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밤의 초승달

세상 마지막 낭만

by Helia

요즘 세상에 초승달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 고개를 숙인 채 화면 속 세상을 들여다보느라, 하늘의 온도를 잊은 듯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얇은 달빛을 찾는다. 겨울밤, 숨이 흰 연기로 피어오를 때, 그 속에 스며드는 초승달의 빛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하다. 마치 차가운 세상 속 마지막 낭만이 남아 있는 자리 같다.

초승달은 언제나 조용하다. 다 채워지지 않은 모양, 아직 미완의 곡선. 그러나 그 부족함이 오히려 마음을 끌어당긴다. 완벽한 것보다 불완전한 것이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사람도, 사랑도 그렇다. 다 가진 순간보다, 아직 닿지 못한 거리에서 더 간절해진다. 초승달은 그 거리를 아는 듯, 조용히 빛난다.

찬 공기가 뺨을 스치면, 세상이 조금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그 순간, 하늘의 초승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누군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위로한다. ‘괜찮아, 지금 이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워.’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 말이 새벽의 숨결처럼 가슴에 닿아온다.

나는 예전엔 보름달을 좋아했다. 빛이 가득 차서, 세상 모든 어둠을 삼킬 듯 찬란했던 그 모습. 하지만 이제는 초승달이 좋다. 채워지지 않은 그 모양이 마치 내 마음 같아서. 다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주는 것 같아서. 삶이란 어쩌면 끝없이 차오르다 다시 줄어드는 달의 주기 같은 것 아닐까. 줄어들고, 비워지고, 다시 피어오르는.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눈이 내릴 것 같은 밤이다. 고요한 공기 속, 달빛이 눈보다 먼저 내린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듯한 순간, 그 얇은 빛이 창가를 스친다. 나는 그때마다 느낀다. 외로움은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어떤 밤의 고독은 오히려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온기를 발견하게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다고, 너무 차갑다고. 하지만 초승달은 그런 세상 속에서도 변함없이 떠 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눈에 잘 띄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다. 그게 초승달의 힘이다. 작은 빛 하나가 얼마나 멀리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얇은 달빛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지금 비록 미완의 시간 속에 서 있지만, 언젠가 다시 둥글어질 날이 올 거라고. 오늘이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걸, 초승달은 매번 일러준다.

창문을 열면 얼어붙은 공기가 밀려오고, 달빛이 방 안 깊숙이 스며든다. 그 빛 아래서 나는 잠시 모든 생각을 멈춘다. 아무 말도,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존재한다. 그 자체로 괜찮은 순간. 초승달이 나를 알아보는 듯한 밤.

겨울밤의 초승달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빛이 남아 있다는 걸.
그 얇은 빛 하나로도 충분히, 우리는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오늘도 나는 그 빛을 믿는다.
세상 마지막 낭만처럼, 내 안의 작은 온기처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