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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나간 사람들은 모두 작은 별가루를 남긴다

사라진 건 사람이지, 빛이 아니다

by Helia

사람은 떠나도 마음속에 남는 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인연은 손끝처럼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지만, 지나간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작은 반짝임이 흩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왜 잊힌 사람들의 이름이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서 흐르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람이 지나가면 흔적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기척, 닿지 못한 온기, 끝내 꺼내지 못한 말들, 너무 늦게 깨달은 마음. 그 모든 것이 아주 미세한 별가루처럼 마음속 어둠에 내려앉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빛을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상처라고도 부르고, 위로라고도 부르고, 사랑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사람은 사람에게 빛의 조각을 남기고 떠난다.

나는 처음 스쳐 지나간 사람에게서조차 작은 빛을 받았다는 걸 이제야 안다. 아주 짧은 시간, 짧은 대화였는데도 평생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에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이 있었다. 추운 겨울, 나는 손이 얼어붙어 컵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다.
“오늘은 좀 더 따뜻하게 입으세요.”
아무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날 밤, 이불속에서 혼자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말 한마디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그렇게 나는 아주 미세한 별가루 하나를 얻었다. 가볍지만 잊히지 않는, 내 마음을 부드럽게 비추는 빛.

하지만 모든 인연이 그렇게 따뜻했던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삶에 깊게 들어와 길게 머물다가, 또 갑자기 사라졌다. 깊은 인연은 깊은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들을 붙잡으려 애썼고, 그들이 사라질 때마다 무너졌다.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꺼지고, 그 꺼진 자리에만 시선이 머물렀다.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마음이 더 아프다.
그 빈자리에서 나는 한동안 방향을 잃었다. 마치 고장 난 나침반처럼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랐고, 가만히 있어도 흔들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나는 알았다. 그들의 흔적은 고통만은 아니었다. 아프고, 허전하고, 허망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내 안에서 천천히 빛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아픈 기억이 어떻게 빛이 될 수 있겠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다. 지나고 나면 알게 된다.
상처는 다 아물어도 온기가 남는다는 걸.

가장 오래 남는 별가루는 언제나 가장 아프게 지나간 사람들이 남겼다. 완성되지 못한 인연, 끝내하지 못한 말들, 너무 늦게 알게 된 마음, 서로 오해하고 멀어진 관계, 이미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붙잡고 싶었던 순간들.
그 미완의 감정들이 가장 오래 빛났다.
왜냐면 마음은, 끝나지 않은 것에 더 오래 머문다.
잡지 못한 손은 기억 속에서 더 따뜻하다.

한때는 나를 울렸던 이름들이 있다. 지금도 그 이름을 떠올리면 마음 어딘가에서 바람이 지난다. 나는 그들을 미워한 적도 있다. 너무 쉽게 떠난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남기고 등을 돌린 사람들, 내가 건넨 마음을 가볍게 소비했던 사람들. 그들의 이름은 한때, 내 가슴속에서 쓴맛으로 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미움도 결국은 빛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걸.
그들을 미워했던 시간조차, 지나고 나니 나를 단단하게 만든 시간이었다.
그것도 별가루였다.
거칠고 어두운 빛이었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아주 중요한 재료였다.

어떤 인연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도 한다. 길 위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듯이.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들은 내 안에서 여백이 되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인연이 만들어주는 빈자리 덕분에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들일 수 있었다.
사람의 자리는 비워져야 또 다른 빛이 들어온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별가루를 남기며 지나가고 있을까?
내가 던진 기분 좋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오래된 위로가 되어 있을까?
우연히 건넨 손길 하나가, 누군가의 밤을 지탱했을까?

그 가능성을 떠올리면,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싶어진다. 내가 남기는 별가루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빛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 말과 행동은 누구에게는 외면처럼, 누구에게는 온기처럼 남는다. 그 사실이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더 따뜻하게 살고 싶어진다.
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되기보다,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인연은 어딘가로 흩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빛은 마음속에서 계속 번진다. 가끔은 희미하게, 가끔은 선명하게. 어떤 날엔 그 빛이 나를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날엔 그 빛이 나를 잠시 멈춰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사라지는 건 사람이지, 빛이 아니다.

나는 나를 지나간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마음의 온도, 말투, 선택, 상처의 모양,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 심지어 내가 혼자 있을 때 떠올리는 마음의 그림자까지. 그 모든 것이 나를 지나간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이 남기고 간 별가루가 모여,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빛들이 또 쌓일 것이다.
인연이란 늘 그렇게 예고 없이 오고, 예고 없이 떠나며, 예고 없이 빛을 남기니까.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사람들을 잡지 않는다.
억지로 지우지도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말한다.
“고마웠어. 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나를 이룬 빛이 되었을 뿐이야.”

그리고 나는 다시 걸어 나간다.
또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스칠 것이고, 또 다른 별가루가 그 위에 쌓일 것이다.
그 빛들로 나는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더 단단해질 것이다.

나를 지나간 사람들은 모두 작은 별가루를 남긴다.
그 별가루가 모여 나는 오늘도 빛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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