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고된 하루의 끝에-

예술작품인 우리 아이들. 바위틈에도 새싹은 자란다.

by 캐시캣

발달 지연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며, 고단했던 하루를 쓸쓸하게 회상해 본다. 10년이라는, 길다면 길다고도 할 수 있고, 짧다면 짧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세월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을 계속해 보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아이는 마치 병아리가 닭으로 커가듯 키도 140cm나 되는 큰 어린아이로 잘 자랐다. 엄마의 마음을 먹고 컸나 보다, 아이의 해맑은 웃음 뒤에는 고단한 하루를 노을처럼 등지고 침대에 기대어 있는 멍 때리는 엄마가 있으니.


이 아이를 기르면서 수 없이 셀 수도 없는 웃고 울고 싶은 나날들이 마치 주식의 등락처럼 수시로 있어오면서, 수 없이 많은 경험과, 추억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등락의 산들의 골짜기에서는 늘 선택의 기로가 존재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행동하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만일 저렇게 행동한다면? 다음번에는? 그 다음번에는...?" 이렇게 선택과 결정의 연속 속에서 아이는 나의 선택이란 물감과 엄마의 말이라는 붓칠 속에서 마치 한 예술작품의 형체로 되어가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육아를 고독한 예술활동에 비유하고 싶다. 우리 집의 경우, 주된 양육자인 엄마가 이 예술활동을 하는 작가이고, 아이는 내가 만들어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에는 아이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서히 자아, 자존감, 자신감이라는 것이 새로이 태어나고 있다. 갓난아기 때는 몸이 태어났다면, 어린이가 되어서는 이 예술작품 속에 마치, 새로운 혼이 하나 탄생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또한 엄마와 함께 자라온 나날들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작품일까, 이제 언젠가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면서, 독립된 인물로서 스스로 '본인'이라는 예술작품을 완성시키고 변형을 주고, 새로이 탄생시키게 될 것 같다.


엄마가 기대하는 바다. 아직은 이런 날이 언제 올지 미지수인 기다림과 세월 속에 존대하는 엄마 자신이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작품의 배경 위에 본 그림(작품)을 완성해 가는 아이가 되어가길.

그래서, 언젠가 이 세월의 풍파 속에 지칠 대로 지친 먼 미래의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 아이가 새로운 미래로의 다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언젠가, 결코, 이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 후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 현재의 엄마, 곧, 미래의 엄마 자신이 보기엔 먼 과거의 나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후회가 생기지 않기를 희망한다.

수많은 발달지연,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양육자들은 그들의 인생과 혼을 갈아 아이를 키운 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양육자의 꿈을 희생하고, 때론 직장을 희생하고, 어떤 때는 부모의 기본적 권리마저 희생하면서 말이다. 이 아픔이, 부디, 아이와 부모와 가족들에게 있어 아픔의 한 획이 아닌, 영혼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표가 되기를...

그리고 그것이, 아이와 가족들에게 있어 지쳤을 때 불어 보는 한 줄기 향기로운 바람 같았으면 한다.


"바위틈에도 새싹은 자란다."


나는 언제나, 이 말을 믿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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