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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지막 고추부각

부각의 미각

by 김지옥



당신은 고추부각을 좋아하는가. 나는 고추부각을 몹시도 좋아한다. 아주 간혹이지만 고추부각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껏 인생을 낭비했다고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고추부각은 나만 사랑하는 음식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고추부각은 고추튀김과 다르다. 분식집에서 파는 고추튀김은 반으로 가르거나 통으로 속을 파낸 고추에 만두처럼 소를 채워 넣어 튀긴 음식이지만 고추부각은 고추를 말려 튀긴 음식이다. 성질을 말하자면 고추튀김은 축축한 음식이고 고추부각은 아주 바삭한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부각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갖게 되면 다시마부각 김부각 연근 호박 게(?) 등 다양한 부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마다 취향을 뽐내지만 고추부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애호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고추부각의 완벽함을 이해하는 깨어있는 지성인을 만나기도 힘이 든다. 하물며 게 부각이라니.

어느 부각 전문점에서는 모둠 부각 안에 튀긴 게를 넣기도 하던데, 물론 식물성 부각만을 먹다 동물성 부각을 한 조각 먹게 되면 그 풍미와 식감이 남다르겠지만 그건 사찰음식에서 기인한 부각의 전통성을 모독하는 것이자 수익증대를 위한 배금주의에 편승한 얄팍한 꼼수라고 호통치는 상상을 하곤 한다.


다시마 부각과 김부각도 맛이 좋고 대중적인 부각이지만 몇 가지 단점이 있다. 다시마부각은 해조류 특유의 호불호 갈리는 향이 있고, 튀긴 후에는 조직이 딱딱해서 식감이 좋지 않다. 게다가 다시마 부각은 씹으면 씹을수록 진이 나오고 끈적해져서 입에 남는 느낌도 좋지 않다. 보통 해조류 자체의 짠기가 있어 설탕을 주로 뿌려서 판매되는데 찝찌름하고 들큰한 느낌이 오묘하다기보다는 애매하다.

김부각은 대부분 밸런스가 잡혀있지 않아서 훌륭한 김부각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김부각이라고 불러야 하기보다는 부각김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튀긴 찹쌀풀에 김향 첨가처럼 본말전도 되어있는 스낵에 가까운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 봉지의 김부각을 먹었을 때는 마음 한구석에 드는 “나는 도시락양반김 반통정도 양의 김을 너무 큰 금액을 주고 먹은 것 아닐까” 하는 후회와 자책감이 쉽게 또 손이 가지 않게 만든다.

기타 채소 부각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공은 들였지만 들큰하고 개성이 없고 식감은 아주 딱딱하고 입속에 들어와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불어서 뭉개지고 만다.


그에 반해 고추부각은 맛은 물론이거니와 들어가는 수고부터 비고추부각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추부각은 (그리고 기타 비고추부각 일부포함) 고추와 찹쌀풀로 만들어 내는 마술이다. 고추부각은 튀기는 음식이 아니라 말리는 음식이라는 것에 포인트가 있다.

잘 씻은 고추를 일일이 반으로 가르고 꼭지는 물론 안에 있는 씨와 태좌를 남김없이 긁어낸다. 그 후 찹쌀물을 손질한 고추에 입혀 주는데 이 찹쌀물이 너무 되직하면 잘 마르지 않고 너무 묽으면 고추를 한번 더 씻을 뿐인 일이 되어버린다.

그 다음 찜기에 넣고 찹쌀물이 익을때까지 쪄준다. 그 후 2-3일 정도 건조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고추부각의 묘가 있다. 찰쌀물의 점도가 이상적이라는 전제하에서 완벽하게 마른 고추만이 고추튀김이 아니라 고추부각이 될 수 있다.

잘 마른 찹쌀 바른 고추는 겉보기에는 쪼그라들고 곰팡이 가 핀 듯 허옇지만 이제 이것을 너무 높지 않은 기름온도에 중간불로 튀겨주면 아주 바삭하고 향이 좋은 고추부각이 완성된다.


여기까지 읽어왔으면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나는 다른 부각(비고추부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도 없다.


이렇게 튀겨진 고추부각은 아주 절묘한 바삭함을 준다. 다시마부각처럼 딱딱하지는 않고 김부각처럼 존재감 없이 부서지지도 않는다. 연근이나 호박 같은 채소 부각처럼 그 자체의 두께감이 주는 부담스러움도 없이, 껍질이라고 하기엔 두껍고 과육이라고 하기에는 얇은 고추특유의 두께감이 튀긴 찹쌀물과 어우러져 입안에 경쾌함을 남긴다.

맛과 향은 또 어떤가. 입안에 넣자마자 튀긴 음식 특유의 고소함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고추의 알싸한 향이 즐겁다. 뒤늦게 따라오는 매운맛은 남아있는 느끼함을 싹 날려주고 달큰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고추품종을 쓰느냐에 따라 청양고추는 아찔한 매운맛을, 오이고추는 청량함과 단맛을 즐길 수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그렇기에 부각 중에 고추부각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기타 부각(비고추부각)은 맛이 거기서 거기이나 (다른 부각 애호가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표현이 아니다. 필자가 비고추부각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 없고 비고추부각은 일종의 스낵정도로밖에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거기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지 비고추부각을 먹는 사람들을 그런 입맛을 가진 사람으로 매도하고자 거기서 거기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다. 넓은 아량으로 자신의 취향과 처지를 이해하고 여유를 가지고 필자 또한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다.) 예민한 고추부각 애호가 들은 평소에 늘 느끼는 바인 것처럼 좋은 고추부각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추부각이 기타 부각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에 힘이 들고 난도가 높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시중에 나와있는 고추부각에 아쉬운 점이 많다. 안 좋은 점을 지적하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건강한 마음을 가진 고추부각애호가는 세상의 밝은 면만을 보고 아름다운 소리만 하는 경향이 있기에 시판 고추부각의 단점을 말하기보다는 좋은 고추부각을 고르는 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마트나 시장들의 비전문업체에서 작은 비닐봉투에 밀봉된 고추부각을 사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고추부각이 밀봉된 채로 기름에 절어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맛소금과 설탕이 뿌려져 있어 고추부각의 좋은 맛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처에 김과 부각을 취급하는 전문점이 있다면 그곳을 방문하면 성공률이 높다. 비록 공장에서 대량납품받는 것이기는 하나 부각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기에 신선한 원료를 쓰고 회전이 빨라 좋은 상태의 부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소금과 설탕이 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고추부각 애호가라면 종종 경험하는, 삶에 고추부각이 부족하여 우울해지거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팔다리가 저린 증상이 있다면 가까운 부각전문점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터넷에서 부각을 구매하는 걸 좋아한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부각을 전문으로 제조하는 업체가 있는데 고추부각을 주문하면 주문즉시 튀겨주고 옵션을 통해 내가 원하는 정도의 소금과 설탕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고추부각 만족도 면에서는 훌륭한 편이다.


고추부각은 삶의 활력소이자 에너지이다. 일반적인 고추부각애호가들은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먹는 것 같은데, 나는 이해하기 힘들다. 나에게 고추부각이 있는데 그걸 술을 먹을 때나 밥을 먹을 때만 먹는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필자는 고추부각이 있으면 그게 없어질 때까지 먹는 편이어서 술안주나 밥반찬의 개념을 도입하기에는 힘들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고추부각의 가격뿐이다. 필자는 가난하여 항상 고추부각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지도 못하고 내 삶에서 기쁘고 슬픈 순간 늘 고추부각과 함께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추부각을 먹을 때면 가끔 상념에 빠진다. 혹시 여러분은 수술전이나 건강검진 전에 금식을 한 경험이 있는가? 금일 오후 9시부터 금식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저녁 6시 즈음 저녁을 먹고 9시 전까지 과일이나 주전부리를 먹거나 할 것이다. 여러분이 그때 마침 안주머니에 있던 고추부각을 저녁 8시 55분에 한 조각 꺼내먹고 잠들었다면 다음날 오전 11시쯤 수술대위에서 마취되기 직전 무슨 생각이 떠오르겠는가.


“내가 이 수술대 위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어제 그게 내 마지막 고추부각이잖아!”


내 마지막 고추부각은 언제일까. 누구라도 그걸 알고서 고추부각을 먹지는 않는다.

평범한 고추부각 애호가라면 한 봉지의 고추부각을 먹으면서 내일도 또 고추부각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한 조각의 고추부각이 내 마지막 고추부각이라면 그만큼 순간은 소중해진다. 우리는 매 순간 고추부각의 맛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고추부각애호가가 현재를 사는 방법이다.


나의 마지막 고추부각은 반뼘정도의 길이에 자연스럽게 약간 구부러진 모양으로 중지손가락 정도의 두께 일 것이다. 잘 마른 고추와 적당한 찹쌀물이 파삭하게 잘 튀겨져 전체적으로 진한 황금빛이 돌고 약한 소금간만 되어있어서 손으로 잡으면 가볍고 까슬까슬해 먹기 전부터 좋은 기분이 든다.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고소함과 단맛 그리고 적당한 매콤함에 다시 한번 한 조각 더 먹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한 조각 더 먹지 못한 그 고추부각이 내 마지막 고추부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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