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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ix Feb 14. 2022

투자의 도 - 여의도의 신선들

개인투자에 성공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의 배아픔


 시장바닥 혹은 그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보면, 누가 뭘 해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시클리컬 주식이 사이클을 타듯, 제도권 사람들이 비제도권으로 몰려가는 사이클도 늘 돌고 돌기 때문이다.  7,8년 전만 해도 두, 세 다리 건너의 사람들이 화장품 원료 기업에 투자해서(한참 화장품 관련주가 잘 나갈 때였다.) 20억을 벌었네, 바이오에 투자해서 회사를 나갔네 하는 소리를 들었어도 괜찮았다. 직접 아는 사람도 아니었고, 10억, 20억이  큰돈이지만, 그 시절에는 나도 젊은이었고 언젠가는 내 인생을 뒤집을 한 방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마음속 한 구석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중년으로 돌입해가는 지금은 스케일이 더욱 커져서 누가 무슨 종목으로 언제 사서 많이 났다는 얘기를 더욱 구체적으로 듣고 있기 때문에 똥이 마렵다.


 이번 사이클에서 돈 못 번 사람들끼리의 술자리에서 코로나19의 하락장이 쉬운 시장이었냐, 어려운 시장이었냐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쉬운 장이었다고 말했는데, 나처럼 못했던 매니저도 최바닥에 포트를 나름대로 열심히 바꾸며 대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장에서 경험이 더 많고 똑똑했던 사람들이 W자 반등을 기다리며 포지션을 못 바꾸는 실기를 했다. 유동성의 순풍으로 개인투자영역에서는 어찌 됐든 결국 얼마나 용기를 내서 레버리지를 잘 썼냐에 따라 누군가는 신선이 되고, 누군가는 월급에 의존하며 사는 삶을 지속하게 되었다. 다만 이전의 빅 찬스와 달리 이번에는 같이 동고동락하며 서로 소주병으로 뚝배기를 깨니 마니 했던 진짜 옆자리의 사람들이 '신선'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 나의 근본 없는 상실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 다르다.


김홍도의 군선도. 왜 이 그림을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직접 본 신선 그림 중에 기억나는 것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움 만세.



 '여의도'라는 단어에 무엇이 생각나는가? 정치 일번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서여의도의 국회 보좌관이거나 정치부 기자일 것이다.(서여의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크다.) 현대백화점이 생각나는 사람은 최근 여의도 수질을 개선시킨 패셔니스타 젊은이일 것이며, 한강공원이라고 생각하는 당신도 아직 삶이 즐거운 젊은이일 것이다. 시장바닥을 기웃거리며 돈 벌 기회를 찾아다닌 나에게는 단연코 '금융'이다. 공원을 한참 넘어서가야 나오는 국회의사당 따위는 별로 신경 써본 적도 없다. 이 바닥의 사람에게 있어, 바로 여의도는 주식이고, 채권이고, IB이고, 뭐고 결국 다 돈인 것이다. 동여의도 사람의 대부분은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그것이 남을 위한 것이든, 본인을 위한 것이든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동여의도 사람들이 지향하는 '득도의 경지'이다. 결국, 개인의 돈을 투자해서 많이 벌고, 회사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신선'인 것이다.


 등선(말 그대로 신선이 된)의 경지에 오른 동료들이 아직 등선 하기 전에, 이미 등선 한 선배들을 보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아는 어르신이 개투로 잘 되셔서, 0백억인데 정말 신선 같으셔". 여의도의 신선들을 돈을 잘 벌었다는 공통점 외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우나, 접한 작은 표본으로 일반화시켜보면, 구름이나, 기린, 사슴을 타고 다니는 대신, 마세라티나 페라리를 타고,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주 골프를 나가서 자연을 벗한다. 여의도에는 올드 신선이건, 새끼 신선이건 신선들이 많이 모여있는 곤륜산들도 있는데, 에스트레뉴, 대영, 중앙, 대오, 신송(신송 간장의 그 신송이 맞다), 미원(대상의 그 미원은 아니다.)등 여의도 곳곳의 오피스 빌딩들이 바로 그곳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결국 물질적인 것으로만 신선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냐는 질타를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최근 만난 뉴비신선들에게서 바로 신선의 풍모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사다 지로는 그의 단편소설 '캬라'에서 남자는 그가 품은 여성의 수만큼 성적 매력을 가진다라는 올드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했다. 다른 비유를 하고 싶지만 머리에서 당장 기억나는 비유가 저것밖에 없으니 비유를 해보자면, 여의도 신선들의 득도 레벨도 그들이 짊어진 레버리지와 변동성만큼  올라간다. 각자 이직 및 퇴사를 하고 오랜만에 재회한 그들의 사고 수준과 심리적 압박감에 대한 대응능력은 BM매니저랑 비교할 수 없었다. BM매니저 들은 당장 좀 못해도 당장 잘리진 않으며(나름 유예기간이 있다) 월급은 나오고, 내 돈도 아니다. 하지만 레버리지와 레버리지로 일으킨 변동성을 개 투로 나선 신선 후보생들은 전부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지닌 각오가 다르다.


 한 신선이 그랬다. 주식투자로 돈 번 것을 다들 불로소득이라고 하지만,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게 없을 뿐, 분명 노고가 있다고.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가 내가 가진 자본을 위험을 감수하고서 세상에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BM펀드만 운용해도 장 빠질 때마다 머리가 희어지는데, 레버리지를 낀 개인자산으로 하는 압축투자는 나 같은 범인이 겪은 것 훨씬 이상일 것이다.


 신선들과 점심식사를 한 날의 화두 중에 하나는 "왜 일론 머스크는 이런 식으로 주식을 처분했나?"였다. 신선 중 하나가, 머스크가 결국 주주친화적이긴 한 것 같은데, 같이 갈 주주와 아닌 주주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자기는 의문스럽다고 했기 때문이다. 역시 신선이라 본인이 답을 얻었었지만, 잠깐 까먹은 것 같아서 얘기해줬다. 그 신선은 일론 머스크가 '파운데이션'을 읽었길래, 따라 읽었다고 말하며 나에게 '파운데이션'이 어떤 소설인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렇다. 나도 신선이 돈 번 종목을 같이 사긴 했던 것이다. 결국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용기를 내는 수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등선 하는 모습을 땅에서 나뭇짐을 짊어지고 손가락을 빨며 지켜본 것이다. 여하튼, 일론 머스크는 파운데이션에 나온 것처럼 인류를 도약시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까짓 거 주가 좀 빠지는 건 상관 안 할 거라고 하니, 신선이 '아 그랬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론 머스크의 심정을 더 이해하고 싶으면, 테드 창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Arrival'이란 영화를 보거나, 원작 소설인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라고 추천해줬다.


 영화 "Arrival"의 한 장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들의 언어는 시각적으로 원형의 이미지인데,

직선의 시간관념을 가진 인류와 달리, 시간관념도 원형이라 현재고, 미래고, 과거고 다 똑같이 인식한다. 즉, 전부 다 안다는 얘기다.


  밥을 먹고 돌아오면서 그들과의 괴리를 다시 체감하며, 테드 창의 '당신의 이야기'를 곱씹어봤다. 우리는(나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당신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범위는 어느 정도 확정됐고, 이 확정된(더 좋아지기보다, 예상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더 큰) 미래를 수용하고 살아야 한다고. 십수 년, 혹은 수십 년간 닦아온 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고, 어느 정도 결정된 괴로운 길을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우리의 괴로움의 원천인 것이다. 부처는 그랬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등불로 삼아, 정진해라. 옆 등불이 더 밝고, 정진해야 하는 목표가 도달하기 힘든 것이 나의 괴로움이다. 제행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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