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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나저러나 지금이 우선이야

지금을 놓치면, 내일도 방향을 잃는다

by Helia

가끔 그런 날이 있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지친 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마음만 먼저 무너지는 날. 숨은 멀쩡히 쉬고 있는데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아 몸을 굽히고 싶은 순간. 인생의 방향표가 사라진 것처럼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때. 어제의 후회가 오늘까지 따라오고, 내일의 불안이 미리 얼굴을 들이밀어 지금이라는 시간을 삼켜버리는 그런 하루. 우리는 그런 날을 살며 참 많이 흔들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은 언제나 비슷한 고민에 걸려 넘어진다.
“나는 괜찮은 걸까?”
“이 선택이 맞는 걸까?”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대답 없는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동안, 정작 손안에 남아 있어야 할 지금이라는 순간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눈앞에서 흘러가는 오늘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이미 지나간 어제를 붙들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며 허공을 헤맨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지금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창밖을 스치는 바람도, 손끝에 남은 작은 온기도, 저녁빛이 어둠과 섞이며 천천히 스러지는 도시의 모습도 사실은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다. 어제가 가져오지 못하고, 내일이 아직 준비하지 못한 모든 것이 바로 이 순간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을 얼마나 가볍게 다루며 사는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기회가 오면, 나중에 마음이 괜찮아지면. 그렇게 나중이라는 허상을 붙잡다가 지금의 소중한 장면들을 놓치곤 한다.

오늘을 미루는 건 물 위에 비친 달빛을 손으로 쥐려고 하는 것과 같다. 반짝이지만 잡히지 않고, 잡으려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지금이라는 순간도 똑같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금세 희미해지고,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을 붙잡지 않으면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기울어 버린다.

우리는 종종 미래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현재를 희생한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허술하게 다루고, 언젠가 활짝 웃을 날을 위해 지금의 웃음을 포기한다. 그런데 웃긴 일이다. 미래는 지금이라는 시간 위에서만 자란다. 지금을 잃으면 내일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지금을 아끼면 미래는 사계절 중 가장 풍요로운 계절처럼 저절로 빛을 내기 시작한다. 사실 정말 중요한 건 거창한 목표도, 멀리 있는 꿈도 아니다. 오늘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는 일이다.

어떤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무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살아내는 데 꼭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건 아니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 한 번 하는 것, 뜨거운 물로 손을 씻으며 잠깐 온기를 느끼는 것, 따뜻한 음료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지금을 돌보는 훌륭한 행동이다. ‘나는 내 오늘을 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몸짓이면 충분하다. 회복은 원래 그렇게 조용하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를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과거는 잊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다.
그 자료를 붙들고 오늘을 더 잘 살아가는 도구로 삼으면 된다.
과거에 머무르면 고통이 되지만, 과거를 기반으로 지금을 살아내면 그것은 지혜가 된다.
지금이 우선이라는 말은 결국, 과거에 묶이지 말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늘의 나를 중심에 두라는 뜻이다.

미래는 늘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떨고, 일어나지 않을 일까지 걱정하며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미래는 언제나 지금의 연장선이다.
지금이 건강하면 미래도 건강하고, 지금이 공허하면 미래도 공허하다.
미래가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온전히 발을 딛고 서면, 미래는 그 자체로 두렵지 않은 방향성을 가진다.
지금의 선택이 결국 나를 데려갈 곳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자신에게만 가장 엄격하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거칠어도 괜찮고, 조금 불안해도 괜찮다.
오늘을 제대로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오늘의 내가 내 편이 되어주면, 내일의 나는 자연스럽게 숨을 쉬기 시작한다.

지금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귀를 닫은 사람과 같다.
몸이 보내는 신호도, 마음이 바라는 작은 소망도, 피곤하다는 속삭임도 외면하면
결국 뭔가 큰 문제로 돌아온다.
지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순간의 나를 들여다보고,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면 된다.
오늘 흘린 눈물이 내일의 웃음을 막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눈물이 지금의 나를 정직하게 만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넘길 사람이 아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고,
더 멀리 와 있는 사람이고,
더 많은 것을 견뎌온 사람이다.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너는 이미 충분히 살아냈고, 그만큼 앞으로도 살아낼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해 보여도, 결국 삶은 단순한 진리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을 잃으면, 너의 내일도 길을 잃는다.
지금을 지키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과거는 의미를 되찾고, 미래는 색을 입는다.
오늘이라는 순간이 너의 인생 전체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밤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혼자 앉아 있던 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그날 이후 나는 작은 결심을 했다.
오늘을 잃지 않겠다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잠시 속도를 늦추고, 뜨거운 차 한 모금을 마실 때도 온전히 향을 느끼고,
사소한 기쁨 하나도 허술하게 다루지 않겠다고.

그러자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미래가 덜 무서워졌다.
과거가 덜 아팠다.
오늘이라는 시간과 손을 잡는 순간, 삶은 조용히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씩 괜찮아지는 동안 세상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정말 지금이 우선이다.
지금을 살아낼 때 인생은 흐름을 되찾는다.
지금을 바라볼 때 마음은 제 모습을 찾는다.
지금을 붙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늘, 긴 어둠의 끝에서 가장 먼저 빛이 스며 들어오는 곳과 닿아 있다.

당신이 오늘을 헐값에 넘기지 않기를,
지금이라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지 않기를.
이 순간을 살아내면, 내일의 당신은 분명 더 선명해질 것이다.
지금의 당신이 내일을 바꾼다.
그리고 그 내일은 지금 이 문장을 읽는 당신에게서부터 아주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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