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시는 어디에 있나요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울었다. 이유를 몰랐다. 그런데 가슴이 저릿했다. 누군가 내 안의 오래된 서랍을 열어젖히는 기분이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
그 제목부터 이상했다. 시인이 죽었다면, 시도 죽은 게 아닐까? 하지만 아니었다. 죽은 건 세상이었고, 살아난 건 마음이었다.
영화 속 웰튼 아카데미는 완벽한 모범을 강요하는 학교였다. 교복은 단정했고, 말투는 예의 바르며, 성적은 인생의 모든 기준이었다. 학생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대’와 ‘압박’이라는 단어 사이에서 숨이 막혔다. 그런데 그 무겁고 규칙적인 교실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키팅 선생님. 그는 교단 위로 올라가 말했다.
“왜 이렇게 올라왔을까? 세상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야.”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쳤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건, 남들과 다른 용기를 낸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도 늘 땅바닥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단 걸.
그는 시를 가르쳤지만, 사실은 ‘살아가는 법’을 가르쳤다.
Carpe Diem.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그 말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령 같았다. 지금을 붙잡으라고, 자신을 미루지 말라고, 살아 있는 한 살아보라고.
그는 말했다.
“의학, 법학, 상업, 공학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시와 아름다움,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 순간,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감상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살았다.’
닐은 그 가르침의 상징이었다. 연극 무대 위에서 그는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정한 길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그러나 세상은 그런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닐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었다.
그건 ‘자유의 대가’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참지 못하고 울었다. 마치 내 안에서 꺼지지 않은 무언가가 함께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그의 마지막 숨결은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진짜 나로 사는 건, 때로는 목숨을 건 일이다.”
하지만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팅 선생님이 떠나는 마지막 장면.
그의 책상 위로 하나둘씩 학생들이 올라선다.
“오 캡틴, 마이 캡틴.”
그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기도 같았다. 침묵하던 영혼들이 목소리를 되찾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순종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시’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왜 자꾸 남이 써준 시 속에 갇혀 사는 걸까.
세상이 정한 문장 속에 내 이름을 억지로 끼워 넣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키팅 선생님이 말한 그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네 목소리를 내라. 네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괜찮다.”
그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진짜 자신으로 말하라’고 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마음속에서 무언가 일어나는 걸 느꼈다.
나는 늘 ‘해야 하는 일’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공부, 해야 하니까 유지한 관계, 해야 하니까 웃는 얼굴.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미뤄두었다.
그래서였을까. 키팅 선생님이 말한 ‘Carpe Diem’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내게 던진 도전이었다.
나는 나의 시를 아직 쓰지 않았다는 자각.
그게 내 삶을 뒤흔들었다.
그 후로 나는 내 인생의 책상 위에 올라섰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누군가에겐 그게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겐 그것이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남이 정한 줄거리 속 인물이 아니다.
내가 나의 문장을 쓴다.
짧더라도, 서툴더라도, 그 문장은 내 것이다.
『젊은 시인의 사회』는 내게 ‘각성의 영화’다.
시를 가르치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삶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알려준다.
세상이 요구하는 인생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인생으로 나아가는 법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동시에 얼마나 가치 있는지.
살다 보면 우리는 늘 묻힌다. 타인의 기대, 세상의 기준, 비교와 두려움 아래.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위를 조용히 걷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너는 네 인생의 시인이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 시는 어디에 있지?”
그 질문이 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이 영화는 나를 바꿨다.
감정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키팅 선생님은 나에게 ‘교사’가 아니라 ‘거울’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잊어버린 나를 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내가 나의 언어로, 나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하겠다고.
어쩌면 인생은 거대한 시집 같다.
누군가는 슬픔의 시를, 누군가는 희망의 시를 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시의 작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내 시의 작자가 나이길 바란다면, 지금 이 순간 펜을 들어야 한다.
Carpe Diem. 지금을 살아라.
내일은 약속되지 않았으니까.
이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자주 창문을 연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키팅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당신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그 말은 내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여전히 내 시를 쓰는 중이니까.
서툴고 흔들리더라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문장 하나.
그 문장을 위해 오늘도 펜을 든다.
당신은 어떤 시를 쓰고 있나요?
오늘 하루, 당신의 삶은 어떤 단어로 채워지고 있나요?
Carpe Diem.
당신의 문장을 잊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시를 살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