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여름의 바닷가

그 여름,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y Helia

여름의 바다는 언제나 솔직하다. 숨길 줄 모르고, 감정을 꾸미지 않다. 찌는 열기 속에서도 제 빛을 자랑하며, 자신이 얼마나 눈부신지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바다는 그저 존재하는 법을 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이기적이다.

그 이기심엔 이상한 매력이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바다는 누구의 것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잠시 발을 담그고 떠나지만, 바다는 단 한순간도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파도는 웃는 듯 다가왔다가 금세 밀어낸다. 반짝이던 표면 아래엔 깊고 차가운 숨이 있다. 그 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모두 다시 이곳으로 온다. 상처받으러, 혹은 위로받으러.

나는 그런 바다가 밉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정작 누구도 품지 않는다. 그 무심함이 서늘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간다. 바다는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를 위로하지 않아도, 사랑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태도는 잔인할 만큼 자유롭다. 나는 그 자유를 부러워하면서도 닮지 못한다. 인간은 끝내 누군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니까.

모래 위의 발자국은 금세 지워진다. 바다는 누구의 흔적도 오래 품지 않는다. 오로지 그 순간의 열기만 삼킨다. 파도는 사람의 감정처럼 밀려왔다가 흩어진다. 잔잔할 때도, 격렬할 때도 바다는 늘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쉰다. 모든 걸 받아들이면서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게 바다의 방식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내 생각은 점점 멀어진다. 세상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태양은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그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이 뜨거움이, 어쩌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일지도 몰라서.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각자의 여름을 남긴다. 아이들은 파도에 뛰어들고, 연인들은 서로를 찍는다. 그러나 바다는 그 모든 풍경에 무심하다. 누구의 웃음도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출렁일 뿐이다. 그 무심함이 처음엔 잔인해 보였지만, 지금은 그게 정직하다고 느낀다. 세상은 결국 그렇게 흘러가니까.

해질 무렵, 바다는 달라진다. 낮의 거만함을 벗고, 붉은 하늘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빛과 어둠이 맞닿는 그 시간, 파도는 고백처럼 부서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낮의 소란이 가라앉은 자리에 고요가 깃든다. 바다는 여전히 크고, 여전히 멀다. 그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다만 듣는다. 물결의 호흡, 바람의 맥박, 그 속의 나.

사람들은 돌아가고, 모래 위엔 발자국 몇 개만 남는다. 파도가 밀려와 그것마저 삼킨다. 바다는 다시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돌아간다. 그것이 잔혹한 동시에 위로가 된다. 모든 건 결국 사라진다. 사랑도, 미련도, 후회도. 바다는 그 진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배려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거짓되지 않는다.

나는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식히고, 노을이 천천히 사라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바다가 이상하게 따뜻했다. 위로는 없었지만, 거짓도 없었다. 그 단단한 침묵 속에서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바다는 나를 이해하지 않았지만, 대신 나를 다시 나로 돌려놓았다.

여름의 바다는 여전히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 이기심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의 속도로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바다를 사랑한다.

그리고 안다. 그 무심한 물결 아래엔, 나를 닮은 마음이 잠들어 있다는 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