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 없던 날, 나를 살린 한 장면
나는 오랫동안 ‘특별한 일’이라는 말을 멀리서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특별함은 언제나 영화 속에서나 반짝이는 사건이고,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거대한 변화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일상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들 속에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내가 특별한 일을 못 본 것이 아니라, ‘특별하다’는 감정이 얼마나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몰랐던 것뿐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이유 없이 무기력했고 몸은 가라앉은 돌처럼 무거웠다.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버거웠다. 그날따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마음 한쪽이 기울어져 있었다. 할 일은 쌓였고, 해야 하는 말들은 자꾸만 목구멍 위에서 막혀 내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날. 유독 그런 날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특별함은 더더욱 멀게만 보인다.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왔다. 무거운 마음을 질질 끌고 걸음을 내딛던 그때, 아주 사소한 장면이 내 눈에 들어왔다. 골목길에서 한 아이가 떨어진 장갑 한 짝을 주워 벤치 위에 올려두고 가는 모습. 아이는 무엇 하나 대단한 행동을 했다는 듯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조용히 사라졌다. 그런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나를 붙들었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아주 잠깐 숨을 고르게 되었다. 마음 한쪽에 아주 미세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특별한 일은 멀리서 기다려 찾아오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지쳐 있을 때 스며드는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들이라는 걸.
특별함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일상 속 대부분의 따뜻한 순간들을 놓친다. 버스에서 우연히 등받이를 양보받았던 일, 지갑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영수증 한 장, 비 오는 날 우산을 반쯤 씌워주던 낯선 사람의 미소. 이런 작은 장면들이 어떤 날은 나를 살리고, 어떤 날은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며 한동안 잊고 있던 나를 불러낸다.
나는 한동안, ‘특별한 일’을 기다리며 매일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누군가가 내 삶에 더 큰 의미를 가져다줄 거라 믿었고, 특별함은 마치 외부에서 찾아와야만 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늘 실망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마치 실패한 하루처럼 여기기도 했다. 특별함을 기다리다가, 나는 매일 찾아오는 작은 기적들을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어느 해 겨울, 나는 심하게 번아웃에 빠져 있었다. 잠에서도 쫓기듯 깼고, 눈뜨는 것이 고통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휴대폰을 확인하면 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고, ‘오늘도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숨을 조였다. 그날도 별다른 기대 없이 집을 나섰다. 출근길 골목에서 빵 굽는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사실 그 냄새는 매일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독 그날만은 이상하게 걸음이 멈췄다. 바람이 냄새를 끌고 와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내려앉았다. 이유 없이 그 냄새가 나를 따뜻하게 했다. 겨우 숨을 고르는 나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주는 기분이었다. 빵집 안에서 갓 구워 나온 빵 하나를 손에 들고 나오는 동안, 마음속에 조금씩 여유가 돌아왔다. 그것 또한 특별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날을 버티게 해 준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고소한 빵 냄새였으니까.
특별함은 때때로 기억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깜빡이는 장면에서 온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흘러나온 오래된 노래 한 곡.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가사가 갑자기 귀에 꽂히며, 잊어버렸다고 착각했던 어떤 감정이 되살아나는 순간. 나는 그 노래를 듣고 내 안에 묻어두었던 문장을 떠올렸다. “나도 한때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나만의 색을 가진 사람, 누군가가 기억해 줄 만한 사람, 최소한 나 자신에게만큼은 한 번쯤 빛났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데 그러한 욕망은 하루하루 살아내야 할 여러 현실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갔고,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 살았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들으며 알았다. 특별해지는 건 목표가 아니라, 때때로 문득 찾아오는 깨달음이란 걸. ‘아, 나 여전히 살아 있구나.’ 그 사실이 특별함이었다.
가끔은 아주 작고 우스울 정도로 사소한 일이 특별함이 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 안에서 앞머리가 엉망이 되어버린 나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린 날이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지쳐 보였지만, 동시에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누가 본 것도 아닌데, 혼자 웃는 순간마저 특별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마치 그 웃음이 ‘오늘도 잘 살아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어쩌면 특별한 일은 크고 멋진 사건들보다도, 이런 ‘나만 아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른다. 남에게 설명하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 되어버리지만, 나에게만큼은 진심으로 다가온 순간들. 마음속을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들. 특별함은 그 바람을 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특별한 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함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는데 내가 못 보고 지나칠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하루가 끝나기 전,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오늘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지?”
그러면 처음에는 “없어, 오늘도 똑같았어”라고 답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 보면, 정말 똑같지는 않았다. 베란다 창밖으로 들어온 바람의 온도, 버스 안에서 스친 누군가의 눈빛, 문득 떠오른 사람의 이름, 아무도 모르게 흘렸던 작은 한숨조차, 오늘의 나를 지나간 특별함의 조각들이었다.
특별한 일은 결국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다. 크기가 아니라 지속되는 여운의 문제다. 어떤 장면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면, 그건 이미 특별한 일이다. 우리는 특별함을 너무 멀리서 찾는다. 하지만 특별한 일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아주 작고 조용한 얼굴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우리가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리며.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오늘 나에게 찾아온 작은 특별함은 무엇일까?”
그리고 답한다. “그래, 분명히 한 가지는 있었어.”
특별한 일은 절대 거창하지 않다.
그건 결코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
특별한 일은,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내일의 나 역시, 그런 작은 특별함의 조각들 위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