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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ix Dec 07. 2022

자기개발서를 혐오하는 내가 독후감을 쓰는 건에 대하여

역행자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책을 선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름대로의 아집이 있을 것이다. 다년간의 독서를 통해 만들어진 편견에 의해 공고해진 '도마뱀의 뇌'의 지시를 받아 자연스럽게 거부하는 종류의 책들이 생기는데, 독서에 시간이 드는 만큼 영양가 없는 책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필자의 경우는 출판사가 신문사인 책, 문학을 제외하고 작가가 일본인인 책 - 십중팔구는 피상적이어서, 그리고 자기개발서가 되겠다.


 자기개발서가 많이 팔린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많은 자기개발서의 작가들에게는 모호한 캐치프레이즈로 독자를 현혹하는 사이비 교주 같은 면이 적잖다. 이들은 본업에서 두각을 보인 경우가 적고, 본업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중간한 이상한 업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스스로를 기획자, 크리에이터, 코칭 전문가와 같은 말로 포장하여 수상한 워크샵을 열고 강연료를 받아먹는 인간들이 태반이다. 물론 역사가 깊은 수상록 같은 자기개발서도 존재하나, 이 역시 좋은 자기개발서 작가는 죽은 자기개발서 작가라는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자기개발서를 읽고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발끈하겠지만, 대다수의 자기개발서는 "네가 잘못된게 아니라, 네가 방법을 몰라서 그래"라는 사탕발린 위로와 더불어,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모든 게 너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이 너를 과소평가한다. 남을 믿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안 되는 매일의 과업 체크리스트와 명상법을 열거할 뿐이다. 끝없는 자존감의 고양을 유도하며, 독자로 하여금 '할 수 있다'를 외치게 하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위로의 끝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신랄하게 3 문단을 할애하며 자기개발서를 까고 있으나 최근 한 자기개발서를 읽고 대책 없는 나 자신의 스노비즘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다음웹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by 이창현, 유희https://webtoon.kakao.com/viewer/%EC%9D%B5%EB%AA%85%EC%9D%98-%EB%8F%85%

 


 발단은 어느 점심식사였다. 여의도 선배와 식사 후 근황 토크타임에서 늘 하는 질문인 "요새 뭐 읽어요?"를 했는데, 선배는 "역행자"를 추천하면서 친히 책을 사줬다. 이사와 영어시험 준비로 바빠서 책을 펼쳐보지도 못한 지 몇 주 지나고 선배가 전화를 했다. 스노비즘에 절여진 후배에게 혹여나 괜한 선물을 했나 걱정하는 전화였다. 꼭 다 읽고 독후감도 쓰겠다고 확답을 했다. 퇴사 날 아침 딱히 할 일도 없어, 드디어 책의 표지를 제쳤는데 왜 선배가 노파심을 가졌는지 이해가 단박에 됐다. 내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글자가 큰 자기개발서였기 때문이다.


 평소에 혐오해마지않던 자기개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역행자'가 많은 추천을 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제시하는 행동양식이 여의도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바닥 사람들은 학습을 좋아하는 편인데 성공을 위한 기초작업 중 하나로 글 읽기와 글쓰기를 꼽은 것은 기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가 본능을 역행할 것을 강조한 부분도 동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체로 실패하지만, 주식시장의 사람들은 공포와 탐욕에 맞설 것을 투자 구루들에게 배우고 연습한다. 저자가 유전자에 각인된 행동을 거스르라고 강조하는 것은 많은 가치투자자들이나 나심 탈레브가 끊임없이 지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자유에 대한 선망을 들을 수 있다. 코비드 19 이후의 상승장에서 많은 여의도 사람들이 투자 컨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많이 옮겨갔고 이들 중에 경제적 자유를 일군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먹방 유투버들보다 같이 NDR 듣던 누군가가 방송으로 돈 버는 것을 보게 된 게 역행자가 여의도에서도 흥한 이유가 되는 듯하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자기개발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책의 눈높이는 독서를 통한 지식의 습득이 자아성찰로 이어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데, 그래서 더욱 명시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성찰이 들어있는 책이라 공감하며 포복절도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자의식의 해체가 필요하다는 부분이었다. 연애고자 여성의 심리를 분석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아니, 하고자 하는 목표를 불문하고 정신승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통렬하게 꼬집는 것을 보며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이들은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안 해봤기 때문이다. 별로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속에는 판타지와 자기만의 룰로 가득 차 있다. 연애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과 자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한 이들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받아주는데 서투르다. 옷자락을 적시지 않고 물놀이를 할 수 없듯이, 자아에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으면서 연애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상처 입지 않는 것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역행자' 발췌, 72p]


  주거지가 멀리 옮겨질 일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든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주어진 상황에서, 의사결정이론수업에서는 A+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을 해왔다. 허나 이는 단순히 '틀 안'에서의 결정으로 스스로의 발전이나 도전을 위해 몸을 던진 적은 없는 듯하다. '역행자'의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을 '순리자'라고 부른다.  비록 새로운 도전이지만 앞으로 내가 선택하는 내가 하고자 하는 경로도  그동안 내가 해왔던 순리자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예전에 그 열정만으로 나의 부러움을 자아낸 선배의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가 생각난다. "Stay away from your comfort zone". 내 성격상 앞으로의 고난의 길을 웃으며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들어질 때는 쌍욕을 박아가면서 견뎌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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