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영 Oct 14. 2024

아들과 싸우는 엄마입니다

나이가 몇살이신지

오늘도 어김없이 초등아들과  싸웠다.


식당에서 웨이팅을 하던 중. 아들은 아빠의 데이터무제한 세컨드 폰을 받아들더니 신나게 야구게임을 즐기기 시작했고, 밥을 다 먹고 카페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핸드폰을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빠 덕분에 핸드폰 게임에 실컷 몰입하며 기분이 들뜬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갑자기 화장실로 이동했고 . 순간 핸드폰 페어링이 끊어지자 아들은 울상이 되어 아빠를 허겁지겁 쫓아갔다 . 하지만 결국 야구게임 스코어는 처음처럼  0이 되고 말았다 .



 울먹이는 표정으로 돌아온 아들은 내 어깨에 기대어 조용히 흐느꼈다. 하지만 나는 게임 때문에 우는 아들의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게임 때문에 울고있는 아들의 고개를 밀어냈는데 그러자 아들은  갑자기 내 발목을 세게 꼬집었다 .  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복수하듯 더욱 세게 아들의 어깨를  꼬집어주었다.  동시에 참아왔던 폭풍 잔소리와  급 분노를 아들에게  표출했다.



아  그러니까
오늘 왜 하루종일 게임을 하냐고!
 결국 이렇게 되잖아!
네가 제 정신이니? 넌 정말 게임중독이야!  
 


그렇게 나와 아이는 사이가 또 틀어지고 말았다.

카페에 있는 동안 아이는 고개를 숙인채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 집에 돌아와서도 침묵을 지키며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늦은 밤, 내 하루치의  분노가 다  빠져나간건지  스트레스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진듯 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이의 인격을 무시하며 잔인하게 밖으로 내뱉은 말 때문에 나는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띄처럼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와  공격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눈을 부라리며 가족인듯 적인듯 살아야 하는 건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자신이  어른답지 못하다는 후회와 함께.


 다음날 아침, 나는 a4노트에다  어제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몇가지 질문을 적어보았다.



엄마가 싫어하는 00의 행동 3가지는?
00이 싫어하는 엄마의 행동 3가지는?


덧붙여 어제 느낀 감정에 대해서도.  이 상황에서 엄마는 이런 감정을 느꼈고 상대의 이런 모습에 화가 났으며 엄마도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인 글로 적었다. 어제의 일을 글로 적어보니 순간적인 내 감정 때문에 아들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더 화를 낸 것이 어제의 갈등을 키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노트에 적은 .  아들의 싫은 행동 3가지는

ㅡ아침에 일어나서 이 안닦기

ㅡ숙제나 할일을 미루고 핸드폰을 하거나 장시간 tv 보기  

ㅡ말을 함부로 하거나 예의없이 행동하기


노트를 아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아들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엄마가 싫을 때는  3가지가 아니라  
100가지 정도 쓰면  안될까요?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싫은점이 많더라도 서너가지로 한번 추려보라고 답했다 .  그리고 아침식사를 다 정리한 후 아이방에 들어가  책상 위에 덮어 놓은 노트를 펼쳐보다  깜짝 놀랐다.


엄마의 싫은 점 3가지 중에서 아이는 단  한가지만 적은 것이었다. "엄마가 나보고 숙제하라 공부하라고 할 때.."

그리고  나머지는 엄마를  더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말처럼 사실  요즘  아이에게  벌컥벌컥 자주 화를 내곤 했었다.  학교가라. 숙제해라. 공부해라. 학원가라..학창시절의 즐거움을 찾아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춘기 아이에게  엄마는 아이의 사소한 즐거움마저 모두 빼앗아 버릴듯.  점점 더 강압적인 말과 행동으아이의 시간을  통제하려 들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에서도 주인공 한스에게 성취에 대한 강박관념, 조급함을 부추기는 건 평소 사소한 게으름이나 잘못을 허용하지 않는  원칙론자,  한스의 아버지였으니.. 결국 한스는 예민한 청소년기에  불안과 절망에 싸여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를 향한  초등아이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없는. 어쩌면 어른보다 훨씬 더  깊고 순수한 사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사실을 나는 왜 잊고 있었을까..  부지런히 수레를 굴려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은 들여다볼 생각조차 안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아들이 좋아하는 편의점이나 산책하면서 서로에게 평온한 시간이 주어지길 기대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길을 향한 첫 도전이 시작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