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지난번 면접을 보고 깜깜 무소식이어서 면접에서 떨어진 줄 알았는데. 몆주 후 합격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길고 긴 경력단절을 졸업하고 이제부턴 독서논술 선생님이 된 것이다.
첫 출근하는날, 거울 앞에서 여러벌의 단정한 옷을 고른 후 지각하지 않으려고 예상시간보다 일찍 지하철을 탔다. 시간에 맞춰 학원에 도착하니 학원 안에는 이미 초등학생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호기심과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보았는데 예의를 갖추고 나를 공손하게 대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는 첫날부터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집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춘기 아들은 예의를 밥 말아먹은듯 나에게반항적인 눈빛과 공격적인 말투를 보내곤했는데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사회에서 엄마가 아닌 선생님으로 만난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 내가 원하던사회활동을 늦게라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과함께 한결 편안한기분이 들었다.
얼마전읽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책에는 이런 내용이나온다. 흐르는 강을 보며 자신을 버리고 '옴'에 이를 만큼 마음을 수행한 싯다르타도아들에게 만큼은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는데.. 고통에 휩싸인 싯다르타에게 바수데바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그를 위해 열 번 죽는다고 해도 당신은 그의 삶의 한 부분도 덜어주지 못할 거요. 늙고 조용한 늙은이의 심장이 저 아이의 심장과 같을거라 생각하지 말아요.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누가 대신해 주겠소?"
그렇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방황하고 도전하고 스스로 부딪히며 앞으로 걸어가야하는 존재이다. 아들의 삶을 엄마가 대신할 수 없듯 아들의 삶도 남편의 삶도 그리고 나의 삶도 다른 누군가가 대체할 수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은 존중되어야 한다.
앤 나폴리타노의 소설 <헬로 뷰티풀>에서도 각자 다른 네 자매의 삶이 등장하는데, 엄마의 개입으로 딸의 성공과 실패를구분짓자 엄마의 목표를 따르지 못한 딸들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떠나고 난 후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나도 아들도, 그리고 남편도 자신의 길에 굳건히 서서 가족을 바라보아야 서로에게 긍정의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늦은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길 잘한 건 같다. 집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길 잘했다.그런 의미에서 나의 경력단절을 셀프 축하하기 위해 한달 후 받게 될내첫 월급은 가족외식, 그리고 나를 위한 선물을준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