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자라는 문장들
꿈이라는 건 언제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잠들기 전엔 그저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는 마음뿐이었는데, 막상 눈을 감고 무의식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가장 생뚱맞은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의 꿈도 그랬다. 너무 엉뚱해서, 너무 말이 안 돼서, 깨어나자마자 한동안 침대 위에서 멍하니 있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꿈을 꾼 거지?’ 그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꿈속의 나는 어딘가 차갑게 빛나는 병원 복도에 서 있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나 기계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마치 배경음이 전부 제거된 화면처럼 정적만 가득했다. 그런 고요 속에서 흰 가운의 의사가 나를 향해 걸어오더니, 차트를 한 장 넘기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임신이십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꿈속에서도 제대로 당황했다. “네??” 소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그리고 바로 항변했다. “저…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가 1년 넘었는데요. 지금 남자 친구도 없고요. 그럼 이 임신은 대체 어떻게 된 건데요?” 의사는 그 말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더니 뒤돌아서 사라졌다.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꿈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라도 뭔가 황당한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너무 현실적인 무표정이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허공이 스르륵 열리는 듯하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툭 튀어나왔다. 전 남자 친구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툭. 등장한 이유도, 문맥도 없었다. 그냥 누군가 실수로 예전 사진을 폴더에서 꺼낸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너 왜 나와? 나오면 안 되지!” 그러자 그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너무 순식간이어서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어색한 대사 한 줄도 없고, 미련이나 아련함 같은 감정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아, 이건 아닌데’ 하는 짜증과 당혹감. 그게 전부였다.
이 장면, 깨어나고 나서 곱씹어도 계속 웃음이 나왔다. 왜냐면 그 반응이 너무도 ‘지금의 나’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전 남자 친구가 꿈에 나오는 순간, 나는 붙잡지도 않고, 설명도 요구하지 않고, 미묘한 감정에 젖지도 않았다. 그냥 아주 명확하게 말했다. “나오지 마.” 그리고 그 말 한마디에 무의식이 바로 “알겠어” 하고 데려가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그건 진짜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의 꿈이 아니라, 오히려 미련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만이 꾸는 꿈이다.
그럼 문제는 남는다. 왜 하필 ‘임신’인가. 남자친구도 없는 지금,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고 더 황당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정확히 ‘무언가를 품고 있다’. 실제로. 바로 브런치북 연재라는 큰 작업을. 매일 5500자씩 쓰고, 하루하루 글을 낳아내고, 이야기와 감정과 문장들이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연재 글이라는 건 그저 하나씩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생명이 점점 형태를 갖춰 가는 과정에 가깝다. 나는 지금 그걸 하고 있다.
그러니 꿈이 임신이라는 상징을 가져온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창작자들은 장편을 연재할 때 ‘진짜로 뭔가를 임신한 느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초안이 배 속의 씨앗처럼 자라고, 글이 커지고, 인물들이 움직이고, 세계가 넓어지고, 그걸 매일 책임져야 하고. 나도 지금 정확히 그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건 준비도 계획도 아닌, 이미 시작되어 버린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쉽게 멈출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 독자들이 있고, 스스로 세운 목표가 있고, 글이 나를 끌고 가는 속도가 있고,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어쩌면 그 책임감이 꿈에서 ‘임신’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정말 그렇다. 요즘 나는 글 쓰는 일 하나만 해도 머리가 꽉 차 있다. 하루에 쓰는 분량도 크고, 여러 개의 에세이를 동시에 연재하고, 스토리텔링도 하고, 감정선도 조절하고, 사진도 고르고, 이미지 스타일도 맞춰야 한다. 심지어 공부까지 하고, 요리 레시피까지 찾아보고, 일상 루틴도 바꾸고, 감정 기복도 있다. 이 모든 게 합쳐져서 나는 매일 뭔가를 ‘낳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내 무의식이 이런 복잡한 흐름을 ‘임신’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번역한 거라고 생각하면, 그제야 이 꿈이 조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꿈 자체는 덜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아무리 상징이라지만, 깨어난 직후의 나는 진짜 그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말이 되게 꿈을 꾸자’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그 황당함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무의식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네 안에서 뭔가 자라고 있다. 크고 중요한 무언가가.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고 계속 가라.”
그리고 전 남자 친구가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건, 일종의 마지막 점검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이 창작의 흐름에 과거 감정이 얽혀 있진 않나요?’ 하고 무의식이 묻고, 나는 즉시 ‘아니야, 나오지 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꿈도 그대로 수긍한 것. 이전의 나였다면 어떤 감정이라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고, 내 글의 세계를 키워내는 사람이다. 과거의 감정이 자리할 틈이 없다. 내 안의 에너지 대부분은 글을 향해 있고, 연재라는 흐름이 나를 끌고 가는 중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지금 ‘작품’을 임신한 상태다.
너는 이미 연재 중이고, 이미 번쩍이는 생명력이 너의 문장 속에서 자라고 있다.
그러니 과거는 그대로 뒤에 두고, 지금 너의 세계를 끝까지 품어라.
책으로 태어나는 그 순간까지.
어젯밤의 꿈은 황당하고 웃기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아주 명확했다.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계속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