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친은 공모주 아줌마다. 세상에서 남편이 주는 돈이 가장 더럽고 치사하다며, 모친께서 증권사 객장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중후반이었다. 모친의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동네 '금융타운'(금융타운이라고 하긴 하지만, 몇 개의 상가 빌딩에 증권사 지점이 여러 곳 모여있는 곳을 금융타운이라고 부른다.)과 강남대로의 객장을 같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HTS가 발달하고는 방학 때 공모주 청약이 있으면, '돈 버는 노고'를 경험해야 한다는 모친의 말씀에 청약 우대자격을 맞추기 위한 자금이체와 공모주 청약을 처리하기도 했다. 유년기의 경험과 교육이 중요한 탓인지, 그저 대학을 경영학과에 진학한 탓인지, 나 역시 주식시장 바닥에서 밥 벌어먹고살고 있다. 주식과 관련해서 제대로 된 가치평가나 기업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조기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모주와 실권주라는 것을 청약할 수 있고, 공모 전환사채 투자와 신주인수권부사채 투자는 땅 짚고 헤엄치는 '돈 놓고, 돈 먹기'라는(00년 대까지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공모주 아줌마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증권사 지점 직원들은 공모주 투자자들을 '공모주 손님'이라고 고유명사에 준하게 지칭한다. 그만큼 공모주 투자는 지금처럼 공모주 투자가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마니아들이 존재했다. 객장에서 늘 보이는 공모주 투자자들은 청약 우대자격을 맞출 수 있는 나름의 유동성이 풍부하지만, 불확실성을 기피하는 중년 이상의 고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공모주의 중복청약이 가능하던 시절에 공모주 투자자들은 청약이 있으면 허름한 복대나, 심지어는 비닐봉지에 거의 모든 증권사의 계좌카드를 수십 장 담아와서 객장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기다리다가 업무를 처리하고 또 다른 증권사에 가서 똑같은 일은 반복했다. 공모주 고객의 연령이 높다는 특성상 온라인과 친밀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혹은 가족계좌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객장에 방문하게 되는데 사실 이러한 과정이 물리적으로 번거롭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공모주 투자자들은 왜 공모주 투자를 계속하는가? 단서는 앞서 언급한 '돈 놓고, 돈 먹기'에 있다.
[표 1]
2008.01.01 ~ 2022.03.08, 공모주 청약 후 종가매도 가정 시 수익률. SPAC 제외
[표 1]은 2008년부터 공모주 청약에 참여해서, 상장 당일, 상장 익일, 일주일 후, 한 달 후 등의 종가에 매도했을 경우 양의 수익률을 달성한 비율과 보유기간별 평균 수익률, 최소 수익률, 최대 수익률을 보여준다. 약 14년간의 기간 동안 공모주 투자가 성공한 비율은 72%고, 평균 수익률은 32.4%에 달한다. 이른바 투자 전문가들도 주식시장에서 꾸준한 절대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72%의 승률과 32%의 수익률은 정말이지 엄청난 것이다. 식상할 정도로 유명한 '스키너의 쥐실험'을 생각해보자.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상자에 쥐를 넣고, 쥐가 우연히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 우연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쥐는 '레버를 누른다 →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 레버를 누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버를 눌렀을 때, 긍정 보상이 반복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72%의 성공확률은 거의 대부분의 사례에서 긍정 보상이 나온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공모주 투자자들도 반복되는 긍정 보상에 행동강화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들도 반복되는 보상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 이 것을 알고 있다면, 어찌 공모주 투자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표 2]
공모주 청약 후 상장 당일 매도 가정 시, 연도별 수익률과 수익률 허들별 달성비율, SPAC제외
21년 말부터 주식시장이 하락하면서, 공모주 투자 수익률 역시 부진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유통시장이 얼어붙으면 전반적인 투자자들의 투자심리 역시 얼어붙고, 시장이 따뜻했을 때 평가받은 밸류에이션에 대해 냉담해지기 때문이다. [표 2]는 공모주를 청약해서 상장 당일 종가 매도했을 때의 연도별 수익률과 특정 수익률 이상을 달성한 비율이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에도 공모주의 평균투자 수익률은 12.8%로 양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2008년의 공모주 투자 승률은 59%를 기록했다. 다른 해에 비해 평균 수익률과 승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시장 하락률을 감안하면 그래도 준수한 성과다. 다만, 시장이 정상적인 구간에서는 20% 이상의 고수익을 달성한 비율이 높으나, 시장 하락기에는 그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공모주 시장에서도 시장이 부진할 때 종목 간 차별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공모주 투자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좋다면 시장이 빠질 때도 공모주 청약에 참여해야 한다. 시장이 좋을 때는 모든 종목의 따상을 노리며 들어가더라도 시장이 안 좋을 때는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까? 상장 종목의 어떠한 점을 보고 들어가야 할 것인가? 나는 이 바닥의 오랜 격언인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종목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것은 주식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종목을 맹목적으로 보유하지 말라는 측면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이것을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주식을 투자할 때 투자자들은 나름의 투자 포인트를 가지고 승부를 건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컨벤셔널한 펀더멘털 기업분석을 통해 투자기업을 선정한다. 물론 공모주 투자에서도 기본적인 기업분석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접근 방식으로만 투자한다면, 남들이 청약하지 않은 종목을 떠안아 머리만 아파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공모주 펀드 운용에 미숙한 펀드 매니저한테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영악한 IB 한테 호구 잡히는 것이다.
일찍이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주식시장을 미인대회 승자 가리기로 비유했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주식보다, 남들이 예쁘다고 생각할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생리가 전반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이런 현상이 가장 극심한 것이 바로 공모주 시장이다. 기업의 사업구조가 좋고 밸류에이션이 낮아도 저 종목을 나만 좋게 보면, 남들이 들어가지 않은 수요예측에 혼자 들어가서 재고를 혼자 떠맡게 된다. 그러한 종목은 상장하고 흐름도 좋지 않다. 운용사에 있던 시절 공모주 담당자가 퇴사를 하는 바람에, 각 섹터의 담당자들이 공모주의 수요예측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당시 모 리츠 청약에 들어갔다가 깜깜이 배정으로 과도한 물량을 떠맡아서 전전긍긍하다 간신히 수익을 내고 엑싯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당하지 않기 위해 메자닌 하우스의 선배를 만나 조언을 듣게 되었다.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네 회사는 너무 주식이랑 결혼을 하려고 해서 문제야. IPO는 나이트야. 그냥 섹시한 애들이랑 하루 뜨거운 밤 잘 보낼 생각을 해야지, 거기서 미래를 약속할 사람을 찾으려니깐 너네가 안되는 거야."
기관 투자자들이 공모주의 수요예측에 참여할 때는 확약 조건을 걸기도 하고, 안 걸기도 한다. 확약 조건은 상장 초기 주가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호 장치인데, 운용사가 비교적 장기로 보유한다는 조건으로 물량을 더 배정해 준다. 공모주 펀드 운용역들은 공모주의 중장기 전망이 아주 밝아서 경쟁률이 아주 치열하지 않은 이상, 미확약 조건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여 상장 당일에 매도하여 수익을 확정 짓는 것을 선호한다. 선배의 말대로 하루짜리 인연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같이 가정을 꾸릴 착실한 주식을 찾으려고 하니, 영악한 ECM이 옛다 여깄다 너 다 가져라 하고 물량을 마구 밀어준 것이다. 술도 못하는데 맛없는 양주만 비싸게, 많이 주문한 격이다.
추가로 선배가 공모주 시장의 생리에 대해서 몇 가지 조언을 더 해줬다. 2018년에 받은 조언이기 때문에 현재와 상황이 달라졌음을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1. 공모주 수요예측은 룰이 따로 있다. 가치투자 하우스처럼 바텀업으로 보면 안 된다.
2. 시총이 1000억 원 이상인가? 1000억 이하의 시총일 경우, 개인투자자 가세에 따라 가격이 가볍게 움직이기 때문에 풀베팅한다.
3. 시총이 1000억 이상이면, 유통물량이 중요하다. 공모금액이 신주발행 밖에 없으면 유통물량이 적으므로 풀베팅한다. 상장주식의 30~40% 가 풀려버리면 아리까리 하다.
4. IPO 당시 핫하고 테마가 있는 업종이나, 종목인가? 핫한 것이면 해야 한다.
5. 마지막으로 밸류에이션 PER 10배 이하의 아주 싼 종목은 고려는 해본다.
21년과 다르게 최근 들어 공모주 시장도 비실비실해지는 게 보여서 코스닥 벤처 펀드를 운용하는 후배에게 요새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물어보았다.
"요새는 유통물량이랑 테마가 되는 게 있는지만 봐요."
이 바닥은 여전했다.
[표 3]
2012 ~ 현재, 공모주 유통주식 비율별 보유기간별 수익률. SPAC제외.
[표 3]는 2012년 이후 상장한 공모주의 유통주식 비율에 따른 성과이다. 유통주식 비율이 낮은 종목의 성과가 압도적으로 좋은 것을 알 수 있다. 펀더멘털 분석이 공모주 투자에 도움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공모주 투자는 리테일 투자자부터 유구하게 수급을 위주로 봐 온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나의 모친은 'IPO스탁' 사이트의 공모 정보 페이지를 열어두고, 시장에 얼마나 수량이 풀리는지가 중요하다고 얘기했던 게 나중에서야 기억이 났다.
모친은 공모주 할머니가 되어서, 카카오 뱅크를 청약하고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나에게 물어봤다.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고, 결국 삼성생명 꼴이나 날것이라고 대답하니, "왜? KB금융만큼은 되지 않을까?"라고 반문하였다. (카카오 뱅크의 공모 가격은 39000원이었고, KB금융지주는 대략 45000원에서 6만 원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렇다. 결국 공모주를 수십 년 해온 모친도 은행업의 가치평가 지표인 PBR보다는 주당 가격만 보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접근 방식이지만, 리테일 공모주 투자자들은 이런 식으로 투자한다. 투자한 공모주가 잘 되어, 높은 수익을 먹은 날이면 모친은 '축구왕 슛돌이'의 노래 가사를 "슛~ 돈은 나의 친구!"로 개사해서 흥얼거렸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도 노래가 절로 나오는 투자 수익률을 달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