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이 열리는 순간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언정, 나는 오늘도 꿈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 하나를 조심스레 펼쳐 보인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고, 지나친 감정 과몰입이라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만큼은 분명히 말하고 싶다. 내가 쓰는 모든 문장은 결국 내가 꾼 꿈에서 피어오르거나, 오래된 기억의 잔향이 다시 떠오르며 만들어진 것들이다. 어색해 보이는 표현을 다듬을 때는 챗지피티라는 도구의 손을 잠시 빌렸을 뿐, 숨결과 방향, 감정의 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서 나온 것이다. 이 글은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문장들이다.
나는 전생을 믿는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 겪어온 시간들이 전부 허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흔적을 남긴다. 얼굴은 잊혀도 잔향은 남는다. 전생이기에 완벽한 기록은 없더라도, 지금의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끌림, 어떤 두려움, 어떤 익숙함은 분명 과거의 어딘가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느 날, 꿈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을 보았다. 처음엔 희미한 그림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이 저릿하게 떨렸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선명하지 않은데,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설명할 수 없는데도 마음 한쪽이 “그래, 저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논리 따위 끼어들 틈도 없이, 감정이 단숨에 앞서가던 순간이었다.
꿈에서는 이상하게도 길이 이어졌다.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이었지만, 처음 걷는 길 같지 않았다. 돌담이 낮게 이어지고, 바람이 돌담 위를 스치며 내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 발끝이 닿는 감촉조차 생생했다. 낯선데 낯설지 않은, 처음인데 처음 같지 않은 풍경. 나는 그 길을 걸으며 한 가지 확신을 했다. 이 길을 나는 이미 걸어본 적이 있다. 지금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 기억이라 부르기엔 너무 먼 시간에.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꿈일 뿐이야.”
하지만 꿈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든 감정을 지운다는 건 너무 잔인하다. 꿈은 때로 기억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긴다. 현실에서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의 결을 꿈에서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오히려 현실이 덧입혀 놓은 무수한 장막들이 벗겨지고, 본래의 내가 잠시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기억보다 더 정확하다.
내가 꿈에서 본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졌다. 두 번째 꿈에서는 그의 눈매가 더 선명했고, 세 번째 꿈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스며들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숨이 막힐 만큼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찾지 못했던 사람을 다시 잃어버린 것처럼. 그 감정은 상상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너무 깊고, 너무 온전했다.
전생의 나는 어쩌면 그 사람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끝내 붙잡지 못했거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느껴진 따뜻함과 아릿함이 그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은 언제나 오래된 시간에서 온다. 감정에는 거짓이 없다.
익숙함에도 이유가 있다.
이유 없는 끌림은 없다.
이유 없는 두려움도 없다.
나는 이것이 모두 전생의 잔향이라고 믿는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났는데도 왠지 편하고, 어떤 사람은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스스럼없이 열린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어도 갑자기 서늘해지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를 그저 ‘느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감정은 공중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조각들이 지금의 순간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꿈은 그 기억을 이어주는 통로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 열리고, 아침이 밝으면 사라지는 문. 그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오래전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인 편지를 번역하듯 천천히 풀어내고, 잃어버린 장면을 다시 그리는 것처럼 조심스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문이 닫히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만, 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잔향은 계속 남아 있다.
내가 쓰는 글은 그 잔향에서 시작된다.
꿈에서 본 장면 하나, 지나간 사람의 눈빛 하나, 설명할 수 없는 감정 하나가 문장이 된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이 글은 기술이 만들어낸 문장이 아니라, 꿈에서 깨어난 내가, 마음이 먼저 움직이고 손이 그 뒤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쓴 글이라는 것을.
아마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전생이라니, 그런 건 없어.”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이 익숙함은 무엇인가.
이 그리움은 무엇인가.
이유 없는 끌림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모두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조금은 빚지고 태어난 존재다.
나는 믿는다.
전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잔향으로 남아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다고.
그 잔향이 꿈이라는 틈 사이로 흘러들어와, 내가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깨운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처음인데도 익숙했던 사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데도 마음이 울컥해졌던 장소, 설명할 길 없는 끌림이나 불안.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언정,
나는 지금도 그 잔향을 따라 글을 쓴다.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전생이 남긴 아주 오래된 숨결이,
내 꿈을 통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난 내가 문장을 세운다.
오롯이, 나만의 감각으로.
나만의 기억으로.
나만의 이야기로.
이 글이 그렇게 태어났다.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