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람들은 좋게 봐줘도 옷을 잘 입는다고 할 수 없다. 당장 바깥에 나가봐도 다들 손 닿는 곳에서 집어 든 것 같은 옷들을 대충 끼어 입고 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 절대다수다. 그래서인지 나도 역시 소매에 구멍이 난 후드 집업 같은 것을 거리끼지 않고 입고 다니게 되었다. 런던은 어떠할까? 지하철을 타고 다녀봐도, 여느 대도시들처럼 사람들의 지친 표정이 인상적일 뿐 그들의 차림새는 시골동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일 년 중 7개월이 비가 내리다 보니, 이곳 사람들은 하도 입어서 낡아진 왁스재킷과 첼시 부츠를 주야장천 입고 다닌다. 아름다운 것을 선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루키즘과 가장 척을 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인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의 외양 그 자체나 외양을 꾸미는데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사회도 그것을 별로 권하지 않는 것 같다. TV의 광고나 드라마를 보면 객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모델과 배우들 보다는 언젠가 기차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주로 나온다. 기차에서 어떤여자가 백과사전 두께만 한 서류들을 욱여넣은 겉면이 다 해진 멀버리 가방을 들고 서 있던 것을 보면서, 새것을 선망하지 않고 외견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영국인의 쿨한 부분인가 보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무겁기로 유명한 멀버리 가방에 종이뭉치를 하나 가득 집어넣고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강인함과 검소함이 과연 영국적인 아름다움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인접한 유럽국가들에 비해 영국인들의 패션센스는 악명이 높긴 한 것 같다. 촌스러운 영국 패션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다 보면, '유럽 호텔리어가 꼽은 최악의 패션센스를 가진 관광객 1위는 영국이다.'따위의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 중에서도 자국인들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배우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영국여자들이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 없고, 그저 남들 따라 하기에만 급급하다고 비난한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악명에 대해 영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인정을 하면서도, '우리나라는 날씨가 너무 안 좋기 때문에,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멋을 부릴 수 없다.'라고 항변한다. 12개월 중 7개월은 날씨가 안 좋아서 옷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수긍할만하다. 하지만 여름은 어떠할까? 시골 사람들이 아닌, 도심의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일상이 아닌 조금 특별한 날의 그들은 과연 어떨까? 일반적인 영국 사람들은 시각적인 부분에서 미감이 세련되지는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영국의 옷 문화에 대해서 검색하다 찾은 글인데, 이 글을 읽으면서 박장대소를 하였다. 이 글을 쓴 분이 내가 영국 여자들의 여름옷에 대해서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ukwatcher/33#comments) 기온이 24도를 웃돌기 시작하면, 내가 사는 곳의 25세 이상의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땡땡이나 꽃무늬가 그려진 흐들흐들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영국에 와서 첫여름을 맞았을 때 꽃무늬 드레스 군단을 보고 나의 가치관이 붕괴된 것 같은 충격을 느꼈는데, 영국 여름 드레스가 촌스럽다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시골 촌동네의 일반인들의 패션 센스는 전 국민의 수준의 척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심은 어떨까? 카나리워프 같은 동네에 가보면 확실히 이 사람들은 버는 돈이 있고, 만나는 고객이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산다는 느낌은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여의도와 별반 다르지 않는데, 남자들은 여의도 아저씨들 보다는 조금 더 칼 같은 느낌으로 깔끔한 외양을 추구하는지 이들을 보면, immaculate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카나리워프의 여자들은 여의도 여자들 보다는 뭔가 과하다는 느낌을 준다. 꽃무늬 드레스 까지는 아니지만, 사용하는 색이나 옷 자체가 상당히 과감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서양 사람들이 평소에는 대충 다녀도, 필요할 때는 제대로 멋을 부릴 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국 사회에서 다 먹은 스테이크 접시에 들러붙은 홀그레인 머스터드소스의 남은 껍질 같이 살고 있는 내가 그들의 관혼상제에 참여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은 얹기가 충분하지 않지만, 그 역시 조금은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기나긴 겨울을 버텨내고, 짧고 찬란한 여름을 즐기고 싶은지 여름이면 영국사람들은 경마와 조정 경기를 구경한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경기를 보러 갈 때 입는 옷이 따로 있다. 레딩 역에서 깃털이나, 꽃 달린 모자에 선명한 색의 드레스를 입은 공작새 수컷 같은 여자들과 맥고모자에 형광보라 줄무늬(잔잔바리가 아닌, 와이드 스트라이프였다.) 블레이저에 백바지를 입은 남자들을 목격하고는 저것들은 뭐 하는 것들인지 4분 정도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 동네에 있는 경마경기를 구경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 모습이 멋져 보이기는커녕 왜 이 사람들은 2020년대에 1940년대 사람들처럼 옷을 입나 하는 얄팍한 호기심 정도나 들었다. 꼭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이나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들처럼 기괴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국귀족 여성들이 웃기는 모자 같은 것을 쓰고 다니는 것이 저들 나름의 상류층 문화에 까지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경마 경기나, 조정경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의 옷은 이 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비록 영국사람들이 옷을 못 입지만, 왜 남일에 이렇게 신경을 쓰냐?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나도 비록 미감이 나와 맞지 않아도, 영국사람들이 멋져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그들의 멋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자신들이 믿는 것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냉정하지만 투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도표하나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Leading exporters of worn clothing worldwide in 2022, by country(in million U.S. dollars)>
위 표는 2022년 기준 국가별 중고 의류의 수출금액을 달러로 표시한 것이다. 물질주의와 외모지상주의가 개인 원동력의 중요한 축인 우리나라의 순위가 높은 것은 더 이상 실망스러운 것도 아니다. 내가 놀란 것은 영국의 순위였다. 다들 밖에서는 소매와 팔꿈치가 다 해져서 솜이 보이는 점퍼를 입고 다니면서 중고의류 수출 규모 순위가 저렇게 높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중고의류 수출이 높다는 것은 결국 새 의류의 구입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워낙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재활용을 잘해서 순위가 높을 수 있을 수도 있으니, 의류의 구매금액을 찾아봤다.
<Ranking of the per capita consumer spending on clothing & footwear by country 2020>
Statista
<Apparel consumer purchasing habits across the globe>
In an article from Common Objective CO Data 'Volume and Consumption: How Much Does The World Buy?'
물가가 비싼 국가일수록 인당 연간 의류 구매금액이 높게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 사람들의 스타일이 좋기로 알려진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국가들보다 영국의 구매금액이 한참 높고, 아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매 아이템의 수도 많은 편이다. 즉 영국사람들이 옷을 많이 사긴 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로써 자기 의도를 숨기기도 한다. 행동은 그렇지 않더라도 말로써 스스로를 변호하고 의도를 윤색한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돈은 그들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면, 기꺼이 특정한 곳에 절대로 돈을 쓰지 않는다. 영국사람들은 외견은 검소해 보이지만, 겉치장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유가 뭐가 됐던, 그들이 돈을 쓰는 만큼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이다. 펀드회사에 있을 때, 펀드 매니저들이 다른 매니저들을 깔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김 XX 걔는 방향성이 글러먹었어. 탐방 열심히 다니면 뭐 하냐? 포트 봐바, 방향성이 틀려먹었는데 수익률이 좋을 수가 있겠냐?" 정말 비열하고 못돼 먹은 말이지만, 할 말이 없게 만드는 말이다.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이지만, 그래도 일종의 보편성은 있다. 나의 글과말은 편협스러운 편이지만 미의 기준은 보편적이라고생각한다. 영국인이 옷에 쓰는 노력의 그 방향성은 나같은 이방인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보편적인 미의 기준과 그들이 가진 개성의 간극은 결핍을 낳고 다시 더 많은 소비를 낳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은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률이 높기에 다른 나라의 친환경 정책을 까는 소리를 많이 한다. 그중 대표적인 비난 거리들이 여러 종류의 footprint들인데, 가장 유명한 탄소발자국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발자국을 가지고 순위를 세우고, 다른 나라들이 얼마나 여기에 대응을 못하고 있는지 깔보는 걸 잘한다. 발자국 중의 하나는 water footprint가 있는데, 이것은 의류 제조과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필연적으로 우리나라나 중국같이 의류 벤더기업이 많거나, 그 의류 벤더기업이 또 하청을 주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이 많은 물발자국을 낸다고 비난받게 된다. 하지만 Waterfoot print의 상류를 따라가 보면, 결국은 새 옷을 사두고 꺼내 입지 않은 자신들의 죄가 가장 큰 것이 아닐까? 한 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새 옷을 사서 입지도 않는 이유는 '사고 보니 더 이상 맞지 않아서'라는 답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Tesco의 주류코너와 제과코너의 크기를 줄이는 게 영국이 전 세계 water footprint를 줄이는데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