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장|눈을 뜨면

버티는 아침의 무게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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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숨부터 막힌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기분이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마치 불시의 통보처럼 느껴진다. 깨어나지 않길 바랐던 것도 같다. 잠시라도 아무 생각 없이 머물던 그 어둠이 차라리 평화로웠다. 하지만 눈을 감은 채 머뭇거릴수록, 현실은 더 선명해진다. 시계는 멈추지 않고, 알람은 무심히 울린다. 그리고 나는 또 눈을 뜬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 무겁게 가라앉은 숨은 방 안을 울리고, 아직 식지 않은 꿈의 잔향을 몰아낸다. 이불속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다. 창문 틈새로 들어온 빛은 하얗고 차갑다. 어젯밤의 불면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머리는 둔탁하고 공기는 낯설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을 버틸 자신이 없다면, 그냥 조금 더 자버릴까. 하지만 눈을 감아도 마음은 이미 깨어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하루를 잘 여는 사람은 성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그 말이 틀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아침이 희망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의 아침은 단지 버티기 위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눈을 뜨는 일,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 벅찰 때가 있다. 침묵은 늘 나를 먼저 찾아온다. 이불속 공기마저 내 편이 아닌 듯,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는다.

이불을 젖히고 겨우 일어나면, 발끝이 차가운 바닥을 밟는다. 그 순간 온몸이 현실로 돌아온다. 부엌 불을 켜면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 주전자에 물을 붓고 기다린다. 물이 끓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끓어오르는 거품이 잠시 부풀었다가 가라앉을 때, 나의 마음도 잠시 숨을 고른다. 그렇게 하루의 첫 장면이 열린다.

밖에서는 택배차가 멈추고, 출근길 발자국 소리가 바닥을 울린다. 세상은 분주한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다. 그 소리들이 마치 ‘일어나야지’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그 소음이, 오히려 나를 더 고요하게 만든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제야 물을 따른다. 컵 안에서 김이 천천히 피어오른다. 그 하얀 김 속에서 잠시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친다.

눈을 뜨는 건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다. 아무 일도 변하지 않았는데 다시 일어나는 일. 무너졌던 마음을 조금씩 세우는 일. 그래서 어떤 날은, 그저 눈을 떴다는 사실 하나로도 충분히 용감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아침마다 나 자신과 싸운다. 눈을 뜨고 싶지 않은 나와, 그래도 일어나야 하는 내가 맞붙는다. 그 싸움의 승패는 언제나 같지 않다. 어떤 날엔 패배하고, 또 어떤 날엔 간신히 이긴다. 그래도 결국엔 나는 일어난다. 손끝으로 커튼을 걷는다. 먼지들이 햇빛 속에서 춤을 춘다. 그 미세한 입자들이 생의 잔향처럼 흩어진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풀린다. 살아 있다는 실감이 그렇게 찾아온다.

이 세상엔 눈을 뜨는 게 제일 두려운 사람도 많다. 어떤 이는 일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어떤 이는 다시 잠들고만 싶다. 그 마음을 안다.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는 말한다. “하루를 감사로 시작해야 행복해진다.” 하지만 현실의 아침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감사보다 생존이 먼저일 때가 있다. 그저 버티는 게 하루의 전부일 때도 있다.

눈을 뜨는 건 결국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다시 도전하겠다는 거창한 의지도, 대단한 계획도 없지만, 오늘 하루를 맞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세상이 여전히 나를 밀어내도, 나는 다시 눈을 뜬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니까.

가끔은 눈을 뜨는 게 두려운 날도 있다. 창밖의 소음이 나를 불러내고, 휴대폰의 알림이 세상으로 끌어낸다. 그럴 때면 다시 이불속으로 숨고 싶다. 하지만 이불속은 결코 도피처가 아니다. 거기엔 어제의 피로만 남아 있다. 결국 나는 손을 뻗어 시계를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 단순한 동작 하나가 나를 현실로 이끈다.

그렇게 하루는 또 시작된다.
커튼을 열면, 햇살이 방 안을 천천히 덮는다. 빛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그 침묵의 빛이 내 어깨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오늘도 살아 있구나.” 그 사실 하나가 천천히 온몸으로 퍼진다.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한숨을 쉰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한숨이 절망이 아니라 ‘시작의 신호’ 일 수도 있다는 걸. 숨을 내쉰다는 건 곧 들이마실 준비를 한다는 뜻이니까. 어쩌면 한숨은, 다시 살아보겠다는 가장 인간적인 의식이다.

언젠가부터 눈을 뜨는 일이 조금은 덜 무겁게 느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여전히 같은 방, 같은 공기, 같은 나인데 그날의 아침은 어쩐지 다르게 느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눈을 뜨는 게 두려웠던 어제가, 이제는 조금 덜 무서운 오늘이 되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눈을 뜨는 일은 단지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일의 첫 문장이다. 버티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아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딘 사람만이 저녁의 안도감을 얻는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눈을 뜬다. 여전히 한숨이 먼저 나오고, 가끔은 다시 눕고 싶지만, 그래도 일어난다.

눈을 뜨면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다시 깨어난다. 오늘의 빛이 내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 빛을 등지고 살아갈 순 없으니까. 눈을 뜨는 건 세상과 화해하는 첫걸음이다.

나는 오늘도 한 손으로 이불을 젖히고, 숨을 고른다.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내 눈을 찌른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래도 살아야지.”
그 말은 다짐이자 기도이고, 버팀이자 희망이다.
눈을 뜨면, 세상이 다시 나를 밀어내지만, 나는 또 버텨낸다. 그게 내 하루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