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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날, 내 마음의 밤도 무너졌다

by Helia

그날 새벽, 세상은 고요했지만 내 마음은 요란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우연히 눈을 떴는데,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빛이 폭포 같았다. 빛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며 방 안 구석구석을 적실 때, 나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일어났다. 어제까지 내 안에 쌓여 있던 불안과 피로가 그 빛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말 대신 흘러내리는 시간의 목소리였다.

나는 커튼을 조금 더 젖혔다. 그러자 은빛 물결이 한층 짙어졌다. 마치 하늘이 흘린 빛의 눈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듯했다. 그 아래에서 나는 작아졌고, 동시에 살아 있었다. 무언가가 내 안에서 다시 깨어나는 느낌. 새벽은 언제나 조용히 오지만, 그날의 새벽은 유난히 강렬했다. 고요와 환함이 부딪히는 소리 없는 충돌. 그 한가운데서 나는 오래된 내 그림자를 마주했다.

한동안 나는 빛을 바라보았다. 오래 묵은 감정들이, 말하지 못한 상처들이 그 안에서 천천히 형태를 바꿨다. 어쩌면 내 마음속 어둠이 이렇게 빛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까. 사람은 늘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그 상처를 비추는 건 결국 자신이 감히 바라보지 못했던 한 줄기 새벽빛일지도 모른다.

나는 손끝으로 유리창을 스쳤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냉기는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도 나를 놓지 않던 희미한 빛, 그것이 바로 희망의 형태였다.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내 안의 시간은 깨어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내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창밖의 빛은 점점 부드러워졌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문득 어젯밤의 나를 떠올렸다. 억울했던 말, 참았던 눈물, 가슴속에서 묵직하게 남은 후회. 그 모든 게 커피 향에 섞여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그 향기에 기대어 숨을 깊게 들이켰다. 따뜻한 김이 내 얼굴을 감싸며 새벽의 온도를 전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어제의 마지막 숨이었다는 것을.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부서졌다. 마치 폭포가 바위를 때리며 흩어지는 물보라 같았다. 그 반짝임이 바닥에 쏟아지며 내 그림자와 뒤섞였다. 나는 그 빛의 파편 속에서 내 마음의 폭포를 보았다.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울지도 못했던 수많은 밤들이 이 순간을 위해 쌓였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빛은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고백했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다. 하지만 괜찮아지고 싶다.” 그 한마디가 마음속에서 오래 맴돌았다. 새벽은 내 고백을 들은 듯 고요했다. 대신 빛으로 대답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빛은 거짓이 없었다. 꾸밈도, 장식도 없이, 그저 존재로서 모든 걸 드러냈다. 나는 그 단순함이 부러웠다. 사람은 감정을 숨기고, 말에 감정을 감춘다. 그러나 빛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흘러가면 된다. 닿는 모든 것을 밝혀주고, 다시 사라지면 된다. 그것만으로 완벽하다.

나는 문득, 내 인생의 어느 순간도 새벽빛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란한 박수나 대단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덜 어둡게 비출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새벽은 늘 그런 방식으로 나를 위로해 왔다. 어떤 말보다 강렬하게, 어떤 침묵보다 다정하게.

밖으로 나서자 공기가 서늘했다. 길 위에 고인 빛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새벽의 도시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오직 빛만이 흐르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반사된 은빛이 파도처럼 번졌다. 내 발끝이 그 위를 스칠 때마다, 내 안의 오래된 슬픔도 물결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 진동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인생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새벽빛처럼 흘러내리는 폭포 같다. 절벽 끝에 매달려 있던 마음이 어느 순간 순식간에 떨어지고, 바닥을 치며 다시 부서지고, 그 잔해가 반짝이며 새로운 물결이 된다. 그렇게 흘러야만 살아있다. 고여 있으면 썩는다. 멈추면 빛이 사라진다.

그날의 새벽빛은 내게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무너지는 것도 하나의 시작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두려워했지만, 빛은 모든 무너짐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속삭였다. 폭포가 떨어질 때마다 물은 부서지지만, 그 부서짐이야말로 다시 흐르게 하는 힘이었다. 인생의 무너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는 중이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빛의 결이 바뀌었다. 이제 그것은 새벽빛이 아니라 아침의 햇살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폭포 같은 빛이 흘렀다. 그것은 찰나였지만, 오래 남았다. 잊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마다 창문을 연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하늘을 향해, 빛이 쏟아질 그 순간을 기다리며.

언젠가부터 나는 ‘오늘’보다 ‘다시’를 믿게 되었다. 오늘이 무너져도, 다시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그 끝에는 새벽이 있다는 확신. 그것이 내가 매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새벽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날, 내 마음의 밤도 무너졌다. 그러나 그 무너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마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구한 건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라, 한 줄기 빛이었다는 것을. 그 빛이 내 안에서 천천히 흘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을 기다린다. 눈부신 낮보다, 화려한 저녁보다, 이 조용한 새벽이 좋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빛은 매번 다르게 쏟아지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맞는다. 그 폭포 같은 빛 아래에서 나는 매일 새로워진다.

새벽빛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빛은 아직도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 어제를 씻고, 오늘을 시작하게 하는 힘으로. 아무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빛의 물소리를 들으며 또다시 다짐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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