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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ix Feb 14. 2022

정책주의 추억

국민의 정부 이후의 정책주와 2022 대선후보 공약


정치는 투자의 강력한 제약조건이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이후 20여년 간은 지정학적 문제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극히 적었다. 혼돈이 끊이지 않던 남반구와 달리, 대부분의 선진국이 몰려있는 북반구는 냉전의 종식에 따라 자유시장경제가 헤게모니를 잡으면서 ‘작은 정부’가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투자의 결정에 있어서 지정학적 문제의 비중은 그 만큼 낮아졌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발생으로 그 동안 세계를 지배하던 달콤한 ‘Globalization’의 시대는 막이 내리고 있다.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저금리로 인하여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반면, 노동자의 중위소득은 장기간 정체되고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며 중위계층의 사회적 불만의 증가로 각국에서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경화라고 하면, 경제적 보수주의에 의거한 시장경제체제의 추종으로 헷갈릴 수 있으나, 실제로는 내셔널리즘의 강화다.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사회의 우경화와 ‘큰 정부’의 재림이 앞당겨졌다. 재정정책의 완화로 MMT와 같은 큰 정부의 존재가 선제조건인 경제담론이 나오고, 탄소배출감소와 같은 전세계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비용증가가 기업에 전가되며 정책적인 측면이 투자의 제약조건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문제가 투자결정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된다면 결국 국내의 정치적인 이슈도 투자에 있어서 중요해질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국정과제가 발표될 쯤 늘 나오는 격언이 있다. “정책에 맞서지 말라.” 지정학적 요소가 마이너한 문제였을 때도 정책을 활용한 투자는 큰 알파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선 전후에는 대권주자의 공약과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관련 기업에 대한 증권사의 분석자료가 넘쳐난다. 한 시대가 저물고, 다른 시대에서 잘 해먹을 수 있는 종목을 찾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 다음 4년(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지만, 정책주가 시세를 내는 것은 2,3년, 2,3년 간 벤치마크를 이겨둔 누적수익률로 연명할 수 있는 게 1년)의 알파를 낼 수 있는 중요한 투자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에 정책주를 무시할 수 없다.



 대선후보의 고등학교 동문 따위가 사외이사로 앉아있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는 대선주는 테마주라고 볼 수 있다. 정책관련주도 그렇게 보는 투자자들이 있으나, 문민정부 이후의 정책관련주의 흐름을 보면 정책주를 테마주로 경시해서는 안된다. 각 정권별 정책관련종목의 흐름을 시장과 비교해 보았다. 준용할 섹터 지수가 있는 정책테마는 지수로, 없는 테마는 당시의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정책 수혜주의 수정주가로 동일가중평균 수익률을 구했다.



[ 국민의 정부 : 1998~2003, IT 및 인터넷 기업 주도]


 코스닥의 "황금시대"이자 "야망의 시대"라고 불러도 무방한 시기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IT와 벤처기업 육성을 도모하였다. 뿐만아니라, 인터넷 인프라를 미친듯이 확장하던 시기였다. 모든 꿈과 희망이 인터넷에 있었고, 통신주가 가장 아웃퍼폼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이 당시 필자는 중고교시절을 보냈는데, TV만 틀면 ADSL과 PC광고가 나왔다. 이때가 되어서야 집에 PC가 생기고 인터넷 망이 연결됐다. 카카오의 전신인 한메일이 등장한 것도 이때다. 전직장(운용사)의 CEO가 이 시기를 회고하며 늘 하는 얘기가 있다. 당시 국민연금에서 코스닥에만 투자하는 유형의 위탁운용사 선정을 위한 공문을 보냈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코스닥 밸류에이션은 말이 안되서 정중하게 팩스로(팩스라니!!) "당사는 위탁운용사 선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회신을 했다는 것이다. 가치투자 하우스가 멋있는 결정을 내렸던 사례 중 하나인 것 같다. 결국 IT버블이 꺼지면서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피를 봤어도 이 정책이 정부가 원하는 고용창출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필자의 수학과외 선생님이 "새롬데이터맨"의 망 연결시 진행률을 나타내는 그래픽을 디자인했었다고 자랑했는데, 주변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도 IT관련기업에 몸담았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경기 부양이 무분별한 신용카드발행의 효과도 있었겠으나, 한국 벤처 생태계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



[ 참여정부 : 2003~2008, IT 839]


  당시는 정책주보다 다른 것들로 더 시끄러웠던 시기였다. 그래도 찾아보니 역시 IT와 미래기술 관련 기업에 대한 정책적인 밀어주기가 있었다. 진대제를 장관으로 뽑은 걸 보면 애초에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당시 필자는 참여정부 전반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술만 마시러 다녀서 정책주가 뭐였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찾아보니 진대제 전 장관이 주도한 IT 839 정책이 있었다. IT산업의 가치사슬 효과 극대화를 위한 8대 신규 서비스, 3대 인프라, 9대 신성장 동력으로 선정하여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정책이었다. 진대제 전 장관의 나중 인터뷰를 보니 결국 절반의 성공에 그친 것 같다는 자평을 하였다. (웹 3.0의 개념도 이 시기에 나왔다. 최근에 코인하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듣고, 아니 그거 옛날에 했던 거 아닌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시기는 글로벌 경기의 골디락스 구간으로 중국의 경제발전에 따라 소재, 산업재 등이 시장을 이끌던 시기였다. 조선주와 해운주가 자고 일어나면 오르던 시기였고, STX 그룹 같은 곳에 입사한 친구들은 한 달동안 회사에서 해외여행을 보내줬다. 2007년에 증권사에 입사해서 고작 1년 선배들한테 뭐 사야하냐고 물어보면, 미차솔, 봉차 같은 걸(알아들으면 당신은 40대, 최소 30대 후반) 무지성으로 추천해주던 미개한 시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뭘사도 오르는 시장이었고 상대적으로 정책주가 덜 각광받았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 2008~2013, 녹색성장]

 

 07년까지의 골디락스가 무색하게(당시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우려섞인 뉴스가 등장하긴 했다.)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부터 대운하를 하겠다고 크게 외쳤고 결국 4대강 사업을 했다. 엄밀히 4대강 수혜주와 녹색성장 수혜주 둘다 성과분석을 하는게 맞으나, 현시점과의 연관성을 보기위해 녹색성장 관련주만 성과 트래킹을 해봤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을 소리치며, 각종 태양광, 풍력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미쳐 날뛰었는데, OCI가 "남자의 주식"으로 등극했던 시기가 이때다.(골디락스 구간에도 동양제철화학 = 제철 + 화학? 둘다 가즈아 컨셉이긴 했음). 09년에 피크를 찍고 하락했다가 2010년에 삼성그룹이 신수종 사업 육성을 발표하면서 크게 반등하였다.(회장님이 옥고를 치루고 계셔서 딜을 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차전지와 바이오시밀러가 된 걸 보니 나름 인사이트도 있었던 것 같다.) SRI 개념도 이 때 처음 나왔는데, 이 시기에 SRI에 몸 담근 사람들이 ESG로 여전히 밥 벌어먹고 살고 있다. 광물자원이나 토건에 집착하는 친기업적 성향의 사람이 녹색성장을 외친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결국 당시에 엘 고어가 기후변화에 대해서 경고를 날리고 있었고 미국과의 관계설정을 위해 녹색성장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녹색성장을 얘기했기 때문에 현재의 탄소중립과 관련된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 2013~2017, 창조경제? 문화융성? 배당!!]

 

 창조경제나 문화융성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서 저게 무슨소리인가 싶었다. 어쨌든 정책적으로 민다고 하니 K컬처가 흥하겠지 하는 컨셉으로 CJ ENM 같은 종목들이 반응했다. CJ ENM의 미공개 정보이용으로 여의도 펀드매니저들과 애널리스트가 줄줄이 옥고를 치른 시기도 이 때다. 한 동안 회사 컴플에서 금감원 사람들을 데려와서 미공개 정보이용에 대한 교육을 빡세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박근혜 정부 2기에서는 최경환이 초이노믹스를 들고 나왔다. 한국주식의 디스카운트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당시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던 것 중 하나는 배당성향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초이노믹스의 배당소득증대세제는 기업의 배당성향 확대 유인책이 되었고 시장이 배당주 투자에 관심을 갖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 주식의 시가배당수익률이 적게나마 상승하기 시작했다.(아직도 멀었다.)



[문재인 정부 : 2017~현재,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


 

 가장 최근의 일이니 길게 코멘트 하진 않겠다. 차트만 봐도 왜 문재인 대통령이 문매니저 소리를 듣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대북주 주가 추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정책이 주가의 제약조건이 되는 끝판왕은 바로 대북주이다. 각 시점별로 주가를 보면 왜 굳이 대북주의 주가 추이를 끄집어 왔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정권의 정책 관련주 주가 흐름을 보면, 정책이 발표되고 한동안 관련주식의 주가가 대체로 시장대비 높은 수익률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정책 관련주의 주가 변동성 역시 높고, 정권 말기로 갈수록 큰 폭의 하락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정책주 투자는 테마투자라며 지양해야 할 투자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전 정권의 경제/산업 로드 맵에서 거론되었던 종목들 중 “아 이 종목이 이때도?”라는 생각이 드는 기업들이 많다. 테마주로 엮여 단기 시세를 내고, 십 수년 후에는 결국 산업 구조의 변화를 이끌며 대장주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배터리나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이 주로 그랬다.) 어떠한 산업의 육성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 정책적 효과 성공여부는 해당 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의 타이밍이 왔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불변의 진리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라는 질문을 던져봤을 때, 주목해야하는 것은 역시 대선후보들의 공약이다. 대선을 한 달 정도 앞두고 간신히 공약집이 나왔다. 대선 후보별로 눈에 띄는 공약을 캡처해 보았다. 이재명, 윤석열 양강 후보의 공약집만 살펴보았고, 순서는 여당 - 야당 기준일 뿐, 어떠한 사심과 정치적 견해가 들어가지 않았다.



[이재명]


-> 소프트웨어 인력양성과정이 있는 교육업체들 수혜예상. 멀티캠퍼스?


-> 이재명 마저도 원전을? 원전관련 수혜주도 괜찮겠지만, 핵융합 한다고 알려져있는 기업들이 주가는 더 가벼울 듯.


-> 수혜를 받을만한 방산업체가 보이는 듯.


-> 벌써 6G!!


메타버스는 언급하기도 지겨움

-> 또, 코나아이인가?

-> 스마트팜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 문재인 정부에서 한번 했던 섹터기 때문에, 옥석가리기가 될 예정.


-> 번역 알고리즘 기술이 있는 업체를 꼬나봐야겠다.



전반적으로, 이런 공약집이 그렇듯 신기술투자에 많이 집중되어 있음.

그 외에

-> 해운재건 : 선사 지원을 얘기하고 있음

->4대강 복원 : 4대강 사업 관련 수혜주와 복원 수혜주는 거의 동일하다. 토건왕의 승계?

-> 전반적인 느낌은 벤처투자 win, 은행 lose




[윤석열]


-> 폐기물처리관련 기업, 잘하면 수처리 기업까지 확장 가능하지 않을까?


-> 여기도 5g, 6g


-> 좀더 구체적으로 스마트팜 이야기를 해줬으면. 농업직불금을 줘봤자 밑빠진 독에 물붇기


-> 방사광가속기는 결국 핵융합이랑 겹친다.


-> 작년에 핫했던 코인거래소가 또?


-> 이렇게 대놓고 종목을 찍어주다니. 동아지질


-> 워낙 세게 얘기하고 있으니....


-> 이재명은 토건, 윤석열은 주택



 이번 포스팅을 쓰기위해 과거 대선시기의 자료와 세미나 노트를 살펴봤다. 2017년 대선에서도 각 섹터별 수혜와 피해를 전망한 것이 있는데, 정책으로 방향성이 명확하게 나왔던 섹터를 제외하고 많은 전망이 틀렸다. 정권의 성향이 어떨지 예상해서 전 섹터를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가시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정치인들의 공약 이행률이 떨어지긴 하지만, 혼자서 지레짐작하기보다, 한다고 한 것들에 대한 집중적인 공략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가들의 역량(Virtu)보다,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Fortuna), 즉 제약조건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정학 전문 분석가인 Marko Papic은 그의 저서인 “Geopolitical Alpha"에서 마키아벨리의 방법론을 적용하며 정치인의 역량과 선호 보다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환경을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 후보가 당선된 이후 직면하게 될 “Fortuna”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먼저,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잡았을 때만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또한 양 후보 모두 이전 정부보다 더 대규모의 조직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직 관료 중 하나는 조직개편에 소요되는 시간 때문에, 차기 정부의 탄소저감 정책은 다소 지체될 수 있을 것이란 의견을 주었다. 윤석열 후보의 경우,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의 의지를 제약하는 Fortuna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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