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의 대가
꿈을 꾸었다. 세미와 만나기로 한 날, 전날 잠을 설친 탓인지 알람도, 진동도, 그녀의 전화도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깊이가 얼마나 아득했는지, 나는 꼬박 한 달을 통째로 잠들어버렸다고 한다. 평생 약속을 어기지 않던 내가 연락 한 번 없이 사라지자 세미는 불안에 휩싸였고, 결국 우리 집 문 앞까지 달려왔다. 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나를 보더니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혜지야… 너, 곰이 됐어…” 떨리는 목소리는 금세 울음으로 번졌다. 얼마나 자야 사람이 곰이 되는 거냐며 세미는 눈물범벅이 되어 소리쳤다. 나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기려 했다. 하지만 세미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내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거울 속에는 사람이 아닌, 갈색 털을 온몸에 두른 커다란 짐승이 서 있었다. 눈동자만큼은 낯익은, 분명 나였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꿈속의 풍선처럼 터지며 흩어졌다. 숨이 막힌 채 몸을 일으키자 천장은 익숙했고, 손은 다시 사람의 형태였다. 새벽빛이 창틈으로 스며들었고, 세미 대신 적막만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일들이 너무 생생해 한동안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쩌면 그 꿈은, 제때 나를 깨우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경고였을까. 아니면, 오래 잠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걸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다시는 그 깊은 잠 속에 빠져 곰이 되어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것. 꿈에서 깨어난 나는, 아직 사람의 몸으로 따뜻한 이불을 움켜쥔 채 한참을 멍하니 숨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