
삶도 그렇다.
아무리 길을 잃은 듯해도, 우리 안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없이 많은 별들 사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별 하나.
그건 어쩌면 오래 전의 나,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너일지도 모른다.
그 별을 보며 조용히 다짐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밤하늘에서 별 하나로 남고 싶다. 사라지지 않는 빛으로.”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 빛은 계속된다.
그러니 오늘도 고개를 들어보자.
어둠은 잠시뿐,
별 하나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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