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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ix Feb 14. 2022

양탄자의 무늬와 모멘텀 투자

 모멘텀의 패턴과 그 아름다움


 헨리 제임스의 '양탄자의 무늬'처럼 문학에 숨겨진 비밀을 미스터리하고, 슬프게 묘사한 소설이 드물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인 '휴 베레커'의 작품이 숨긴 비밀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소설가는 평론가인 주인공에게 자신의 소설의 의도가 무엇인지 떡밥을 흘리고, 주인공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양탄자의 무늬 같은 짜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비밀을 밝히려고 한다. 결국 작가가 의도한 그 비밀은 경쟁자가 발견해 내는데, 어떻게 양탄자의 짜임새가 들어있는지 영원히 묻히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주식시장도 양탄자의 무늬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법칙을 따르고 있을까?


 양탄자의 무늬를 굳이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복잡계 이론 때문이다. 최근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돈을 벌고, 내 개인의 투자는 인내는 길고 달콤함은 짧아 다시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이 실의에 빠져서 좋은 점은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져서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이 난다는 점이다. 어느 주말 동안 왜 이렇게 투자에는 답이 안 나오는가를 생각하다, 10년 전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까지 기억을 더듬게 되었다. 대학원 시절 나는 운동 동아리를 했는데, 같은 동아리의 신입 회원이 포항공대(나 때는 포스텍이 아니라 포공이었다) 물리학과를 나온 동갑 아이 었다(20대 후반을 아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긴 하지만). 내가 있던 대학원의 일반 석사생은 보통 자교 학부에서 많이 오기 때문에 포공 출신 학생은 드물었고, 특히 물리학같이 진짜 학문을 전공한 친구는 드물었기에 더욱 신기하게 여겼다.(많은 석사생이 산업공학과나 전산과 같은 곳을 졸업하고 경영대학원을 오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 운동이 끝나고 뭔가를 가지러 그 친구의 랩실에 들른 적이 있다. 아마 그때 그 친구의 학부와 학부 전공이 무엇인지 들었던 것 같다. 진성 문과충에 주식시장에서 빌빌거렸던 나는 저런 고상한 학문을 전공했던 친구가 경영대학원에 온 것이 신기해서 물었다. "너 같은 친구가 왜 이런 상스러운 공부를 하려고 하니?"란 질문에 "복잡계를 통해 주식시장을 분석해보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했다. 이는 마치 옆 건물의 고등과학원의 프랑스인 연구원한테 전공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Galaxy"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답이었다. 학교는 홍릉 구석의 코딱지 같은 곳이지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공부를 하러 다니는구나 같은 생각을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검도를 그만두고 나니 복잡계 친구와는 다시는 연락할 일이 없었다.


 개투의 별 볼 일 없음에 괴로워하다가 불현듯 복잡계 친구가 생각났다. 복잡계 친구는 복잡계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나름의 대답을 얻었는지가 궁금해졌다. 학교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복잡계 친구의 이름을 검색해보니(용케 이름은 안 까먹었다) 모멘텀 전략의 성과 지속성에 대한 석사 논문이(영어로 쓰인 논문이었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멘텀이란 단어만 보고, 복잡계 친구는 복잡계를 안 하고 그냥 석사를 했구나란 생각에 마음이 살짝 추워졌다. 마침 사내 게시판에 써야 하는 내용이 모멘텀 투자와 관련되어, 이왕 학교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간 김에 모멘텀 투자를 검색해봤는데, 마침 딱 내가 필요한 내용의 논문이 있어서 이를 잘 인용한 자료를 그럴싸하게 쓸 수 있었다.

 인용한 논문은 Nonparametric momentum(비모수적 모멘텀) 전략에 관한 논문이다. 마침 회사에서 새로 출시한 상품이, 단순 데이터를 활용한 모멘텀 전략이 아닌, 순위 모멘텀 전략을 활용한 상품이라 알차게 써먹을 수 있었다. 전략을 만든 사람에게 이 논문 보고 만든 거냐고 물어보니, 논문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도 어쩌면 복잡계가 열일한 게 아닐까?


 써야 할 자료를 완성해서 넘기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복잡계 친구의 논문을 읽었다. 제목만 보면 복잡계는 모르겠고 보통의 금융 석사 논문 같아 보였지만, 논문을 읽으면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주제가 결국 주식시장에서 모멘텀의 패턴을 찾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멘텀 전략의 경우, 여러 연구를 통해서 수익률과 변동성이 cluster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진 바가 있다. 특정한 성향이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결국 어떤 패턴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잡계 분석이 우연에서 발생하는 패턴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결국 양탄자의 무늬를 찾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Probability and seasonality analysis of momentum = 모멘텀 확률과 주기성 분석, 하진기 2014. 모멘텀 전략을 통해 위너와 루저로 분류한 주식들은 그 성과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회사일을 하며, 조금이라도 남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파편화된 증거와 의견을 모아 꿰어 설득력 있는 무늬를 그려내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우연이 작용했다. 우리가 보기에 우리의 삶은 규칙성이 없어 보이지만 다른 은하계만큼 떨어져서 보면, 우리가 모르는 우연의 작용으로 나름의 규칙성을 띄고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계 친구가 여전히 복잡계 연구를 하고 있는지 모르나,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자신만의 멋진 양탄자의 무늬를 찾아내고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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