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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장|두 번은 없다는 데

두 번은 없다는 진실 앞에서

by Helia

추천 클래식

Charles-Valentin Alkan – “Le chemin de fer: Étude descriptive pour piano, Op.27”
(샤를 발랑탱 알캉 – 기찻길: 묘사적 연습곡)


결혼, 한 번이면 족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내 의지로 선택한 길도 아니었고 오래 품어온 꿈도 아니었다. 누군가 그랬듯 나도 ‘현모양처’라는 말과는 멀었다. 그저 인생이 내 손을 비켜 흘러가던 시절, 때맞춰 굴러온 파도에 휩쓸리듯 지나가버린 경험일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단언할 수 있다. 두 번은 없다는 데, 그 말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키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은 단순한 다짐 이상의 의미다. 다시는 같은 모양의 상처와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고, 내 인생을 누군가의 기대에 맡기지 않겠다는 마음의 경계다.
두 번은 없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게 들린다. 결혼만이 아니라 사람도, 순간도, 기회도 모두 그 말 안에서 굴러가듯 사라진다. 어떤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 조금만 더 용기 냈다면.” “한 번만 더 붙잡았더라면.” “그 말을 그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끝에 매달린 후회는 늘 비슷한데, 다시 돌아가서 고쳐 쓸 수 있는 문장은 하나도 없다. 삶은 그렇게 한 번 지나가면 끝나는 필사본 같은 것이고, 이미 넘긴 페이지는 아무리 다시 펼쳐도 같은 향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은 그 필사본 중에서도 가장 진한 잉크로 적힌 문장이었다. 쉽게 지워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래 바라보고 싶은 문장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결혼을 인생의 축복이라 말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내려앉기도 한다. 나에게는 후자였다. 바람 한 점 없는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처럼 답답했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내 삶의 조각들이 누군가의 의지로 옮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름표처럼 붙어 있던 역할만 또렷해졌다. 아내, 며느리, 한 가정의 일원이란 이름. 그러나 정작 내 이름은 그 안에서 종종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는 그 무게를 어깨에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두 번째면 더 잘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 다시는 내 이름이 희미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이 나에게 남긴 건 상처라기보다 공백에 가까웠다. 상처는 아프고 그 아픔이 되레 살아 있음을 증명하지만, 공백은 다르다.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텅 빈 방처럼 허전하고 차갑고, 내가 앉아 있던 자리마저 흐릿해진다. 그래서 결혼이 끝났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무너진 것도 아니고, 분노가 치밀지도 않았다. 다만 오래 눌러왔던 호흡을 천천히 뱉어낸 기분이었다. 드디어 숨이 내 몸으로 돌아오는 것 같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결혼이 무너진 게 아니라, 내 삶이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두 번은 없다는 말이 마음 깊이 스며든 것도 그때였다. 어떤 경험은 다시 겪지 않아도 충분히 배운다는 걸, 인생은 그만큼 빠르게 깨닫게 한다는 걸. 사람들은 종종 실수를 반복하며 자란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결혼이 반복될 이유가 없다. 한 번이면 족하다. 그 한 번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무너졌고, 충분히 다시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나를 괴롭게 했던 건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내 삶의 부재였다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가는 두려움이 더 컸다고. 사랑은 다시 올 수 있지만, 내 삶은 돌아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두 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단지 관계를 거부하는 선언이 아니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내 삶을 지키는 방식이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선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달라지면 결혼도 달라질 수 있다.” “이번엔 좋은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겠냐.” “두 번은 없다니 너무 단정적이지 않냐.” 하지만 내가 단정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는지 알고, 어느 지점에서 숨이 막히는지 알고, 어떤 기대가 나를 갉아먹는지 안다. 그걸 아는 사람은 결혼을 다시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다. 결혼은 언제나 둘이서 하는 일 같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이 더 많이 잃어가는 경우가 많다. 내가 그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은 이제 누군가의 의지나 기대의 그림자 아래 놓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은 없다는 말은 그래서 결혼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향한 다짐으로 남았다. 내 삶을 허공에 떠밀지 말고, 소중한 것들을 내가 지키라는 다짐. 흔히들 말한다. “상처받은 사람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나는 사라지는 걸 두려워한다. 다시는 희미해지고 싶지 않다. 다시는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꾹꾹 눌러 삼키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싶지 않다. 다시는 나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결혼이란 제도는 누군가에게 축복일 수 있다. 나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건 아니며, 나에게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 한 번뿐이었던 결혼을, 실패가 아니라 경험으로 두고 떠나왔다. 그리고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 경험을 가장 단단하게 간직하는 방법이었다. 살다 보면 사람들은 늘 ‘두 번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너무 쉽게 미루고,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기대한다. 하지만 인생이 가르쳐주는 건 단순하다. 진짜 두 번은 없다는 것. 이미 지나간 순간은 다시 오지 않고, 한 번 잃어버린 나 자신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결혼을 통해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다. 그래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외로움이 문틈으로 스며들 때마다, 아직도 삶이 멀게만 느껴질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한 번이면 족했다고. 그리고 한 번이면 충분히 성장했다고. 이제 나는 내 삶을 어떤 관계의 들러리로 존재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필요한 건 결혼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사랑이 오면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이 가면 마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시 나를 지우는 형태라면, 나는 기꺼이 문을 닫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두 번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조금 더 단단히 나를 지키며, 조금 더 솔직하게 선택할 것이다. 결혼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 한 번이 나를 망가뜨렸던 만큼, 다시는 나를 지키는 데에 쓰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얻은 가장 확고한 깨달음이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고 싶은 나만의 작은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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