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에 두 번째 퇴사
스물아홉 번째 여름이다. 유난스럽던 지난 여름들과는 다르게, 별로 무덥지 않다. 이만큼 하늘이 파랗고 나무가 파릇함을 가득 즐길 수 있어서, 바삭하고 건조한 공기의 계절을 사랑하는 내가, 처음으로 여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던 탓일까.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 년을 훌쩍 넘게 일했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쉬운 결정이었다. 일 년을 넘게 고민했던 덕분이었고, 어떤 업무도 대충 하지 않았다는 자신 때문이었고, 계속 남아있는 것이 나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 되어서였다. 좋은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지금처럼 잘 해올 수 있다고, 내게 다그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속이며 사는 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해서. 놀라울 만큼 미련도 후회도 없다.
그러나 미안하고 속상한 단 하나는, 첫 번째 퇴사와 꼭 같게도, 같이 입사했다는 이유로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동기들이었다. 회사는 내 일상의 1/4, 많게는 1/3을 보내는 곳인 데다가, 실제로 회사가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커서,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 또한 어느 순간 서로에게 너무 큰 존재가 되어버려서. 출근만 하면 당연히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어렵게 시간을 내어 만나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에서 지리멸렬하다.
퇴사를 알릴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어쩌면 한결같이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다. 다만 삶의 시간이 지날수록 할 수 없게 되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미혼) 나도 하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없어.
(기혼, 40대 이하) 나도 하고 싶은데 못 해. 남편 혹은 아내 그리고 아기 때문에.
(기혼, 50대 이상) 나도 막연하게는 하고 싶은데 그냥 마음일 뿐.
그러고 보니, 결국 내가 퇴사할 수 있는 건 지금 뿐이었다. 아직 그만큼 익숙해지지도 않았고, 책임질 아가도 남편도 없어서, 용기만 내면 할 수 있는 지금. 아마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하고 싶어도 해보지 못할 것이었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퇴사했는데도, 어젯밤에는 엉엉 울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를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더없이 축하해주는 친구들 때문이었는지,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슬픈 것인지 행복한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오늘 아침에는 마음이 너무나 맑았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